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자전거 / 이승애

 

 

나는 아직도 중년의 여성이 자전거 타는 것을 볼 때면 언니가 생각나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언니는 자전거 타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자동차를 살 수 없는 형편이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껏 자연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자전거의 장점에 매료되어 있었다. 허리 수술 후 자전거를 탈 수 없었을 때도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하였다.

언니는 몇 년의 병고 끝에 드디어 오빠로부터 자전거를 선물로 받았다. 언니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매일 기쁨에 들떠 내게 전화를 걸곤 하였다. 공원에 다녀온 일, 이웃에 사는 독거노인들에게 생활용품과 과일 한 보따리씩 사다 준 일, 친구와 함께 달렸던 거리의 풍경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며 깔깔대었다. 언니의 삶은 자전거의 동력을 통해 활기차고 새로워지는 것 같았다.

 

언니의 직장 상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니가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았단다. 불길한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좀처럼 실수하거나 꾀부리는 언니가 아니었다. 급히 택시를 타고 언니의 집으로 달려갔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열쇠 수리공을 불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고 책상 위엔 오늘 아이들에게 가르칠 교재가 든 가방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현관에 세워두었던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멀리 가진 않은 듯 보였다. 삼십 여분 기다려도 언니는 오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소름이 돋았다. 전화로 이곳저곳 연락해 보았지만, 언니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근처에 있는 공원과 병원, 은행과 시장 곳곳을 살펴보아도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방법을 바꿔 아파트 입구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언니의 사진을 보여주며 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언니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기진맥진하여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때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전에 요 앞에서 자전거를 끌고 가던 부인과 택시가 부딪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하였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가슴이 찌르는 듯 아프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렸다.

경찰서로 달려가는 길이 천릿길이다. 온 힘을 다해도 뛰면 뛸수록 헛디뎌지고 버둥대기만 했다. 결국 얼마 못 가 넘어지고 말았다. 일어나 가려고 하면 할수록 몸에 힘이 빠지고 다리만 후들거렸다. 가까스로 경찰서에 도착하였다.

허둥지둥 달려간 경찰서 주차장에 언니의 푸른색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얗게 지워졌다. 숨통이 꽉 막혀버렸다. 나는 허둥대다가 복도에 쓰러져 나뒹굴었다.

경찰은 내가 언니의 동생이란 것을 확인하고 병원으로 데려갔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언니는 산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끔찍했다. 담당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심각한 뇌출혈이 있었지만,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환자라 곧바로 수술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지체된 수술로 망가져 버린 언니의 뇌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식물상태가 되고 말았다.

언니 곁을 지키다 자전거가 생각이 났다. 언니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자전거라도 반드시 되찾아 와야 한다는 생각에 경찰서에 갔다. 경찰은 며칠 전 자전거를 도둑맞았다고 하였다. 참았던 부아와 슬픔이 한꺼번에 폭발하여 어찌 그럴 수 있느냐는 항의에 그까짓 자전거 하나쯤 잃어버린 게 무슨 대수냐는 듯 그들의 태도는 무례했다. 만약에 그들에게 꺼져가는 한 생명과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리하지는 않았으리라. 소 닭 보듯 하는 그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꼭 찾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며칠 후 다시 찾아갔지만, 자전거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언니도, 언니의 마지막 유물인 자전거도 우리 곁을 영영 떠나고 말았다.

 

언니에게 자전거는 단순히 건강을 위한 도구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데 편리한 도구만은 아니었다. 지루한 일상을 재충전하는 힘이었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에게 건너가는 징검다리였으며, 친구와 정을 더욱 돈독하게 쌓을 수 있는 사랑의 다리였다. 언니는 날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좌절된 생을 일으키고 내일을 개척해 나갔으리라. 그래서인지 언니의 푸른색 자전거를 볼 때면 봄빛에 파랗게 자라나는 새싹처럼 꿈과 희망이 느껴졌다. 그날도 언니는 정다운 친구와 동행하듯 자전거를 타고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페달을 밟는 두 다리의 아름다운 율동을 쫓던 두 눈을 감았다. 언니의 숨결이 느껴지고 흑진주처럼 빛나던 언니의 두 눈동자가 점점 선명하게 클로즈업되었다. 불현 듯 한 생명의 빛이 되었을 눈이 떠올랐다. 언니의 영혼은 비록 하늘나라에 있을지언정 두 눈만은 이승에 남아 빛과 희망을 준다고 생각하니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진다.

자전거 행렬이 지나간 거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오늘같이 이렇게 날씨가 좋을 때면 언니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나눠 가진 그도 자전거를 타고 오색빛깔의 풍경을 즐기며 새로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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