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이문재(1959∼)

대학 본관 앞/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나간다./계란탕처럼 순한/봄날 이른 저녁이다.


꽃이 시가 된다. 꽃 같은 마음은 시가 된다. 이렇게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얼마 전부터 얼마나 그랬는지는 고시조를 보면 된다. 백영 정병욱 교수는 고시조 2400여 수의 어휘를 조사한 적이 있다. 조사한 결과물을 보면 님, 일, 말, 사람, 몸, 꿈 같은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다.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어휘는 달, 물, 꽃, 밤 등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옛사람의 마음에도 사람과 꿈과 꽃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마음에도 사람과 꿈과 꽃이 있다. 설명이 더 필요할까. 이문재 시인의 ‘봄날’을 읽으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올해도 봄은 꽃이 되어 찾아왔다. 지금은 꽃구경은커녕 마스크를 쓰고 접촉을 피해 다녀야 하지만 그래도 꽃은 곳곳에 보인다.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꽃도 꽃이지만 꽃에 시선을 빼앗기는 사람들은 예쁘다. 특히 잰걸음으로 바삐 가다가 문득 멈춰서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정말 예쁘다. 이미 장착된 일상의 모드를 풀고 꽃을 감상하는 모드로 돌아서는 것은 일종의 전환이다. 쉽지 않다는 말이다. 어제도 딱딱한 표정을 풀고 꽃을 바라보다 다시 종종걸음 사라지는 사람을 보았다. 나는 그 뒷모습이 꽃보다 귀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시를 쓴 시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구보다 바쁜 배달원이 겨우 꽃 때문에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꽃 덕분에 그의 마음에도 꽃이 폈다. 저런 찰나의 아름다움은 쉽게 지워질 수 없다. 꽃구경 가지 못하는 당신에게 꽃 같은 시라도 피었으면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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