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햇살이 반갑다. 로스엔젤스의 겨울답게 사흘 내내 비가 퍼붓더니 오늘에야 날이 개였다. 오랜만에 나온 골프장이 엉망이다. 세찬 빗줄기에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여기저기 어지럽다.
그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짙은 녹음을 함지박처럼 머리에 이고, 풍성한 이파리에 지나간 세월을 켜켜이 품고 있던 나무가 사라졌다. 넓은 그림자를 깔고 앉아 홀 그린과 파킹장의 경계를 확실하게 그어주던 의연하고 도도하기까지 하던 그것이 뿌리 채 뽑힌 것이다. 무성한 가지가 사라진 하늘이 휑하니 비었다.
나무가 뽑혀 나간 큰 웅덩이 안에는 조각난 몸통이 히멀건 속살을 드러내었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군데군데 깊은 상처도 보인다. 키 작고 몸이 가는 나무들도 제 자리를 지키고 섰는데, 어찌 이 우람한 나무는 덩치값도 못했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뿌리 밑동 한군데가 새까맣게 썩어 있었다. 멀쩡한 나무 둥치 한 쪽이 썩어 들어가는 줄 누가 알았으랴. 오랜 세월 자존심 하나로 버티곤 있었지만, 상처는 소리 없이 조금씩 깊어졌던 모양이다. 힘없이 무너진 것이 어찌 비바람 탓이랴. 작은 상체기가 깊은 상흔이 되기까지 누구에게서도 어루만짐을 받지 못한 탓이 아니었을까.
웅덩이가 질척하다. 나무뿌리를 타고 줄금거린 빗물이 고였다. 그 날 친구의 관이 내려졌던 자리, 그 찰방한 웅덩이에도 흙이 엉켜있었다. 문득 오래 전 세상을 등진 친구의 얼굴이 쓰러져 누워있는 뿌리에 걸린다.
부유한 가정의 맏딸이었던 친구는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 사랑만 먹고 자란 그녀가 가난한 홀어머니의 맏며느리가 되어 신혼살림을 차렸다. 나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캠핑장과 스키장을 번갈아가며 들락거리고 있을 때, 친구는 포항공업단지의 작은 사글세방에서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풋내기 신입사원인 남편의 월급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어 쓴단다... 남편이 먹다 남은 생선뼈를 발라 먹었어... 담뱃값이 아까워 남편에게 하루에 두 개비씩 배급을 주고 있구나... 뒷마당에 널린 호청이 눈부셔... 빡빡 닦은 냄비에서 차르르 윤기가 난다... 전혀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가 수시로 우체통으로 날아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이 어떤 건지 전해 주었다. 시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책임지고, 주택 마련을 위한 저축을 하라면서 적금통장을 두 개나 갖다 주었다는 시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경제적인 어려움도 그녀를 괴롭히지는 못하는 듯 했다.
몇 년 후, 임신을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이슬 머금은 꽃잎처럼 그녀의 편지 내용은 싱싱해졌다. 배 속에 아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배가 불러오듯 행복도 점점 커지는 줄로 알았다. 아니, 어쩌면 그럴 거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해 겨울, 친구가 친정집에 와 있다는 연락이 왔다. 그녀는 온 몸이 붉은 반점으로 덮혀 퉁퉁 부어있었다. 반갑다고 미소를 보였지만 이내 입술 꼬리가 고통으로 뒤틀렸다. 임신 7개월의 아기는 뱃속에서 계속 발길질을 해대었고, 친구는 만신창이었다. 곁에서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던 친정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남편의 도시락만 싸주고 자신은 점심을 굶은 바보아내, 시어머니의 호령에 심장이 쪼그라진 불쌍한 며느리, 곪고 썩어가는 육신과 함께 마음까지 피폐해진 딸. 게다가 곧 태어날 아가의 엄마까지, 수많은 이름을 달고 친구는 버겁게 투병을 했다.
조산으로 아주 조그만 아기가 태어났다. 머리맡에 수북한 엄마의 약병과 아기의 젖병들. 아가는 생명의 길로. 엄마는 죽음의 길로. 둘은 서로 다른 길을 좁혀보려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고작 사나흘이었지만.
친정어머니의 필사적인 간호와 민방요법도 소용없이 친구는 떠났다. 유난히 회색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날이었다. 공원묘지는 지짐거리던 빗줄기가 조금씩 굵기를 더했다. 관을 앞에 두고 상여꾼들은 둔한 삽질을 계속했다. 조금씩 커지는 구덩이로 사방에서 빗물이 흘러들어 갔다. 친구를 담은 관이 질척한 웅덩이에 내려졌다. 친구의 어머니가 관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경숙아, 니가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노!”
사람들이 봉분을 밟는 사이 시어머니가 아들을 구석 자리로 불러냈다. 손바닥으로 비를 가리며 보온병에서 뜨거운 커피를 따루었다. 아들도 돌아서서 넙죽 커피를 마셨다.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시어머니의 눈이 희번덕거리며 아들의 얼굴을 쓸고 내려갔다. ‘산사람은 살아야지.’ 가끔 장례식장에서 듣던 말이다. 죽은 사람은 떠난 사람이니 산 사람은 입고, 먹고, 마시며 살아야 한다. 나도 종종 그런 말을 듣고 또 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구의 장례식에서 들은 그 말처럼 내 마음을 무너뜨린 적은 없었다. 나는 새삼 추위에 몸을 떨었다.
친구들은 저만치 골프채를 흔들며 가고 있는데 나는 뿌리 채 뽑힌 나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얼마 전에만 해도 그린 위에 우람하게 서 있던 나무가 이제는 내 발 아래에 처연히 누워 있다. 두 손을 내밀어 가만히 나무 둥치를 쓰다듬어 본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 <중앙일보 문예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