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꽃 / 구양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시기가 언제일까 생각해 보았다. 생각 끝에 문득 내린 결론은,
"정년을 한 후에 피우는 꽃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전에는 아무리 좋은 지위를 차지했다 하여도 아직 농숙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결점이 많은 미완성품이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정년 이후의 꽃은 더 이상 기교를 부릴 수 없는 마지막 정력을 다 쏟은 작품이어서 그보다 더 값지고 아름다운 꽃이 있을 수 없다.
앙스트블뤼테! 이 말은 독일의 생물학적 용어로 앙스트(Angst.불안)와 블뤼테(blute.개화)가 합해진 말로서 직역하면 불안 속에 피는 꽃이란 의미이다. 평소에는 꽃을 잘 피우지 않는 전나무가 상황이 악화되어 극도로 불안해지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단다. 이듬해에 죽음을 예감한 전나무가 마지막 모든 힘을 다 짜내 피워 올리는 생애에 가장 아름다운 꽃인 것이다. 생애에 단 한 번 피는 대나무꽃도 앙스트블뤼테이다. 대나무는 뿌리로 번식하기 때문에 꽃이 피지 않지만 뿌리 번식이 더 이상 불가능한 경우에 이르면 자기의 모든 정력을 다 쏟아 마지막 단 한 번의 꽃을 피워 종자를 맺고 말라 죽는다.
태어나서 단 한 번 우는 가시나무새의 노랫소리도 그런 비련의 내력을 간직하고 있다. 가시나무새는 자기 생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알에서 깨어나 이소離巢하면서부터 가시를 찾아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뾰족한 가시를 찾았다고 느꼈을 때 그 가시를 향해 돌진하여 자신의 심장을 가장 깊숙이 찔러 박는다. 그래서 온몸에 피를 흘려가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죽는다. 천상의 노랫소리와 자기의 목숨을 맞바꾸는 것이다.
나는 소설이 쓰고 싶었다. 그러나 미치도록 쓰고 싶은 소설을 손도 대보지 못하고 공부에 평생을 쫓기고 말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이 나라 저 나라 대학원 공부만 20년의 세월을 보냈고 교편을 잡고 강의다 의무논문이다 쫓기다가 정년을 맞이하고 말았다. 정년을 하고 나니 하늘을 날 것처럼 가벼웠다. 나에게 이제 아무런 의무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그처럼 하고 싶었던 소설 쓰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으뜸 소설가라는 조정래, 황석영, 김훈, 이문열, 박범신들이 모두 내 또래이다. 아마 내 또래의 아희들이 소년 시절에 소설에 대한 가장 강한 유혹을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들은 벌써 나보다 반세기 전에 출발하였는데 나는 지금 출발해서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있다. 있고말고."
나는 자기 격려용 함성을 질러보았다. 내 특기가 무엇인가. 남들이 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해내는 것이 내 특기 아닌가. 그들은 나처럼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다. 나처럼 다양한 경험도 쌓지 않았다. 내가 모든 실력을 발휘해서 덤빈다면 왜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겠는가. 나도 사학도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식 고취를 소설화해야 하니 그들과 작품의 지향성이 겹칠 일도 없다.
소설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근대 사상가인 량치차오(梁啓超)가 소설계 혁명을 주장한 것도 바로 그 효용면을 보고 놀랐기 때문이다. 경서를 읽으라 하면 모두 졸고 지겨워하는데 『수호전』이나 『홍루몽』은 읽지 말라고 쫓아가 말려도 밤새워 읽고 몰래 숨어서도 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청대에는 '홍루몽 망국론'이 나왔다. 어찌나 『홍루몽』을 읽어대던지 『홍루몽』 때문에 나라가 망하겠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수백 번, 수천 번의 농민봉기가 일어났지만 성공을 거둔 것은 마오쩌둥의 공산혁명이 최초이다. 그 마오쩌둥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책이 바로 『수호전』이란 소설이었다. 마오쩌둥과 함께 공산혁명을 끝까지 이끌고 한국전에 중공군 총사령관으로 참전했던 펑더화이(彭德怀)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은 청말 견책소설 『이십 년 목도지괴현상二十年目覩之怪現狀』이었다. 이 책은 청말의 부패상을 폭로한 내용인데 손을 부르르 떨 정도로 생생하게 타락한 청말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주창하게 된 동기는 바로 스토(Harriet Be-echer Stowe) 부인이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저처럼 강인한 민족이 되고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가장 많이 나오게 된 동기는 그들의 『탈무드』라는 스토리텔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잔여기간을 소설을 쓰면서 마지막 꽃을 피워보기로 결심하였다. 단편소설을 몇 편 써서 말로만 들어오던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보았다. 물론 다 떨어졌지만 어느 한 신문사의 심사평을 읽어보고 저으기 안심하였다. 그처럼 많이 응모한 소설 중에서 마지막으로 5편을 골라놓고 심사숙고한 끝에 모 작품으로 결정하였다는 이야기인데 그 5편의 작품 중에 내 단편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수준은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번에는 장편소설 한 편을 어느 이름 있는 문학상 공모에 응모하여 보았다. 두어 달 후에 심사위원 측으로부터 당선이 됐다는 꿈같은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할 일이 확실히 정해진 셈이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를 위하여 솔개의 우화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솔개는 최고 약 70년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그렇게 살려면 약 40년이 되었을 때 매우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결심을 해야 한다. 40년쯤 지나고 나면 부리는 쫄 수 없게 구부러지고 발톱은 힘을 잃고 무뎌지며 날개는 무거워지고 윤기 없는 모습으로 퇴화한다. 이렇게 서서히 죽어갈 것인가 아니면 갱생의 길을 택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다. 갱생의 길을 택하기로 결심한 솔개는 홀로 바위산으로 날아가 둥지를 틀고 서식하며 매일 바위를 쪼기 시작한다. 자기의 부리가 다 닳고 깨질 때까지 계속한다 '타닥! 타닥!' 함밤중에도 들려오는 살신의 부리 깨트리는 소리! 부리가 다 깨져 없어진 자리에 드디어 아름답고 튼튼한 새 부리가 솟아난다. 그다음은 밤마다 굶주린 창자로 울부짖으며 새 부리로 자기의 낡은 발톱을 하나씩 뽑는다. 그래야 새 발톱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기의 쓸모없게 된 깃털도 하나씩 다 뽑아 날려버려야 날렵하고 윤기 나는 새 깃털이 자라난다. 이렇게 목숨을 건 약 반년의 투쟁을 하고 나면 솔개는 새로운 30년의 세월을 서슬 퍼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