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창밖을 봤다
쌀을 씻다가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1988∼) 

 

 

한눈에 반할 때가 있다. 처음 본 그 순간에 결정된다. 마음이 덜컥 기우는 건 의외로 순식간이다. 왜 반했느냐고 물어보면 대답이 금방 나오지 않는다. 이유를 따져서 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를 한두 편 보는 게 아닌데, 이 시는 처음 보자마자 ‘너무 좋다’라는 반응이 먼저였다. 사람이 사람 아닌 것에 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황인찬의 이 작품은 알려주었다.

이 시에는 설명이 많지 않다. 쌀 씻는 저녁은 가까이 보이고, 사랑하는 꿈은 희미해 보인다. 그렇지만 시를 읽어가며 우리는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 밥 챙겨 먹는 오늘은 껍데기이고, 그 사람을 사랑하던 옛날이 알맹이다. 그 사람을 잃은 나는 허깨비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만 진짜배기다. 시인은 그걸 흐릿하게 그려내는데, 독자들은 분명하게 알아듣는다.

“너는 그런 걸 어떻게 다 기억하니” 시인의 다른 시 ‘이미지 사진’에 나오는 구절이다. 맞다. 시인은 기억하지 못할 것을 기억하는 사람, 잃어가는 기억도 찾아오는 사람이다.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기억마저 사라진다면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는 노래의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버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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