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빛깔

 

 

 

  협회 일을 하다보면 크고 작게 의논거리가 생긴다. 연례행사, 월례회, 퓨전수필이나 재미수필 발간, 회원 관리 등. 일의 내용에 따라 의논을 해보면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 누군가에게 의논을 하려고 할 때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다루어져 한층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재탄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대화를 하고 나면 부정적인 자기 잣대로 볼품없이 재단해서 의욕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생각했던 사안을 아주 근사하게 해석하며 북돋워 주는 사람이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힘이 불끈 솟게 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 미심쩍어하며 내어 놓은 의견을 멋진 행사로 둔갑시켜 주거나, 자신만만하게 일을 밀고 나가라며 용기를 준다.

  “흐흠~ 어렵겠는데? 그래도 한번 시도해 봅시다. 의견이 괜찮네요.”

  “아이구우,  회장님이 자꾸 일을 저질러서 죽겠네. 그래도 한번 해 봅시닷. 어떡해요. 회장님이 하시겠다는데~~엥.”

 그럴 때면 나는 히히히 멋쩍게 웃으며 설익은 내 의견을 자진해서 철회한다. 그래도 기분은 참 좋다. 협회를 위해서라면 무슨 희생이라도 하겠다는 각오도 생긴다.

  협회를 맡고 부터 사람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도 있다. 우리 회원이었던가 싶을 만큼 낯설던 분이 따뜻한 말로 격려를 해주고. 사귐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던 분이 마음을 열고 대화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준다. 참 고맙다.

 

  어떤 일을 해도 실패만 하는 청년이 점쟁이를 찾아갔다. 좌절에 빠진 그는 자신의 전생을 알고 싶었다. 점쟁이는 그의 전생이 나폴레옹이었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청년이 변했다. 패기와 열정이 나폴레옹을 닮아갔다. 그의 인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이 난 청년이 선물을 사들고 점쟁이를 다시 찾았다. 점쟁이는 보너스라며 그의 전 전생은 솔로몬이라고 말해 주었다. 청년은 또 지혜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었다. 용맹과 지혜로 무장된 청년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점쟁이가 만일 그에게 전생이 거지였다고 알려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말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나는 이야기다. 내가 무심코 뱉은 말에 상대방의 인생이 무너지기도 싱싱하게 살아나기도 할 수 있다니,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얼마 전 K선생님의 수필에서 ‘그래, 사람은 다시 잎 돋는 나무가 아니지.’ 라는 글귀를 읽고는 마음이 멈추었다. 다시 돋지 않는 것이 어찌 사람의 생명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고통은 시간에 묻어 잊혀지지만 말로 받은 상처는 치유가 어렵다. 말이 준 상처는 다시 잎이 돋을 엄두도 못 낼 만큼 철저히 마음을 훼파해 버리기 때문일까.

말도 꽃처럼 빛깔을 지니고 있다. 강렬하게 파고드는 빛깔, 여운을 남기는 감미로운 빛깔, 모든 것을 끌어안는 부드러운 빛깔.

  희망해 본다. 우리가 모여 있는 곳에는 빛깔 고운 말이 꽃잎처럼 향기를 내면 좋겠다고. 얼굴을 마주 대할 때 마다 격려와 칭찬과 생명의 말만 술술 나오면 좋겠다.

누군가 나의 전생이 에밀리 브론테였거나 박화성이었다고 말해주는 사람 어디 없을까?

<사람이 고향이다 2016>

<2013년 퓨전수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