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베 / 이치운

 

 

불덩이다. 시뻘겋게 달구어진 쇠붙이가 몸통을 찌른다. 쇠가 야멸차게 찔러도 하얀 연기를 뿜어 신음만 낼 뿐이다. 나무와 쇠가 만나 다른 몸이 하나가 된다. 약하고 가벼운 것이 강하고 무거운 것을 감싸 안는다.

 

어느 시골집이나 광에 곡식은 비어 있어도 부엌에 식칼 한 자루, 헛간 시렁에 호미 와 낫 한 자루는 걸려있다. 밭을 일구는 농부나 섬 아낙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식과 같은 귀한 물건이다. 뭍으로 장을 보러나가면 생활필수품을 사는 것보다 연장을 구입하거나 수리를 우선으로 한다. 사시사철 밭이나 갯가로 나갈 때 호미와 부엌칼을 대바구니에 담아 들고 나가면 푸성귀나 갯가에서 나오는 물엣 것을 한 광주리 가득 담아 온다.

 

칼과 호미의 몸통과 손잡이를 연결해주는 검지 절반도 안 되는 쇠붙이를 슴베라 한다. 연장의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칼날이나 호미 날이 월등하지만 짧고 뭉툭하고 보잘 것 없는 그것이 없으면 무엇이든 자르거나 파낼 수 없다.

 

슴베를 벼리는 일은 어머니를 향한 애정 표현이다. 손잡이를 쓸모 있게끔 만들어 아내의 손을 가볍게 해주는 것이 남편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만든 날씬하고 보기 좋은 호미가 여러 개나 광에 걸려있지만, 어머니는 그 중 투박한 손잡이를 고집한다.

 

대장장이가 몸체를 만들어 놓은 것을 뭍에서 구입해와 다시 담금질 하여 아내의 손에 착 감기도록 손잡이를 만든다. 쇠를 달굴 풀무는 할아버지가 만들어 왔던 방법으로 산에서 붉은 황토를 가져오고 갯가에서 파도와 세월과 바람과 물살에 깎이고 깎여진 둥근 돌을 모아 바지게지고 온다.

 

아버지는 구들장에 불이 잘 들어가는 아궁이처럼 흙과 돌로 자연 풀무를 만들어 낸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듯 모나고 둥글고, 거칠고 맨들한 돌멩이를 모양대로 돌담을 둥그렇게 쌓아 올린다. 바람이 잘 들도록 길을 내고 불이 살아 꿈틀거리도록 군데군데 숨구멍을 뚫는다. 사람이 숨을 쉬는 것처럼 불도 들숨과 날숨을 쉬어야 불이 꺼지지 않고 열이 숯을 뭉근하게 감싼다.

 

뭍에 있는 대장간에서야 석탄을 태워 쇠를 달구지만 섬에는 그런 값진 광물을 손에 넣을 수 없다. 아버지는 땔감할 나무를 찾아 필봉산을 오른다. 쉽게 확 타오르고 꺼져버리는 잡목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태풍을 견뎌내고 해풍에 실려 오는 짠물을 한껏 먹어 옹이진 해송쯤 되어야 숯이 뭉근하고 열을 오래 품는 법이라 했다.

 

대장장이는 쇠를 두드리기 위해 받침대로 쇠를 사용한다. 이것을 보루라 한다. 아버지는 쇠보루 대신 푸른색 돌을 사용한다. 둥글둥글하고, 단단하고 가슴에 안아 올릴 정도의 큼직한 몽돌을 지게에 지고 온다. 아버지는 겉과 속이 바다처럼 푸른색을 띠는 그 돌을 청돌이라 했다. 모난 돌이 수백 동안 거친 파도의 두들김을 당하고 조류에 휩쓸리면서 단단함은 쇠보루 못지않다. 망치로 두들겨도 잘 깨지지 않고 탄력성마저 좋다. 달구진 쇠를 몽돌에 대고 두드리기 시작한다. 몽돌의 탄력성을 이용하여 슴베를 골고루 다듬이질을 할 수 있다.

 

슴베를 받아들일 손잡이는 무조건 단단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단단하면 충격을 가해도 "강하면 부러진다." 했다. 박달나무 같은 고급 재목은 섬에서 찾아볼 수 없거니와 필요도 없다. 아버지는 슴베의 짝으로 생소나무를 선택한다. 갓 잘라낸 소나무는 송진을 한껏 품고 있어 달궈진 슴베가 들어갈 길을 내어준다. 자리를 틀고 앉은 작은 쇠붙이는 송진이 천천히 말라가면서 손잡이와 일체가 된다.

 

풀무의 온도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용의 미덕을 가져야 한다. 쇠를 달구는 온도가 낮거나 지나치게 높아도 안 된다. 검붉은 빛이 나면 달구어진 쇠의 온도가 낮아 슴베는 손잡이 몸통을 뚫고 들어 갈수 없고, 하얀 빛이 나도록 많이 달구면 쇠가 물러져 구부러진다. 검붉은 빛이나 하얀 빛이 아닌 노란 색이 되었을 때 슴베는 손잡이를 단번에 치고 들어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쓸모 있는 슴베가 만들어지기 위해 열을 가두어주는 흙(土)과, 달구어내는 불(火)과, 강도(剛度)를 높이려는 물(水)과, 식혀주는 바람(風)과 급하고 모난 성격을 다스려내는 아버지의 인내심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런 참을성을 보고 자란 자식들은 섬을 떠나 객지 생활을 무탈하게 해 나갈 수 있도록 아버지가 몸소 일깨워 주었다.

 

손톱만한 나사나 볼트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멈추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를 멈추고,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를 멈춘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작은 부품이 때로는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작은 것이 제자리에서 역할을 할 때 쓸모 있는 힘이 발휘되듯 칼이나 호미도 슴베가 없으면 자르고 파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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