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에 부는 ‘코로나19’ 열풍

 

한국 마켓에 왔다. 언제나 문 앞에 줄 세워져있던 카트가 하나도 없다. 두리번거리니 몇 사람이 파킹장에서 끌고 들어온다. 히스패닉 종업원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걸 모아서 긴 기차처럼 끌고 오는데. 오늘은 손님이 손수 끌고 온다. 나도 햇볕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차 사이로 다니며 겨우 하나 건졌다. 유언비어라고 무시했던 말이 사실인가 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도 못하게 될 상활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에 너무 오버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는데.

마켓 안의 분위기도 예전과는 다르다. 계산대 앞의 줄이 예전의 세 배나 길어 보인다. 진열대 사이까지 늘어서 다니기도 힘들다. 라면이 있는 코너가 헐렁하다. 나도 모르게 두 박스를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는 쌀도 두 포대, 간장 두 통, 사과 두 박스를 챙겨 넣었다. 중국사람들이 와서 쌀을 무더기로 사갔다는 말을 직원이 전해준다.
 
병물을 천장 높이까지 쌓아놓고 파는 코스트코(costco)에는 물이 동이 났고, 화장지, 통조림, 냉동식품 등을 사려는 사람이 급증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화장지와 물은 물론, 클로락스, 물티슈, 일회용 티슈와 장갑, 소독약 등의 인기가 급등이고 캔 음식과 땅콩버터 등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식품 진열대도 텅 비었다고 한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는 이미 구입하기 어려운 물품이 된 지 오래다. 대형 마트인 Target나 Walmart 등에도 손 세정제와 마스크, 위생 용품들이 동이 났나는 소문은 벌써 지난주부터 들어도 미국 땅에 살면서 아직도 정부를 믿지 못하냐며 코웃음을 쳤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싶다. 한인과 중국인이 밀집된 거주지역의 사재기 진풍경인가 싶어 좀 창피하기도 하다.

집에 와서 ‘아마존’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갔다. 2주일 전에 부산의 조카가 부탁하여 사서 보낸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더 사 두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똑 같은 물건을 클릭해보니 모두 SOLD OUT이란다. 지금 오더를 해도 언제 공급이 될지 알 수 없다는 메시지다. 손 세정제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낼 양으로 아마존이 아닌 다른 온라인 마트에다 오더를 했더니 뒤늦게 물건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어제는 미국의 대형 로펌에 다니는 조카가 위싱턴주에서 벌써 4명이 사망을 했다며 외출과 외식을 자제하고 비상 식품을 비축해 두라는 전화를 해 주었다. 미 주류 사회에서도 지금의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지원금으로 25억 달러의 예산 승인을 의회에 요청했고, 펜스 부통령을 총괄 책임자로 임명한 것만 봐도 짐작할 만 하다.

한인 타운은 헛소문 때문에 한인업계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진 판결을 받은 대한항공 승무원이 한인 식당을 순례했다는 루머 때문에 그 명단에 오른 다섯 식당은 그야말로 폐쇄 직전이다. 또 시애틀로 가는 확진자가 엘에이에 들러 한인 스파를 이용했다. 신천지 신도 한 사람이 스파에 왔다는 등 가짜 뉴스도 횡행하다. 허기야 엘에이 한인타운과는 거리가 먼 이곳 풀러턴의 한인 식당도 예전 같지 않게 휑한데 나쁜 소문까지 난 곳이니 어떠랴 싶다. 한인 경제에 큰 손실을 가져올 것을 걱정한 한인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여러 한인단체에서는 과도한 불안과 심각한 경제 상황을 방관할 수 없다며 시중에 떠도는 소문이 모두 루머라고 밝히는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이 소식을 접한 LA보건 당국도 한인 상대로 ‘코로나19’의 예방법과 대처법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우리 교회도 ‘코로나19’ 바람이 불었다. 지난주부터 교회 입구에 손세정제가 비치되었고 서로 악수는 삼가 하라는 목사님의 당부와 함께 주일예배, 새벽기도회, 수요예배를 제외한 모든 소집회는 금지한다. 성경공부와 구역 모임, 특별활동 금지는 물론 토요일 새벽 기도 후 가지던 아침 식사와 매주일 예배 후 나누던 점식 식사도 생략이다. 이웃 교회들도 모든 소그룹 집회가 폐지되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야 할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커뮤니티 봉사 차원으로 운영하던 평생교육대학도 모두 폐교다. 엘에이 인근의 한 성당은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온 신자들에게 2주간 자가 격리를 지시했다고 한다.

남편도 한국에서 온 지인이 만나자는 연락이 왔는데 내일 만나야할지 말아야할지 걱정이다. 안 만나려니 섭섭해 할 것 같고 만나자니 불안하고. 사람의 인심이 참 이 지경까지 왔다.

어제 주일 예배를 마친 후 장을 보러 갔다. 한참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어데 있노? 빨리 와라. 배 고프다."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평소에는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점심까지 먹고 오후 1시나 되어야 들어오던 사람이 11시인데 벌써 집에 왔다고 한다. 코로나 덕분에 일요일까지 부엌에 매달려야 할 처지가 되었다.

며칠 후면 친구들의 모임이 있어 연락을 해야 한다. 한국 식당은 위험하니 미국 식당에서 모이자고 하려 했는데 이제는 미국 식당도 위험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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