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재미(在美) 수필가들은 ‘재미(fun)’ 있다고?
LA중앙일보] 발행 2020/01/31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20/01/30 20:11
성민희 / 수필가
얼마 전 한국에 있는 모 신문사의 영문번역판을 보게 되었다. 편집부의 청탁으로 매달 칼럼을 보내는 곳이다. 내 글도 찾아보았다. 원고는 그대로 게재되었는데 약력 부분이 이상했다. 내 이름 Min Hee Seong 옆에다가 Fun Essayist라는 타이틀이 있다.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읽어보다가 그만 빵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Fun? 재 미있는? 재미있는 수필가?
일전에 내가 소속한 ‘재미수필문학가협회’에서 발간하는 <재미수필> 책을 내미는 내게, 문인이 아닌 친구가 물었다.
"재미수필이 뭐니? 재미있는 수필만 모은 책이니?"
재미(在美) 를 '재미나다'의 재미로 읽은 것이었다. 우리 협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이 후로 한국으로 보내는 모든 원고에는 ‘재미 수필가’ 대신 ‘미주 수필가’로 쓴다. 다른 사람에게도 '재미' 대신 '미주'를 쓰라고 권한다. 무게 있는 단체도 자칫 코미디 단체로 오해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재미여성클럽은 Fun Women's Club, 재미부산향우회는 Busan Friendship Society of Fun으로 번역하는 사람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눈으로 보는 글자도 이렇게 다른 해석인데 보이지 않는 것에는 어떠하랴.
시계 바늘이 7시 20분을 넘어 30분이 가까워도 친구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 사람은 감기라서, 또 한사람은 사정이 생겨서 오늘은 둘이서만 골프를 치기로 했는데. 휑하니 빈 필드를 바라본다. 다른 사람은 혼자서도 라운딩을 하던데 나도 한번 해볼까. 레인지 볼이나 몇 개 연습하다가 갈까. 고민 중인데 기다리던 친구가 온다. 지난주에 너무 추워서 티타임을 30분으로 바꾸어서 라운딩을 했는데, 친구는 바꾼 그 시간을 오늘에도 적용했고 나는 지난주에만 그렇게 하는 걸로 알았다. 제각각 자기 생각대로 티타임을 알고 있었다.
몇 주 전이었다. 친한 동생이랑 약속을 하면서 나는 ‘커피 코드’를 말했고 그녀는 ‘코너 베이커리’로 들었다. 서로 단어가 시작되는 첫 글자 ‘C'자만 생각하며 자기 마음대로 머릿속에 장소를 입력했다. 한참 약속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각각 다른 장소에서 왜 안 오느냐는 전화를 주고받으며 깔깔거렸다.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던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하늘나라를 말하는 예수님과 땅의 권세를 기대한 제자들. 모두는 자기 나름으로 해석한 다른 세상을 살았다.
사람은 생각의 틀 안에서 자신이 아는 만큼의 질량으로 정보를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상대가 나의 말이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다. 나 또한 나의 시선에 맞춰서 상대를 이해하거나 오해를 한다. 남을 평가하는 일이나 내가 평가 받는 것은 참으로 진실과 동떨어진 일 일수도 있을 터. 남이 나를 판단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나는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 조심할 일이다.
메시지를 바로 말하지 못하는 실수. 바로 듣지 못하는 실수, 바로 해석하지 못하는 실수. 바로 옮기지 못하는 실수. 말을 할 때나 들을 때나 항상 긴장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