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가고
가을 오듯
해가 지고
달이 솟더니,

땀을 뿌리고
오곡을 거두듯이
햇볕 시달림을 당하고
별빛 보석을 줍더니,

아, 사랑이여
귀중한 울음을 바치고
이제는 바꿀 수 없는 노래를 찾는가.

 

―박재삼(1933∼1997)


시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 유명하기 때문에 박재삼은 가을을 대표하는 시인처럼 보인다. 쓸쓸하니 고적한 말투 때문에 더욱 가을을 상징하는 시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시집을 읽다 보면 박재삼은 가을이 아니라 모든 자연의 시인임을 알게 된다. 자연에 대한 감각이 유독 섬세해서 스쳐 부는 바람도 느낄 줄 알았고 나뭇잎의 물살도 볼 줄 알았다. 자연을 사랑해서 자연스럽게 자연을 닮아 간 시인. 계절에 몸을 맡겨 시를 자아냈던, 자연과 시로 화답한 시인이 바로 박재삼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여름에서 가을로 옮겨가는 요즘과 딱 맞는 시가 있다. 여름만큼 길지 않고 가을만큼 깊지 않지만 여름 가고 가을 오는 이 짧은 시기는 우리에게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그만큼 간절히 기다렸기 때문이다. 과연 올까 걱정도 했기 때문이다. 유독 덥고 힘들었던 여름은 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가을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지구를 너무 더럽혀 가을이 오지 않을 줄 않았는데 여전히 찾아오려고 한다.

박재삼의 시는 자연이 제 본성을 잃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고 순순하게 사는 것이 사람의 본질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인데,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전체를 보지 못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의 말이 맞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