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인간을
집어삼킬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유병록(1982∼ )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좋은 것이라고 배웠다. 비가 와야 싹이 트고, 곡식이 자라고, 열매가 맺힌다고 했다. 물은 그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배웠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고, 기본 4원소의 첫 번째라고 했다. 이 말은 오래도록 사실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계속 사실이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비가 좋고 물이 좋다는 이 말을 영영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비가 길을 집어삼키고, 집을 삼키더니, 사람도 삼켜버렸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구해야지 싶은데 구할 수가 없다. 사라진 사람은 나타나야지 싶은데 나타나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은 함께하고 싶은데 함께할 수가 없다. 비와 물이 사람을 삼켜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다. 얼마나 힘든지 사람은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없고, 두 팔을 의지할 수 없고, 두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다.


자식 잃고 우는 어머니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부모 입장에서는 스무 살 자식도, 서른 살 자식도 태어나던 그 순간이 엊그제 같다. 안고 얼러주고, 내 살점보다 더 귀하게 키우던 시절이 찰나 같다. 순간과 찰나만 남기고 세상의 모든 의미가 사라졌다. 슬픔이 사람을 삼켜버린 이 시절이 참으로 막막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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