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발표 원고

 

교포 문화와 함께 하는 해외의 한글 문학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성민희

 

조국을 떠나 멀리 미주에 살고 있는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한글작가대회’라는 큰 잔치에 초청을 받으니 영광스럽고 황감하기 그지없습니다. 삶의 터전은 비록 바다 건너 멀지만 마음은 항상 모국의 하늘을 그리워했기에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오는 듯 설레는 마음입니다.

 

‘한글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한글로 글을 쓰는 작가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개최된 이 모임의 취지에 적극 공감하며 부족하나마 도움이 되고자 현재 제가 거주하고 있는 엘에이의 한글 교육 상황, 문인 활동과 비전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엘에이는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많은 동포들이 살고 있듯이 한글 교육에 대한 관심 또한 지대합니다. LA 한국교육원에서 집계한 ‘2015년도 재외한글학교 일반 현황 및 2014년도 집행결과’를 보면 엘에이 근교의 모든 도시는 물론, 엘에이한국교육원 관할인 네바다주, 애리조나주, 뉴멕시코 지역까지 포함한 한글학교의 수는 모두 1,936개교이며 교원 296명이 12,374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한국교육원에 등록되지 않은 각 교회 산하 한글학교나 개인이 운영하는 학교까지 합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숫자의 학생들이 한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실컷 늦잠을 자며 쉬어야 할 토요일 아침에 눈을 비비며 한국학교로 모여드는 아이들을 보는 일이 때로는 감격스럽습니다.

이 한글학교들은 모두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학교이지만, 타인종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 한글학교도 한국교육원에서 주관하는 학교를 비롯하여 너 댓개는 됩니다. 한국의 경제적인 지위와 한류열풍이 한글에 대한 매력을 높여주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가 되겠지만 동포들의 뿌리의식과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부응하여 한글로 작품을 쓰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행사도 많이 있습니다. 각 학교나 단체에서는 백일장을 개최하여 2세들의 한글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주고, 신문사와 문학단체에서 주관하는 문예 공모 등은 역량 있는 문인들을 발굴하는 역할을 감당해 줍니다.

현재 엘에이에는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모임도 많이 있지만 특히 수필가는 등단 작가들의 모임인 저희 「재미수필문학가협회」를 비롯하여 수필가로서 등단을 준비하는 여러 동호회와 원로 선배님들이 지도하며 이끌어가는 다수의 수필교실 등이 있습니다. 이 모임들은 북쪽 밸리에서 부터 남쪽 오렌지카운티까지 엘에이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으며 매년 각 단체의 특성을 살린 문학 축제를 개최하고 동인지, 연간 작품집 등을 발간합니다.

 

제가 봉사하고 있는 「재미수필문학가협회」는 대다수의 회원들이 한국을 떠나온 지 30년을 넘은 분들입니다. 영어와 한국어가 공존하는 엘에이에서 오래 거주하다 보니 어느 쪽 언어에도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 어중간한 언어 구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어휘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작년 5월, 한국에서 스무 여 명의 문인들이 동부인문학 기행을 왔습니다. 그 그룹에 저희 협회 몇 사람이 동행을 하였습니다. 미국 작가들의 생가나 묘지 탐방 중에 안내원들의 설명을 듣는 자리에서,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위한 통역을 부탁 받았습니다. 말이 귀에 들어오긴 하는데 그 말을 한국말로 통역하려니 한국말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한국말로 하는 질문을 또 영어로 옮겨 전달하려니 영어 단어도 떠오르지 않아 곤혹을 치렀습니다. 통역을 듣고 있던 한국의 문인이 오히려 한국 단어를 가르쳐 주는 웃지 못 할 헤프닝도 있었습니다. 당황스럽던 그 상황에서 영어와 한글, 어느 것에도 풍성히 젖지 못한 채 한정된 단어만을 사용하며 살고 있는 우리가 답답하다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모한 행동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해마다 조금씩 변하는 문법과 맞춤법, 띄어쓰기는 차치하고라도 생각의 방향과 흐름조차도 본국 문인들과의 차이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국어란 무엇입니까.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처음 만난 언어이며 내 피와 가슴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언어가 아닙니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던 언어. 나를 키워주고 다듬어준 한글이기에 아무리 이국땅에서 오래 살아도 우리는 절대로 소홀히 하거나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더욱 애착을 가지고 사랑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수필을 쓰는 본 협회 회원들은 변하는 문법을 열심히 배우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포맷의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미주교포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경험과 의식으로 형성된 ‘독특한 교포문화’를 표현하려고 애를 씁니다. 교포사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여러 경험을 꾸밈없고 진솔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평범한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우리들만의 ‘독특한 교포문학’을 형성하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제 미주 문인들의 활동 상황을 말씀드리면서 제가 속한 「재미수필문학가협회」를 구체적으로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본 협회는 로스엔젤레스를 거점으로 미주 전역의 수필가들이 회원으로 구성된 등단 수필가들의 모임입니다. 회원들은 모두 본국의 문예지나 미주 신문의 신춘문예, 혹은 본 협회나 타 협회의 문예지 등을 통해 등단한 수필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회원이 현재 70여 명이며 그 외 타주를 포함하여 등록된 회원까지 합하면 약 100여 명이 됩니다.

