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일을 하고 식구들 저녁밥을 해주느라/어머니의 여름밤은 늘 땀에 젖어 있었다/한밤중 나를 깨워/어린 내 손을 몰래 붙잡고/등목을 청하던 어머니,/물을 한바가지 끼얹을 때마다/개미들이 금방이라도 부화할 것 같은/까맣게 탄 등에/달빛이 흩어지고 있었다/우물가에서 펌프질을 하며/어머니의 등에 기어다니는/반짝이는 개미들을/한 마리씩 한 마리씩 물로 씻어내던 한여름 밤 (후략)
―박형준(1966∼ )


요즘은 카톡을 시작할 때 ‘이 더위에 잘 지내십니까’라고 인사한다. 메일에서 끝맺음 인사를 할 때도 ‘더위에도 건강하시길’ 덧붙인다. 적어도 말복 때까지는 ‘덥다, 더워’라는 말이 내내 입에 붙어 있을 예정이다.

너무 더운 한여름이라는 사실은 박형준의 시를 읽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우리의 여름은 아름답지 못하나 그의 여름은 아름답다. 친구도, 여행도, 만남도 사라진 우리의 여름은 허전하지만 그의 여름은 신의 축복을 가득 받은 듯 충만하다. 에어컨 바람 밑에서도 답답하다면 이 시를 읽어 보자. 우리가 잃어버린 시원함과 뿌듯함을 찾을 수 있다.
덥기로 말하면 농사짓는 어머니의 여름이 오늘날 우리의 여름보다 더하다. 덥고 고되셨을 터. 어머니가 일을 마치는 시간은 한밤중, 달이 떴을 때, 남들 다 잘 때였다. 그분의 하루는 등목으로 마무리되었다. 등목은 시원해지는 쉬운 방법이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누군가 바가지로 물을 떠서 내 등에 부어줘야 하고, 등을 슬슬 문질러 줘야 한다. 가장 무방비한 나의 등을 타인에게 맡겨 닦아달라고 하는 일. 등목이란 엎드린 자와 물 붓는 자의 친밀하고 다정한 교류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시를 읽으면 다정한 두 모자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머니 고단하셨냐고, 감사하다고.’ ‘아니, 엄마는 괜찮다고, 하나도 안 힘들다고.’ 우리가 한여름을 넘길 힘이 시 속에 들어 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