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곤 바다를 가보셨나요

 

                                                                                        신순희

 

  
  

시원한 태평양으로 탁 트여있는 바다. 오레곤에 살때는 노상 바다를 찾았다. 고국을 떠나 마음 붙일 곳 없던 시절이었다. 철 지난 바다는 늘 성이 나 있었다. 차갑게 끈적이는 바람과 시퍼렇게 밀려오며 뒤집히는 파도.  ‘나는 바다다’ 함성 지르는 바다를 볼 수 있다. 그곳에 망연히 서 있으면 답답한 가슴의 응어리가 풀렸다. 끝없는 수평선 저 너머에 어머니가 있다.
  

그때 남편은 원 없이 낚시를 했다. 시사이드 바닷가에 솟아오른 미끄러운 바위에 올라가 우럭같이 생긴 ‘락피쉬’를 잡았다. 겨우 한 마리를 가지고 이걸 회를 칠까 매운탕을 끓일까, 의기양양했다. 작은 물고기 하나가 불안한 시야를 말끔히 씻어주고 자신감마저 주었다. 웨이더를 입고 파도가 줄줄이 밀려오는 바다에 들어가 낚싯대를 던지면, 몇 시간이고 그 자세로 서서 물고기가 낚이기를 기다렸다.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로지 낚싯대를 잡은 손끝으로 전해오는 낚시 바늘에 온 정신을 집중시켰다. 운이 좋은 날에는 은빛 찬란한 ‘퍼치’를 무더기로 잡았다.
  

통통한 퍼치를 손질하려 배를 가르면 알 대신 열대어같이 잘잘한 새끼가 나온다. 퍼치는 생김새도 아름답지만 맛 또한 기막히다. 소금을 조금 뿌려 냉장고에서 꾸덕꾸덕 말렸다 구우면 조기 맛이 난다. 어머니가 석쇠에 구워 주던 조기 맛 난다.
  

틸라묵 어딘가 바닷물이 도랑같이 갇힌 곳에서 가오리만한 가자미를 잡았다. 양동이에 한 마리 담으면 꽉 찼다. 너무 두꺼운 살이 퍽퍽할 것 같지만, 그것을 졸이면 병어같이 새하얀 살이 얼마나 연하고 쫄깃한지, 생각만 해도 좋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나중에 다시 그곳을 찾았건만,  가자미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닷물이 지형을 바꿔놓아 도랑이 사라졌다. 유심히 보면 바다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건 어머니의 사랑이 아닐까.
  

뉴포트에 가서는 홍합을 땄다. 갯바위에 무진장 달려있는 홍합을 칼로 힘겹게 떼어내도 힘들지 않은 것은, 바다에서 보물을 캐낸 기분 때문이다. 실제로 집으로 돌아와 홍합 입을 열었을 때, 그 안에 품고 있던 좁쌀만 한 분홍빛 진주를 발견했다. 예쁜 조개만 진주를 품는 줄 알았다. 볼 품 없는 홍합에도 진주가 있는지 몰랐다. 누구나 상처를 보듬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홍합이 준 진주 몇 알은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사하면서 버렸다. 떠날 때는 빈손이 좋다.
  

춥고 바람 불던 그 바다가 추억 속에서는 따뜻하다. 시애틀에 살면서, 여름이면 우리 가족은 한 번씩 오레곤 바다를 찾는다. 풍성한 물고기를 잡은 것이 그립기도 하지만, 검푸른 태평양 너머 어머니가 그리워서다.

 

 

[2011년 10월]


--대표에세이문학회 2016 동인지  '골목길의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