본 협회는 1999년 초대 회장 김영중 수필가를 비롯한 미주의 수필가들이 미주지역 한인 수필문학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상호 친목과 교류를 통하여 미주 문단의 성장과 한인 사회의 문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창립 하여 올해로 만 17년이 됩니다.

협회의 모임은 매달 전 회원이 참여하는 월례회와 각 지역별 모임인 수필교실이 있습니다. 월례회는 매달 세 번째 목요일에 모여 강사를 모신 세미나를 하거나 인문학 공부를 하고, 지역수필교실에서는 반장과 부반장을 중심으로 가까운 지역 회원들끼리 모여 서로의 작품을 합평하여 습작 능력을 키우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지역수필교실은 현재 북쪽 밸리 지역의 밸리반, 엘에이 근교의 엘에이반,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는 회원들의 오렌지반, 직장 관계로 참여가 힘든 회원을 위한 주말반, 그리고 타주에 거주하는 회원들끼리 온라인으로 나누는 온라인반이 있습니다. 이 수필교실은 매월 1회 모임을 가지되 참여 회원들의 형편에 따라 날짜를 정해서 모입니다. 지역 모임을 통하여 회원 간의 교제는 물론 단합이 잘 이루어져, 지역 수필교실은 협회에 좋은 에너지를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회원들의 활동 상황은 미주에 있는 각 언론사의 필진으로서 동포사회와 문학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은 물론 문화를 선도하며, 한국과 미주의 여러 신문. 수필전문지에 작품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개인별로도 개인 수필집과 회원 몇 명이 함께한 동인지 발간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합니다.

회원 작품집으로는 1999년 <<재미수필>> 창간호가 발간된 것을 필두로 매년 35명 남짓한 회원들의 참여로 계속 발행되어 올해 제18집을 준비 중입니다. 또한 현재 54회까지 발간된 계간지 <<퓨전수필>>은 대내적으로는 로스앤젤레스 거주 회원들과 멀리 타주에 살고 있는 회원들의 작품 발표를 통한 문학적 교류는 물론 서로의 동정과 활동소식을 나누기 위하여, 대외적으로는 해외에 있는 각 문인단체들에게 본 협회의 활동을 홍보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퓨전수필>에는 매호 본국 수필가 한 분의 작품을 초대글로 싣고 있습니다.

 

본 협회가 창립된 지 15주년이 되던 재작년에 오랜 숙원이었던 ‘재미수필해외문학상’을 제정하였습니다. 이 상은 미주를 비롯한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수필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해외수필문학 발전에 기여하고자하여 제정한 것입니다. 이민 생활에서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된 향취와 문학성이 높은 작품을 기대했지만 불행히도 1, 2회는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대대적인 홍보로 많은 수필가들의 응모가 있어 훌륭한 수필가를 만나 볼 기회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리고 글쓰기에 취미나 재능을 가진 분들에게 수필가로의 꿈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해주는 연간 작품집 <<재미수필>> 신인상 공모도 합니다. 올해로 11회가 되는 만큼 여러 분의 수필가를 배출하였습니다.

본 협회는 이 두 종류의 상을 통하여 미주문단의 역량 있는 수필가를 격려하고 더하여 신진 수필가들도 발굴해내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위대한 세대’이라고 불리는 존경 받는 세대가 있습니다. 1911년부터 1924년 사이에 태어나 1929년의 대공황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후, 전후 복구와 경제건설을 위해 노력하여 마침내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세대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미국의 유명 방송인 탐 브로커(Tom Brokaw)가 평범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미국을 최강국으로 이끌었나를 저술한 책 <The Greatest Generation>에서 따 온 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미주의 문인들도 이런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이민 1세들은 조국의 흙을 뿌리에 묻힌 채 미국으로 이주해 와 낯 선 땅에 새로이 뿌리를 내린 사람들입니다. 척박한 땅이든 비옥한 땅이든 뿌리를 새로 내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이 드는 일일진대, 현재 미주교포들은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고,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어 어느 민족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미주 이민 역사를 돌아볼 때 이들 또한 위대한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위대한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우리들은 글로 풀어내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집니다. 이 작업은 함께 삶을 나누는 미주 문인들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문학이 될 것입니다. 미주 이민사의 생생한 역사를 엮는 일이며 또한 우리 2세들의 미래를 여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조국을 떠나와서 살고 있지만 정신과 육체 가운데 흐르고 있는 한국적인 정서를 문학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축복을 그냥 흘리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그 간절함이 오늘의 미주문단을 지탱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미주 문인들은 교포사회를 글로써 그리는 거울이 될 것이며 성찰하는 사관(史官)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국 문학의 또 다른 영역을 멀리 이국땅에서 가꾸며 넓히는 역할을 감히 감당하겠다고 말씀드리며 이만 말을 맺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발표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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