제맛을 유지하려면

                                                                                                                                         이희숙

      

  수평선 위로 둥근 해가 기지개를 켠다. 잠자던 바다는 붉게 상기된 볼처럼 반짝인다. 어두움이 물러가는 시간에 내가 즐겨 찾는 곳이 있다. 뉴포트 비치에 있는 120여 년 된 '도리 어시장'이다. 그곳을 찾을 때마다 나의 가슴은 콩닥거리고, 눈 익은 어시장은 이름처럼 손과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나를 반겨준다. 이곳은 즐비한 상가의 현대식 건물에 대조되는 역사 보존 건물로 지정되어 옛 모습 그대로 장사를 하는 곳이다. 어부들이 밤에 배를 타고 출항하여 넓은 바다에서 방금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을 배 갑판 위에서 판다. 나는 배가 들어올 무렵 피어에서 불어오는 바다 내음에 생기가 솟고 살아 펄쩍펄쩍 뛰는 물고기를 보며 에너지를 얻곤 한다.

  그곳을 갈 때 양동이와 함께 잊지 않고 챙겨 가는 것이 있다. 바로 소금 봉지다. 긴 줄에서 내 차례가 오면 원하는 생선을 골라 어부에게 건넨다. 앞치마를 두른 어부는 저울에 무게를 단 후 그 자리에서 손질한다. 갈매기 떼가 비린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습은 생존경쟁의 단면을 보는 듯싶다.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손질하는 빠른 손놀림을 보며 내가 살아 움직이는 세상 속에 있음을 실감한다. 손질한 생선을 건네받으면 양동이에 넣고 준비해 간 소금을 듬뿍 뿌린다. 신선한 바다 그대로의 맛을 보관하기 위해서다. 우린 먼 거리에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반투명 육각형 결정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감춰진 소금의 효능을 맛본 셈이다.

  오뉴월엔 배 갑판 위에 놓인 큼직한 멸치를 만난다. 그것을 소금에 절여 그늘에 오래 보관하면 젓국으로 변신한다. 김치를 담고 채소 겉절이를 할 때 넣으면 향긋한 맛을 돋우어 일품요리의 비결이라고 할까. 모든 음식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마무리하며 풍미를 높인다. 바로 소금이 하는 역할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뗄 수 없는 소금 맛의 중요성에 익숙해져 소홀하기 쉽지만, 그 가치에 접근해 본다.

  급료 Salary라틴어 Salarium으로 Salt와 어원이 같고 병사에게 급료를 소금으로 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은 소금을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생산이 쉽지 않아 작은 황금이라 불릴 만큼 국가의 수입원과 무역 상품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부와 명예,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 그 가치를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전래동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신기한 맷돌을 가지고 있는 임금님이 있었다. 말만 하면 소원대로 모든 것을 들어주는 맷돌이었다. 곁에서 넘보던 욕심꾸러기가 그것을 훔쳤다. 도둑은 그 귀한 것을 숨길 곳이 없어 궁리 끝에 배를 타고 멀리 도망갔다. 항해 중,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해 소금이 나오도록 하고 말았다. 그 당시 소금은 귀하고 비쌌기 때문이었다. 그가 '소금 나와라!' 주문을 외우자마자 희고 고운 것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도둑은 그치게 하는 주문을 미처 배우지 못했다. 소금은 쉬지 않고 쏟아졌고 산더미처럼 쌓인 소금의 무게에 마침내 배가 가라앉았다. 그도 죽고 말았다. 지금도 바닷속에 가라앉은 맷돌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 바닷물이 짜게 되었다.'

  소금은 주성분 염화나트륨과 각종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중요한 효능도 잘 알려져 있듯이 생체 조절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수분과 함께 삼투압을 유지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염증을 제거, 체온 조절, 혈액의 흐름을 좋게 한다. 축적된 칼륨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생명 활동의 근원이 된다. 우리 몸은 70%의 수분과 0.9%의 염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피곤하면 눈이 뻑뻑해져 몸의 체액과 같은 0.9% 생리식염수를 넣는다. 자연과 몸이 같은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성경에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변치 않는 의미를 지닌 '소금 언약'으로 비유되어 있고 하나님께 드릴 번제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한다. 또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라고 기록해 인간과 인간의 변치 않는 약속을 보여준다. 소금은 자연이 인간을 위해 마련한 영구불변의 가치이며 신의 선물임이 틀림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이 열두 명의 제자와 마지막 식사를 하는 식탁에서 빵과 그릇들 사이에 엎어져 있는 소금 단지를 볼 수 있다. 화가는 유다의 실수로 쓰러져 있는 소금 그릇을 통해 약속의 배신을 암시했다. 나 역시 유다와 같은 처지에 놓이지는 않을는지 자신이 없다.

세상의 타락과 부패를 막아주는 가치 있는 존재로서. '너는 소금처럼 꼭 필요한 존재로 역할과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살고 있느냐?'라고 묻는다. 짠맛을 잃지 않고 제맛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