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산다 / 남태희

 

 

기차에 몸을 싣는다. 아침을 깨우는 희붐한 안개가 드리워진 창에 머리를 기댄다. 철커덩 출발을 알리는 진동에 연이어 일정한 흔들림이 불안정한 심사를 위로해 준다. 눈을 감아 본다. 철컹철컹 일정한 침목의 간격 덕분인지 연속한 기계의 작동 덕분인지 치솟았던 마음자락이 수굿해진다. 한쪽으로 어깨가 살짝 기울어진다. 곡선 구간인가 보다. 해안선이 보이겠지 싶어 실눈을 하고 밖을 보니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고 있다. 출렁이며 깨어지는 것이 어디 파도뿐이겠냐며 굽어진 해송 한 그루가 참빗 햇살에 몸을 맡긴다.

 

다시 눈을 감는다. 햇살의 유희가 시작된다. 촘촘한 빛살, 느슨한 빛살,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빛살, 언덕에 막힌 빛살, 커튼 자락에 걸렸다 들어온 빛살, 움직임에 따라 밝음의 명도와 채도가 달라진다. 보랏빛이었다가 붉은빛이 되기도 황금빛이 되기도 한다. 감은 눈 안에서 태양체가 축제인 양 정말 화려하다. 하지만 곧 캄캄한 어둠의 세계다. 짧은 터널을 통과하자 곧이어 햇빛의 헤적질이 무궁하게 변화한다. 나의 인생도 딱 이만큼만 따스하고 딱 이만큼만 흔들리고 싶다고 욕심을 부려 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읊어 본다. 흔들리지 않으며 젖지 않으며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는 시인의 외침에 목울대가 짜르르 진동한다. 세상사 살아있는 것들은 흔들림 속에 있다. 풀은 비바람에 몸을 누이고 나무도 온밤을 뒤척이며 쉽게 잠들지 못한다. 하물며 사람은 오죽이나 할까. 작은 마음의 미동부터 크게는 뿌리째 뽑혀 버릴 듯 무너져 내리는 심정을 한 번도 겪지 않고 살 수가 있을까. 제풀에 힘겨운 마음을 누군가에게 보이기 싫은 날, 혼자서 앓는 몸살이 심하다.

 

담양 대나무 숲에 가서 숲의 합창을 들은 적이 있다. 묵언수행자처럼 조용하던 대나무 숲에 바람이 첫 음을 잡자 목금木琴의 연주에 맞추어 합창이 시작되었다. 푸른 합창복을 맞추어 입고 살랑이며 한 치의 음도 이탈하지 않고 부르던 대나무 숲의 노래는 더 큰 울림을 주었다. 유약한 한 줄기 어린 대나무가 하늘 높은 곳까지 키를 키우는 동안 얼마의 세월을 인내해야 했을까. 마디마디 내쉬었던 날숨으로 숲은 촉촉이 물기를 머금었다. 깊은 침묵의 비워냄과 바람의 희롱을 승화한 청음淸音을 들려주었다. 흔들리며 지켜낸 직립은 그래서 더욱 경건하여 칭송의 대상이 되었지 싶었다.

 

어느 해에는 울진 소광리 금강송 숲에 간 적이 있다. 몇백 년을 지켜온 붉은 소나무 숲에 서니 나무의 혼에 기가 눌리는 듯 조심스러워졌다. 올곧게 쭉쭉 자란 나무인들 비바람을 온전히 피하고만 자랐을 리 없다. 온갖 풍파를 몸으로 맞으면서도 제자리를 지켜낸 나무에 신령한 힘이 서려 있었다. 신응수 대목장이 쓴 책 『목수』를 보면 벌목을 하러 가서 나무를 베어낼 때, 나무와 산신께 임금님의 명이니 어쩔 수 없이 명을 따라야 한다고 고告하고 나무를 베어내는 의식을 치른다는 것이다. 그 깊은 뜻이 숲에 서니 이해되었다.

 

숲을 걷다가 눈길이 오래 머문 나무가 있었다. 세월의 무게와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한쪽 가지가 휘어지고 구부러진 나무 한 그루였다. 같은 토질의 산에서 비슷한 세기의 바람을 맞고 자랐는데 유독 이렇듯 못나게 툭 불거진 옹이며 굽은 가지를 지녔는가 하여 애잔한 눈길을 주었다. 사람들은 바르게 쭉 뻗은 소나무가 아니라 비틀리고 휘어진 가지를 가진 나무 아래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무슨 까닭일까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김난도의 말처럼 솔씨 하나가 움을 틔워 나무가 되기까지 쉼 없이 흔들리며 자라지 않았을까. 그 세월을 견뎌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진에 찍힐 만한 자격이 있지 않은가.

 

비바람 속에서 풀과 나무는 지쳐 넘어져도 긴 밤을 이겨내고 새벽이 오면 꺾인 관절을 곧추세워 몸을 일으킨다. 그것이 사명인 것처럼 푸른 손 짚어 툭툭 털고 일어난다. 물결치듯 흔들리는 대나무 숲의 푸른 공명, 푸른 손끝에 전해지는 빛살의 떨림, 흔들리며 젖으며 살아내는 것들이 아름다운 것은 중심마저 흔들리지 않으려는 의지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부러진 채로 자랄 수밖에 없었던 나무에게 서늘한 눈길을 줄 수만은 없었다.

 

종착역이 아직 멀었나 보다. 기차는 침묵에 젖어 흔들리고 있다. 시인이 말한 흔들리며 핀다는 것은 시간을 견딘다는 말이고 세파를 이긴다는 말이다. 자신을 추스른다는 말일 것이다. 가끔 바람 앞에 설 때면 직립은 고사하고 버틸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작은 고비마다 손톱 밑 가시처럼 아파하는 나 자신을 보며 굽어진 적송의 반만큼만이라도 닮아 있느냐고 묻고 싶다. 그날 소광리 숲을 천천히 걸으며 하늘 끝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했던 많은 생각들을 벌써 잊었는가. 부끄러운 마음에 창밖을 본다. 수없이 흔들리다 멈추어 선 겨울나무가 햇살 아래 성자처럼 서 있다.

 

또 한 번 기차가 곡각지를 돈다. 쏠리는 몸을 바로 세우고 눈을 감는다. 감은 눈 속에도 햇살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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