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전 / 강여울

 

찌개가 끓는 동안 김치를 낸다. 냄새가 시큼한 것이 너무 익은 것 같다. 중간의 한 부분만 썰어서 그릇에 담고, 나머진 물기를 꼭 짜서 잘게 썬다. 냉동실에서 돼지고기도 꺼내 다지고, 야채실의 부추도 송송 썰어 볼에 담는다. 계란을 깨어 넣고 밀가루를 넣어서 골고루 섞는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김치전을 부친다.

딸아이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가수의 랩을 흉내내며 텔레비전에 빠져있다. 신문을 보던 그이도 슬쩍 텔레비전 쪽으로 눈을 돌린다. 아들은 컴퓨터에 연결된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은 채 온몸으로 박자를 타고 있다.

가장 먼저 아버님, 어머님께서 주방으로 나오시며 김치전 냄새가 좋구나 하신다. 온 식구가 식탁에 모여 앉는다. 쟁반에 담기가 바쁘게 김치전은 사라진다.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과 부추의 풋풋한 맛이 김치와 어우러지면 이렇듯 새로운 맛으로 온 가족의 입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해물 김치전을 좋아하는 아들이 오징어나 홍합 같은 것은 없어요 한다. 가장 많이 먹는 아들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조금씩 닮았다고는 해도 다 다른 얼굴처럼 생각이나 성격도 다 각각인 가족이 이렇게 한꺼번에 웃는다. 문득, 섞여서 어우러지는 김치전의 맛이 가족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마다의 독특한 맛을 가진 재료들이 섞여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개성이 강한 서로가 만나 이렇듯 둥근 모습의 가정을 이루는 것 같다.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퓨전 음악, 퓨전 패션, 퓨전 광고 등 퓨전 문화의 범람도 바로 이 김치전 같은 섞임의 조화로 탄생된 것인 아닌가 한다. 부대찌개 같은 퓨전 요리도 인기가 있다지만 그 생명력이 김치전만 할까?

음식 중에 김치처럼 푹 쉬어도 별스럽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흔하지 않다. 김치가 들어간 음식은 다 인기가 있다. 김치전,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김치 동그랑땡...... 사람 중에도 김치처럼 아무리 보아도 싫지 않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 정겨움이 깊어지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부모, 특히 어머니가 아닌가 한다. 어머니 하면 보통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는데 나는 시어머님이 친어머니 같다. 사남 일녀의 막내며느리인 나에 대한 시부모님의 사랑은 특별하다. 결혼을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꼬박 15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동안 자잘한 갈등이야 없었을 리 없지만 그때마다 한발 물러나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거듭되면서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사랑을 키운 것 같다.

어머님은 좀처럼 노는 것에는 흥미가 없으시다. 일흔이 넘은 지금도 길에 다니며 빈 병이나 박스, 신문지 같은 폐품들을 모으신다. 한 번은 그것들을 내 소형 승용차 뒷좌석이 꽉 차도록 싣고 고물상엘 간 적이 있다. 막걸리 한 병 값에 불과한 돈을 받아들고 흐뭇해하시는 어머님, 

이렇듯 검소하고 부지런한 어머님의 아들임에도 남편은 일하는 것보다 방황하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과 정열을 보내왔다. 그럼에도 자기주장은 강해서 무엇이든지 자기 고집대로 해야 한다. 나는 잘 웃는 편이지만 남편은 찡그리길 잘한다. 중학생인 아들은 책을 좋아하고, 초등학생인 딸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놀기를 좋아한다. 따라서 서로 다른 말들을 하다가 그 서로 다른 것들이 부딪혀 웃음을 만들기도 한다. 또 서로의 모난 부분들이 반복해서 부딪히는 동안 각이 깎였다.

배어낸 가지에 자른 새 가지를 맞대어 묶어 놓으면 서로의 상처로 스며들어 새로운 우량 품종의 나무가 탄생되는 접목. 혹은 서로 다른 뿌리를 가졌으면서 한 나무처럼 붙어사는 연리지(連理枝)라고 할까? 아버님, 어머님이 그러하듯 극과 극의 성격인 그이와 나 사이에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아픈 곳을 감싸온 것인지 모른다.

IMF 이후 대부분의 서민들이 다 그랬듯이 우리 가정도 경제적으로 휘청거리게 되었다.

 현상 유지만 겨우 되는 가게를 접고, 한창 붐이던 PC 사업에 풍부한 전문 지식도 없이 달려들었다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서로를 격려하며 새 일을 찾았다. 막상 할 일을 찾고 보니 턱없이 부족한 자본에 신경이 쓰였다.

점점 추워지는 겨울이 걱정스럽던 어느 날 아버님 어머님께서 우리를 불러 앉히셨다.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돈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물으셨다. 그러고는 통장을 하나 주시면서 나중에 갚으라고 하셨다. 그 통장에는 생각지도 못한 숫자가 박혀 있었다.  

김치전을 무척이나 맛있게 드시는 어머님, 어머님은 밥상에 하루라도 빠지면 서운한 김치처럼 우리 가정을 든든하게 지키신다. 김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씩 다른 맛으로 사랑을 받는다. 양념이 익지 않았을 때는 각각의 맛이 살아있는 싱싱함으로, 잘 익었을 때는 조화로운 맛으로, 그리고 푹 익으면 다른 것들과 섞여서 새로운 맛과 향으로 ......

새로 시작한 사업장에 출근하기 위해 대문을 나선다. 와락 안기는 겨울바람이 무척이나 차다. 그러나, 그 속에 접목되어 있는 봄을 생각하니 날선 바람도 상큼하게 느껴진다. 자동차 문을 열다가 올려다본 창에는 어머님이 서 계신다. 날마다 저렇게 골목을 빠져나가는 나의 뒷모습을 보셨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