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상(好喪) / 이명애

 

 

솟을대문에 조등(弔燈)이 걸렸다. 아버지는 안채와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멍석을 깔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부엌 아궁이에 솔가지를 넣고 불을 지폈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달궈진 가마솥에서는 김이 새어 나왔다. 연기와 김이 엉켜 처마 밑으로 자욱하게 퍼졌다. 돼지고기 익는 냄새가 집 안을 맴돌다 담을 넘어갔다. 삼삼오오 도착한 조문객이 멍석 위에 자리를 잡았다. 땅거미가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마지막 영혼을 달래려면 웃고 떠들어야 한다는데 이날은 엄마가 가던 날의 적막과는 달랐다.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는 맏아들인 아버지와 평소처럼 마주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일제강점기에 탄광에 끌려갔다느니, 전쟁 통에 애들을 셋이나 잃었다는 옛날 일을 떠올리다 갑자기 멈췄다. 당신 명이 다했다는 걸 직감한 듯 말을 돌렸다.

“나 이제 가야 하니 서울에 있는 애들 좀 불러다오.”

세 고모와 작은아버지 형제가 부리나케 내려와 임종을 맞았다. 전에도 자식들을 불러들이곤 했지만, 별일은 없었다. 그날은 느낌대로 마지막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랫목에 누워 잠자듯 눈을 감았다. 머리맡에는 물도 없이 입에 털어 넣던 ‘뇌신’이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밥을 드실 때마다 한 숟갈을 남기는 게 평소의 식사법이었다. 풍수지리를 보고 점을 치는 수양 할아버지에게 부탁하여 몸 여기저기에 쑥뜸을 뜨고 침을 맞기도 했다. 어떤 날은 화투로 갑오 떼기를 하며 하루의 운세를 점쳤다. 손가락으로 육십갑자를 읊고 십간과 십이지로 사람의 나이와 띠를 알아냈다. 바가지 머리 손녀에게(이치, 니, 산, 시… 큐, 쥬….) 일본말 숫자 셈도 가르쳐주었다.

장날이 다가오면 바깥마당 감나무 아래서 싸리나무 줄기를 훑어내 발을 짜거나 지게를 만들었다. 산에서 베어온 소나무 위에 왕겨 한 가마니를 부었다. 불을 붙여 까뭇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 고사리손을 빌려 감나무에 새끼줄로 묶었다. 샘물가 숫돌에 쓱쓱 낫을 갈아 끌과 망치로 하얀 속살이 드러나도록 소나무 껍질을 벗겨냈다.

나는 서툰 솜씨로 들에 나간 엄마 대신 할아버지 밥상을 차렸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손등으로 물을 맞춰 밥을 안쳤다. 꼬맹이가 만든 반찬을 호물호물 씹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엄마에게 짓던 표정과 똑같았다. 맛있다는 얘기였고 조수로서 흡족하다는 뜻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달랐다.

“여든을 넘기셨으니, 호상이여. 암만, 그렇고말고.”

“육 남매 얼굴까지 다 봤지. 복 받은 양반이여.”

“정열 엄마가 오래 살았어야 했는데, 쯧쯧.”

구석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호상에는 눈물을 보이는 게 아니라고도 했다. 아버지는 통곡하지 않았다. 머리에 삼베 굴건(屈巾)을 쓰고 봉당에 지팡이를 세운 채 “아이고, 아이고.” 곡을 반복하고 절만 했다. 친척들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문을 했다.

뒷산 언덕에는 오래전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묻힐 묏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배산임수는 아니어도 앞이 트이고 양지바른 곳이었다. 그러나 몇 해 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엄마는 그곳이 아닌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 공동묘지에 묻혀야 했다. 애당초 언감생심이었다. 젊은 자식이 앞서가면 선산에 묻을 수 없다는 오랜 금기 때문이었을까. 어렸던 나는 그 연유를 알 수도 없었고 묻지도 못했다.

엄마보다 오래 산 할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 명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며 며느리를 야속하다 했을까. 산소 자리를 내어주지 못해 미안해하셨을까. 천수를 누리고 고통 없이 눈을 감았다고 어찌 호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새벽조반을 따로 차리고 잠자리를 여미던 집안의 대들보가 무너지고 없는데….

하루가 지나고 장의사 일을 하는 아랫마을 친척 아저씨가 자손 모두를 안방으로 불렀다. 아랫목 할아버지를 덮고 있던 광목 이불을 내렸다. 여느 때처럼 주무시는 듯 보였다. 목화솜을 뜯어 돌돌 뭉쳐서 코와 입, 귀를 막았다. 얼굴엔 삼베를 씌워 목을 죄고 팔다리는 새끼줄로 꽁꽁 묶었다. 다리를 밟아주었다고 장판 밑에서 오백 원 동전을 꺼내 쥐여주던 할아버지, 손수 만든 지게를 팔아 껌을 사주던 나의 할아버지, 어른들 뒤에서 숨죽여 지켜보던 나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산소 자리로 향하는 길, 아버지는 여전히 메마른 곡을 하며 상여를 뒤따랐다. 소복을 입은 고모들만 눈물을 훔쳐냈다. 상여를 멘 상두꾼들의 걸음은 둥텅둥텅 묵직했고 입에선 처량한 망향가가 흘러나왔다. 북망산천 멀다며 길게 목을 뽑던 이들이 막걸릿잔 앞에서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고기 안주를 집어 들며 농담을 주고받았고, 상여가 흔들릴 때마다 그들의 어깨도 함께 들썩였다. 노잣돈이 없어 망자의 발이 땅에 붙었으니, 돈뭉치를 끼우라고 멈춰서기를 반복했다. 자손들이 운구에 꽂은 만 원짜리 지폐가 바람에 나부꼈다.

눈발이 날리면서 하늘 속으로 청회색 빛이 잔잔히 번졌다. 골짜기에서 불어온 바람이 문상을 온 것처럼 한 바퀴 상여 위를 휘돌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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