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잖아

 

  타운에서 열리는 탈북자 세미나에 참석했다. 일정이 끝난 후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받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함께 간 L장로님이 보이지 않았다. 보나마나 줄 맨 뒷자리에 서서 계실 거라며 부인 권사님이 두 개를 받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늦게야 나타난 장로님은 줄이 너무 길어서 도시락이 모자란다며 털레털레 빈손이었다. 장로님은 우리가 내미는 도시락을 받자 부리나케 일어나더니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걸 드시겠냐고 묻고 다녔다. 오히려 구걸하는 사람처럼. 다행히(?) 아무도 그것을 받지는 않았고, 우리도 나눠먹을 필요 없이 편안하게 각자의 도시락을 먹었다. 전혀 식욕이 없는 것처럼 보이던 장로님은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이 잡수셨다.

 

  몸에 배인 양보와 배려로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장로님을 바라보며 얼마 전 모 교회에서 주최한 뜨레스디아스라는 수양회에 참석한 일을 떠올린다. 장로님은 스스로 남을 배려하시는 분이지만 나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강제로 양보를 당하고 속상할 때가 많았다. 생활하면서 행운이라고 흐뭇해 할 일을 만나기는커녕 강제로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만 자주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교회 수양회에까지 가서도 그랬다.

 

    나는 답답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신앙생활에서 탈출하고 싶고 또 위로도 받고 싶었다. 미지의 룸메이트와 밤새 깊은 마음을 나누며 신앙 상담도 하리라 기대했는데 접수를 받는 사람이 내 이름 앞에 적힌 번호를 보더니 독방을 써야한다고 했다. 참가자 수가 홀수라서 짝이 안 맞는다고.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에 실망이 컸다. 왜 하필 내가? 저녁시간 쌍쌍이 짝을 지어 방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역시 나는 복이 없어.를 되뇌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한 밤 내내 잠을 못자고 뒤척인 탓에 배가 몹시 고팠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주방 앞을 지나며 나눠주는 접시를 하나씩 받아 테이블에 가서 앉는다. 그런데 내게 주는 접시를 받고 보니 토스트도 시커멓게 탄 것이, 과일도 형편없이 못 난 것이, 스크램블 애그도 제일 작게 담긴 접시다. 옆 사람 것과 비교해보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나는……

 

  마지막 밤. 모두 둘러 앉아 세족식을 하게 되었다. 넓은 홀 가장 자리에 빙 둘러 의자를 놓고 그 앞에는 방석이 하나씩 놓여있다. 참석한 사람들이 의자 위에 앉고 도우미 집사님이나 권사님들은 바닥의 방석에 앉아서 발을 씻겨주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날 제자들에게 베푸신 의식이다. 우리들은 각각 의자에 앉았다. 곧이어 양쪽 문이 열리더니 발을 씻겨줄 도우미 집사님, 권사님들이 물 대야를 들고 줄줄이 들어와 안쪽부터 차례로 의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런데 그 줄이 내 앞에서 딱 끊어졌다. 오른쪽에서 오던 분도 왼쪽에서 오던 분도 하필 내 옆자리에서 끝이 났다. 도우미가 캔디데이트보다 한 사람이 모자랐다. 설마 나를 혼자 두진 않겠지 싶어서 문 쪽을 열심히 보았지만 양쪽 사람들이 짝과 손을 잡고 축복 기도를 한 후 발을 씻겨줄 때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헌신을 다짐하고 은혜를 받는다고 하던데 나는 은혜는커녕 툭 터인 허공과 마주앉아 멀뚱거렸다. 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짝과 머리를 맞대고 훌쩍이며 기도를 하는데 멍하니 앉아 있으려니 마치 내 잘못인양 민망하고 창피했다. 사흘 동안의 모든 기도와 찬양이 이 시간에는 하나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나님. 왜 하필 저 입니까? 왜 제게는 한 번도 좋은 것 안주시고 맨날 손해만 보게 하십니까. 속상해 죽겠어요. 창피해요 지금.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니 눈물이 막 나왔다. 그때 마음속에 한 소리가 들렸다. “너는 내가 주잖아.”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온 세상이 환해지며 마치 새벽이슬을 밟는 것 같은 상쾌한 기운이 넓은 홀을 가득 채웠다. 외로운 사람이 독방을 쓰게 되었다면... 가난한 사람에게 작은 그릇이 주어졌다면...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함께 기도해 줄 사람이 없다면... 세족식이 모두 끝났으니 일어나라고 할 때까지 나는 울고 있었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 <크리스챤 헤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