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 따라 올라가면 / 이정호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면 집이 나온다.  아담한 한옥집, 넓은 앞마당, 그리고 구석에 옛날 물펌프가 놓여있다. 개나리, 진달래가 담장 밑에 울긋불긋 화려하게 피어 있다. 샛노란 나비가 이 꽃 저 꽃  기웃거리며 날아다닌다.  빨간 잠자리 한 마리가  담장위에 살며시 앉아있다.

  동네 아이들과 골목길에서 고무줄 놀이를 했다.  여자아이들과 같이 재미있게 어울렸다.  그때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다.  대여섯 살 되었을 때였을 것이고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집주위를 돌아다니며 숨바꼭질도 했다.  친구들은 이곳 저곳 찾지 못하는 곳에 잘도 숨었다.

  아이들과 어울려 냇가로 갔다. 가는 길에 징검다리를 건넜다.  냇가에 다다라 돌을 조심스럽게 밟고 지나갔다.  잘못하여 미끄러져 발목이 물에 잠겨 바지가 젖기도 하였다.  조그만 돌멩이를 집어서 냇가 물위로 스쳐 지나가듯 던진다.  누가 더 멀리 던질 수 있나 지켜본다. 냇가 안으로 걸어 들어 간다.  바지를 걷고 다리를 물에 담근다.  서로 물장난을 치며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속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다.

  내 고향은 남원이다.  나는 그곳에서 6살까지 자랐고 7살 때 인천으로 이사를 갔다.  어렸을 적 남원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서 놀던 기억이 난다.  돌담으로 쌓인 길을 따라 들어가면 마당이 넓은 한옥집이 나온다. 대청마루가 보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방들이 있다.  엄하셨던 외할아버지 생각도 난다.

  아이들과 같이 뛰어 놀면서 먼 곳으로 갔다.  산이 있는 곳, 냇가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도령과 춘향이가 만났던 광한루에서도 뛰어 놀았다.  지금은 추억속 기억에 남는 곳, 그 어린 시절들이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중학교 수학 선생님을 하셨다.  그때만 해도 남원은 논과 밭이 많은 시골이었다.  지리산을 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다.  아버지가 부업으로 조그만 당구장을 운영했던 기억도 난다.  당구대 주위를 뛰어다니고 그 위를 올라가기도 했던 생각이 난다.  그 후 아버지는 더 큰 꿈을 펼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접고 서울 쪽으로 올라 가셨고 처음에는 친척이 있는 인천에  정착하게 되었다.

  내 고향 남원에 대한 어렸을 적 추억은 6살까지가 전부이다.  그래도 어렴풋이 생각나는 기억과 함께 그 시절이 때때로 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학창시절 완행열차를 타고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논과 밭을 지나 남원에 가곤 했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돌담길 지나 있었던 집은 사라졌다.  세월이 지나 오랫동안 사셨던 친할머니도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집도 사라져 버렸다.  내가 방문하면 오랫동안 간직하셨던 알 사탕을 꺼내서 나에게 주시던 그 모습도 선하다.

  어린시절 추억이 있는 곳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내 마음 속 고향에 대한 어린시절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때때로 나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