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닭의 최후

                                                                 신순희

 

무공해 달걀, 먹을 땐 좋았다
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았다며 갈색 알을 몇개 내게 가져다주곤 했던 K가 닭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알을 낳지 못해 이제는 쓸모없는 3년생 닭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그냥 풀어주면 안 될까, 하는 내 말에 그건 안된다고 K가 말한다. 하긴, 때아닌 곳에서 새끼 악어가 나왔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그럼 어떡해? 닭을 잡아야지. 

 

아, 옛날이여
엄마 따라 시장에 가서 물이 팔팔 끓는 커다란 솥에 산 닭을 통째로 집어넣고 뚜껑을 꽉 닫는 걸 본 적이 있다. 닭장 속에서 꼬꼬 거리는 닭들 가운데 한 마리를 엄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그 닭은 그렇게 잡혀서 털이 다 뽑히고 소름이 돋은 생닭이 되어 장바구니에 담겼다. 그래,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도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돼 엄마가 고민에 빠졌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닭을 잡았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는 닭 모가지를 비틀어서 밟으면 된다던데, 시골에서 닭 잡다 목 없는 닭이 날뛴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도대체 K는 닭을 어떻게 잡는다는 건가. 

 

결단의 순간
일주일이 지나 K는 닭 잡은 얘기를 해줬다. 신선한 무공해 달걀을 얻기 위해 닭 세 마리를 키웠다. 제 역할이 끝난 이 닭들을 어쩔 것인가. 고민 끝에 K는 훤한 낮 보다는 캄캄한 밤을 택했다. 어두워지자 칼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닭장 앞을 왔다 갔다 하다 도저히 일을 벌일 수 없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주말 밤이 되어 또다시 닭장 앞을 칼을 들고 서성이다 하늘을 보니 보름달이 교교하게 빛나고 있다. 안 되겠다, 오늘은. 내일 다시 보자. 이러다가 한 달이 지나갔다. 

 

집닭을 잡다
K의 고민을 들은 이웃 친구가 도와주겠다고 자청했다. 그 백인 남자는 유튜브에서 닭 잡는 방법을 보고 닭을 빨랫줄에 거꾸로 매달았다. 거기까지였다. 그 남자는 갑자기 자기는 할 수 없다고 손을 뗐다. 닭을 잡는 일은 자동으로 K에게로 넘어왔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K는 막옷으로 갈아입고 닭장 앞으로 나갔다. 나머지 두 마리의 닭이 보면 안 된다. 닭장 앞을 칸막이로 가렸다. 돌아서 공중에 매달린 닭을 쳐다봤다. 백인 친구는 하지도 않으면서 K에게 주의를 시켰다. 닭 목을 잡은 손을 다치면 안 된다. 목보다 조금 윗부분을 쳐라. 오른손에는 칼을 쥐고 왼손으로는 닭 모가지를 잡았다. 결단의 순간, 칼이 잘 드는 줄 알았는데 한 번에 안됐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마구 뛰었다. 어떡해 어떡해, 눈 앞이 캄캄하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냐.

 

전설의 목 없는 닭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꽁꽁 묶었다던 빨랫줄에 매달려 있던 목 없는 닭이 풀려 땅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몸통이 데굴데굴 굴렀다. 왼쪽으로 또다시 오른쪽으로. 엽기적인 그녀 K는 혼비백산이 되었다. “저 닭을 좀 잡아줘요. 어떻게 좀 해줘요.” 피로 더렵혀진 옷을 벗어 던지며 뒷일은 백인 친구에게 맡기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소파에 누웠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머지 두 마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 마리는 처분했다. 나머지가 두 마리다. 백인 친구는 이제는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자기에게 맡기라고 했다. 내일 다시 와서 처리해 주겠다며 그 친구는 돌아갔다. 또다시 K는 그 남자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기다렸다. 잡아먹지도 않을 닭을 이렇게 최후를 맞이하게 해야 하는 건가. 누구는 모이를 주지 말고 굶기라고 하지만 그건 너무 잔인하다. 단번에 끝장을 내야 한다. 다음날 다시 찾아온 그 친구는 웬 낯선 사람과 함께 왔다. 나머지 두 마리의 닭을 입양할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이다. 백인 친구는 그 사람에게 닭에 대해 자초지종을 얘기했을 것이다. 동물 학대라고 여기지는 않았을는지. 닭들은 구세주를 만났다. 그건 K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서 K는 더는 피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몸보신에는 닭이 최고
내일모레가 초복이다. 7월 한여름 이날, 한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닭이 삼계탕으로 밥상에 올려질까. 시애틀에 사는 한인들도 이날 몸보신으로 삼계탕을 끓여 먹기도 한다. K는 시판하는 목없는 닭을 요리해 먹을 수 있을까. 직접 목격하지 않고 얘기만 들은 나도 꺼림칙하고 식욕이 떨어진다. 그래도 미 전국에서 닭이 제일 많이 소비되는 곳이 시애틀이라던데.

 

닭이냐 달걀이냐
공기 좋고 물 맑은 시애틀에서 집 뒷마당에 닭을 놓아 기른다. 푸른 잔디와 키 큰 나무 사이를 마음껏 누비며 푸다닥거리는 닭은 무공해 달걀을 주인에게 선사한다. 아이들에게는 닭을 관찰할 기회와 자연 공부가 된다. 이런 평화로운 그림을 그리며 닭을 기르려고 생각하신다면, K가 겪은 소임을 다한 닭을 처리해야 하는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있으신지 먼저 생각해 보시길…그런데 그 닭을 안락사시킬 수는 없었던 건가?    

                                                                          

[2014년 7월]


--재미수필 제17집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