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는 귀신이 펑펑 울 그런 해원의 시를 쓰고 싶었다. 천년의 세월에도 닳지 않을, 언뜻 주는 눈길에도 수만 번의 인연을 떠올려 서로의 묵은 업장을 눈물로 녹이는 그런 시./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지게 작대기 장단이 그리운 이 나이가 되어서야, 고향은 너무 멀고 그리운 사람들 하나둘 비탈에 묻힌 이 나이가 되어서야, 돌아갈 길이 보인다./대천 뱃길 끊긴 영목에서 보면, 서해 바다 통째로 하늘을 보듬고 서서 토해내는 그리운 노을을 가르며 날아가는 갈매기./아무것도 이룬 바 없으나, 흔적 없어 아름다운 사람의 길,/어두워질수록 더욱 또렷해. 

―윤중호 시인(1956∼2004)


성경과 금강경 등 모든 경전에는 진리가 담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 진리를 찾으려 애쓴 결과물이 경전이고 우리는 답을 찾으려고 그것을 들여다본다. 많은 시를 읽다가 알게 되었다. 시 안에도 경전과 진리가 고여 있다. 시도 사람이 영혼과 마음을 모아서 만든다. 둥지에 새가 깃드는 것이 자연스럽듯, 간절한 글에 진리가 깃드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어느 시가 경전 같으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묵직한 깨달음을 주는 시. 나의 옷깃을 바로 세우고 등을 펴게 만드는 시. 오욕과 고뇌를 이기고 돌아온 시. 윤중호 시인의 ‘영목에서’가 그런 시다.

지명인 영목은 충남 태안군 안면도 바닷가에 있는 항구. 동해 바다는 일출이 아름답고 서해 바다는 일몰이 서러운 곳. 서해 중에서도 섬, 섬에서도 남쪽 끝, 더 갈 수 없는 곳에 서서 시인은 일몰을 보고 있다. 인생에서 그렇듯 일몰은 상징이다. 내 인생도 저무는구나, 알게 된 사람들은 일몰을 무심히 바라볼 수 없다.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타오르듯 살고 싶다.
일몰의 나이와 일몰의 시간 앞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소망했다. 유명한 이로 소문나지 못했으나 사람답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일몰의 간절함이 일출의 소망보다 못할까. 세상에는 떠오르는 해만 있는 건 아니다. 지는 해도 아름답고 장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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