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시장은 어디 있을까
신순희
외로울 때 시장에 간다. 어머니는 그랬다. 머리를 싸매고 누워도 가슴이 답답할 때면 어머니는 동네 시장엘 갔다. 낡은 전깃줄로 엮어진 장바구니를 들고서 집을 나섰다. 한동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장바구니에는 고등어 자반 한 손과 호박 같은 채소 그리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뜨끈뜨끈한 녹두빈대떡이 담겨 있었다. 시장에서 활기를 몰고 온 어머니는 고등어 자반을 씻어 소금을 털어내고 식칼로 탁탁 토막을 냈다. 고등어가 담긴 냄비에 물을 자작하게 붓고 빨간 고추 몇 조각을 띄워 끓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장은 언제나 활기차다. 쉼 없이 돌아가는 숨 쉬는 세상이다. 눈길을 유혹하는 상인과 얕보이지 않으려는 손님 사이가 팽팽하다. 서로 평등한 이웃이다. 시장가격은 누구나 넘겨 볼 만하다. 시장을 따라 걷다 보면 답답하던 가슴에 후련한 바람이 분다.
생선가게 좌판은 생생하다. 금빛 붉은빛 비늘이 번쩍인다. 가지런히 놓인 등 푸른 물고기가 탱탱한 눈알을 굴린다. 날개처럼 지느러미를 펼치고 바다로 돌아갈 태세다. 은빛 갈치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긴 몸을 꿈틀댄다. 바다가 그리워 살아 있나, 순간 꿈을 꾸게 한다.
시장은 시름을 잊게 하는 힘이 있다. 친구는 아들을 장애인 복지단체에 맡기고 한 달 넘게 시장을 헤맸다. 정상적인 동생이라도 잘 키우자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큰아들을 복지원에 맡긴 죄의식을 벗어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자식을 버린 비정한 엄마다, 날마다 아침부터 시장통을 실성한 듯 돌아다니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서야 친구는 겨우 일상을 찾았다. 살아야 한다.
시장에는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충만하다. 삶의 공집합이다. 좌판에 바나나를 몇 개 올려놓고 파는 아주머니는 천 원짜리를, 쫄바지를 파는 아주머니는 만 원짜리를 센다. 삶을 흥정한다. 간혹 시끄러운 소란이 일기도 한다. 사람 있는 곳에 다툼이 있는 건 당연하다. 큰 소리도 내고 삿대질도 해댄다. 나약한 건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 당당하게 걷는다. 돈을 쓰러 왔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니 기가 죽을 때 나는 시장에 간다.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쫄래쫄래 쫓아가는 어린 나는 상인들과 물건값을 깎느라 실랑이를 벌이다, 노상에 쭈그리고 앉아 연탄불 위에 놓인 무쇠 프라이팬에서 막 지져낸 빈대떡을 먹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번지르르한 기름이 묻은 엄마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나는 빈대떡을 먹고 배불렀지만, 엄마는 위장뿐 아니라 마음도 배불렀을 것이다. 어머니의 소박한 일탈이었다.
어머니는 동대문 시장에 자주 갔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내 손을 잡고 눈 부신 불빛 아래 휘황찬란한 한복감이 널려있는 포목점을 돌았다. 옷감에서 내뿜는 화학약품에 눈이 따가워도 개의치 않았다. 울긋불긋한 한복감을 가득 전시해 둔 채 여주인은 지금 막 바늘을 똑 딴 한복을 대갓집 마님처럼 입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옷감을 내 몸에 대어보며 이리저리 살펴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옷감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포목점 주인들 대부분이 배포가 큰 여장부이며 부유하다고 했다. 나약한 사람은 저 자리에 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시장은 강자가 살아남는 곳이다. 시장을 알면 사람이 보인다던가. 어머니가 되어야 비로소 시장을 알듯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강한 것은 날마다 시장에 가기 때문 아닐까.
일찍이 시장 순례에 재미를 붙인 나는 처녀 때, 어머니가 한복감 뜨러 동대문 시장에 가듯, 옷감시장에 자주 들락거렸다. 그곳에서 자투리 옷감을 저렴하게 구매해 양장점에 맡기면 내 스타일의 옷이 나왔다. 상인들이 바가지를 씌울까 봐 어설프게 당할까 봐 옷감에 대해 짐짓 아는 체를 하기도 했다. 가격을 두고 서로 몇 번 밀고 당기면 마지못해 상인은 밑진다며 팔았다. 내가 이겼다는 자부심으로 집에 돌아오지만, 그 가격이 결코 싼 가격이 아니라는 걸 알고나서는 얼마나 허탈하던지. 시장에서 나는 에누리 인생을 배웠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가난한 우리는 시장으로 데이트를 가기도 했다. 시장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늘어선 점포를 구경하지도 호객행위에 귀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런 것들은 그냥 배경이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적당한 소음은 긴장을 풀어주었다. 걷다가 배고프면 시장에서 쭈그리고 앉아 떡볶이와 어묵을 사 먹고 시장 입구에 있는 다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시장에 들어서면 잡념이 사라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손바닥 안에 동전을 쥐고 있어도 편안했다.
어머니는 이제 시장에 쭈그리고 앉아 녹두빈대떡을 먹지 않는다. 시장의 모습이 변해가고 있다. 질서 속에 무질서하던 시장이 반듯하고 깔끔하게 치장되어 간다. 시끌벅적 부담 없이 시장통을 활보하던 자유가 사라졌다. 규격화된 시장이 교양있게 정찰제를 고집한다. 조금은 덤터기를 쓰더라도, 가격을 흥정하느라 서로 탐색전을 벌이더라도, 그게 사는 재미인 것을. 운이 좋으면 덤을 받을 수도 있는 곳, 떨이 인생이 있는 곳, 서민들의 한숨을 받아주고 시름을 덜어주던 그곳. 가슴이 답답할 때 장바구니를 들고 나서던 어머니의 시장은 어디 있을까.
지금 나는 바람 부는 그 시장에 가고 싶다.
[2015년 5월]
--재미수필 제17집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