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을 걸으며 / 이정호

 

  이번에 한국에 나갔을 김동찬 교수가 연락을 하라고 했다. 그는 엘에이에 있는 글마루 회원이면서 글모임을 인도하고 강의도 하고 있다. 일년의 반은 미국에 살고 반은 한국에서 산다. 그런 생활이 부럽다. 여기서 사는 것이 단조로워질 한국으로 가고 그곳에서 너무 부대낄 이곳으로 온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그런 생활을 하고 싶다.

 

  아주 오래 전에도 한국에 나갔을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아내하고 같이 나오라고 한다. 남한산성 구경을 시켜준다고 했다. 강남구 학동역에서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산성역에 도착했다. 지하철 출구로 나가니 그가 자동차를 주차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부인과 같이 나온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의 부인은 점심 약속이 있어서 나중에 합류한다고 했다.

 

  석가탄신일 연휴라서 그런지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는 차들이 많았다. 힘들게 차를 주차하고 남한산성 행궁으로 향했다. 행궁은 왕이 본궁 밖으로 나아가 머무는 임시장소로서의 궁궐을 말한다. 김동찬 교수가  표를 끊어 주었다. 행궁의 규모는 상궐 73, 하궐 154칸으로 모두 227칸의 규모이다.

 

  이곳에서 성문을 나선 인조가 눈이 쌓인 비탈길을 내려와 수향단에 좌정한 홍타이지(숭덕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인조는 때마다 번씩 머리를 땅에 찧는 의식인 삼배구고두례를 행했다.  조선 역사에서 치욕적인 일이었다. 인조가 실리적인 외교를 했더라면 병자호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소현세자는 인질로 청나라로 끌려간다. 그가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올 병에 걸렸고 그를 견제하는 세력들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소문도 퍼졌다. 그후 그의 부인 민회빈 강씨는 인조의 수라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로 별궁에 안치되었다가 인조의 미움을 받아 반역죄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고 죽는다. 소현세자의 세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아들은 병을 얻어 죽는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여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가 돌아온 며느리를 사약 받아 죽게 하고 손자들은 제주도로 유배되어 손자가 죽게 된다. 인조는 어떻게 그렇게 자기의 가족들에게 비정하게 있을까.

 

  행궁에서 걸어 나와 나무 그늘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조금 기다리니 김동찬 교수 부인이 버스에서 내려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남한산성에 유명한 맛집중의 하나인 낙선재로 데리고 갔다. 꼬불꼬불 좁은 길로 10 정도 가니 식당이 나타났다. 여러 개의 한옥으로 지어진 넓은 식당이었다. 마당도 넓고 장독도 많이 있었다. 멋진 나무들도 많이 있고 식당 뒷쪽 별채에는 계곡아래 개울물도 흐르고 있었다.

 

  김동찬 교수는 우리에게 닭백숙을 사주려고 했다. 메뉴를 보니 닭볶음탕이 있었다. 얼큰하고 매운 닭볶음탕이 먹고 싶어 그것을 시켰다. 음식값이 상당히 비쌌다. 사실 식당은 번째로 오는 것이다. 그때도 아주 오래 전에 김동찬 교수가 나를 초대해서 한정식으로 시키고 막걸리도 곁들여서 먹었다. 번은 볼만한 식당이다.

 

  식사를 하고나서 카페로 갔다. 그곳에서 쌍화차를 시켰다.  쌍화차가 진하고 맛이 있었다.  김동찬 교수는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한 것일까. 그에게서 나오는 온기와 정을 느낀다. 우리를 구경 시켜주고 대접해주려 하는 정성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