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캘리포니아 선발 대회
성민희 / 재미 수필가
전혀 상상도 해보지 않던 곳에 왔다. ‘Miss California 선발대회’가 열리는 호텔이다. 가끔씩 또래가 발 담그지 않는 곳을 첨벙거려 색다른 세계를 맛보게 해주거나 우리를 기함하게 만들던 조카가 이번에는 미녀 대회에 도전이다. 내 가족이 미국 땅에서 백인 일색인 미인 대회에 출전한다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자손이 많다보면 돌연변이도 섞여 나온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조카는 분위기가 우아하고 귀티가 나서 찬사를 듣긴 하지만 자기의 미모에 그렇게 만족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무슨 방자한 자신감? 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덜컥 ‘미스 샌프란시스코’에 뽑혀 버렸다. 쭉쭉 빵빵 미녀들이 거리마다 넘치는 도시에서 자그마한 동양 여자애가 대표로 뽑히다니. 우리는 듣는 귀를 의심했다. 조카는 이왕 나선 김에 ‘미스 캘리포니아’에도 도전한다며 다니던 로스쿨도 휴학해버렸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엘에이는 물론 시골의 작은 도시에서도 선발된 미녀들이 모이는 대회인데... 어처구니없는 허세에 사로잡혀 학교까지 휴학을 하다니 도무지 용납이 안 되었다.
일을 저지른 후 통보만 하는 아이에게 흔들 수 있는 무기는 단 하나, 경제 봉쇄 조처다. 합숙훈련 경비와 다이어트를 위한 피트니스 센터 등록은 물론 드레스 구입비, 화장품값 등을 일체 지원하지 않겠다고 동생은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그 협박은 천진한 아이의 어깃장 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못했다. 모금이라는 방법이 있었다. 우리 어른들은 각각 자기 자녀에게 절대 협조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지만 사촌들은 몰래 모금 봉투에다 돈은 물론 격려 편지까지 넣어 준 모양이었다. 쉬쉬하며 소리를 죽인 응원 열기가 자기들끼리는 뜨거웠다.
미스 캘리포니아 선발대회 하루 전 날. 모른 척 배짱을 부릴 수가 없어서 부랴부랴 대회를 개최하는 장소의 호텔을 예약했다. 남세스럽게 무슨 응원이냐며 툴툴대는 동생을 겨우 설득하여 어머니까지 모시고 갔다.
로비에는 사람이 빼곡히 들어차 몸을 움직이기도 불편하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머리가 허연 아버지가 긴 드레스를 어깨에 둘러메고 굽이 10센티도 더 되어 보이는, 힐이 마치 송곳 같이 뾰족한 구두를 손가락에 끼고 돌아다닌다. 한국 아버지 같으면 이런 구두를 어찌 신느냐며 난리가 나지 않을까 하며 동생과 함께 웃는다. 옷가방이랑 화장품 가방을 든 가족 얼굴이 마치 요란한 축제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활짝 피었다.
출신 도시와 자신의 이름이 있는 휘장을 어깨로부터 허리까지 두르고 다니는 후보 중 의외의 모습도 있다. 초등학생처럼 왜소한 동양아가씨가 있는가 하면 엉덩이가 양옆으로 불거져 걸을 때마다 곁의 사람이 비켜줘야 할 흑인아가씨도 있다. 주근깨 자욱한 뺨을 파운데이션으로 덧입힌 백인아가씨도 보인다. 눈이 둥그레져서 쳐다보는 우리에게 조카가 깔깔 웃으며 말한다. 후보자가 없는 작은 도시에서 단독 출마로 뽑힌 대표라는 설명이다. 전혀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도 그녀들은 당당하게 턱을 치켜든 채 걷고 그 뒤를 따르는 가족의 표정도 그저 자랑스럽다. 풀어헤쳐진 딸의 긴 머리를 고대기로 만져 주는 엄마, 구두를 바꿔 신기려고 큰 덩치를 구기고 엎드려 땀을 뻘뻘 흘리는 아버지, 작은 동작이라도 놓칠세라 연신 카메라 셔트를 눌려대는 형제. 사람들은 딸의 일탈을 가족잔치로 승화시켜 함께 즐기며 추억을 만든다.
구석자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니 가슴이 뻐근해진다. 가당찮은 도전일지라도 승부에 상관없이, 인생의 득실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부모의 마음이 경이롭다. 온몸과 마음으로 자녀와 소통하는 것도 참 부럽다. 돌아보면 우리는 주류사회에 들어가 성공하라며 등을 떠밀기만 했을 뿐, 아직도 버리지 못한 80년대의 한국식 잣대로 매사를 재단하는 부모였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디아스포라의 긴장감을 그들에게도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인 줄로만 알았다. 조카는 얼마나 답답하고 한편 외로웠을까. 한 학기 늦게 졸업하면 어때. 부모의 완강한 그물을 씩씩하게 걷어낸 아이가 오늘은 오히려 대견하다.
행사장 문이 열린다. 다른 후보는 경쾌한 웃음을 날리며 온 가족을 몰고 신나는 음악과 치장이 화려한 식장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는 표를 구입하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다. ‘잘하고 올 게.’ 가족을 위한 전야제 입장 티켓을 구입 안 한 게 마치 자기 잘못인 양 음성에 습습한 물기가 묻어난다. 혼자서 문 안으로 사라지는 조카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사람들은 파도처럼 행사장으로 쓸려 들어가고. 텅 빈 홀에 우리 세 사람만 덩그러니 서 있다.
<대구일보> 3/29/19
안타깝게.
혼자 외로웠을텐데요.
정해논 틀안에서 살다가
소중한 것을 놓치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