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베짱이의 마지막 연주

 

 

 

                                                                                                                                김우종

 

 그해 여름이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것은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내가 '서대문 큰집'에서 돌아오던 여름에는 대통령 부인 육영수가 피살되고 세상은 더욱 험악해졌었다. 다음 해에 나는 수필집 《그래도 살고 싶은 인생》 과 평론집이 판매 배포 금지되고 경희대도 떠나게 되었다. 가깝던 문단 친구들도 멀어져 갔다. '철새들'이 다 떠난 자리에서 기약 없는 긴 방학이 시작되자 나도 가족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나는 한강 너머 양녕대군(讓寧大君) 묘 곁의 약수터로 이사했다. 그리고 날마다 손자 손을 잡거나 업어주며 약수터에 나가 앉아 멀리 한강 너머를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

 

 처서도 지나고 여름이 다 갈 무렵의 어느 날 저녁이다. 환한 형광등 불빛을 찾아서 방으로 귀여운 손님객이 날아들었다. 낮에 약수터에서 만났던 베짱이가 마을을 왔나 보다.

 

 곤충들이 밤에 불빛을 찾는 것은 당연하지만 행여 밤바람이 차져서 내 방으로 찾아든 거라면 베짱이가 가엾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장난을 하고 싶어졌다. 그 녀석을 잡아서 모시옷 같은 날개에 색동옷 무늬를 입혔다. 빨강, 남색, 노랑, 초록 등, 그리고 마당 풀밭에 그대로 놓아 주었다.

 

 웬일인지 베짱이는 약수터 산속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해바라기와 호박잎에도 앉고, 장미가지에도 앉으면서 우리 색동옷 귀염둥이는 목장에서 늘 혼자 잘 놀아주었다. 어쩌다 안 보이면 나는 궁금해서 이곳저곳을 수색하다가 단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애를 먹이다가도 다음 날쯤 어디선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여간 반갑지 않았다. 큰 길의 미화원처럼 눈에 띄는 복장을 입혀놓기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그 녀석은 몸을 숨겼다가도 내게 들키고 마는 것이었으니까.

 

"아빠, 베짱이는 여기서 살다가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긴. 가을이 되고 찬바람이 불면 멀리 떠나버리는 거지."

"어디루."

"그냥 죽는 거야."

 딸은 개구리와 도마뱀과 곤충들을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죽는다는 말에 좀 시무룩해졌다.

 

 딸이 그날 이후 베짱이에 대해서 매일 생사여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관심이 커지자 나도 아침마다 '밤새 평안하셨습니까'하며 그들에게 안부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 녀석이 또 내 방으로 들어왔다. 색동옷차림 후 첫 번째 방문이었다. 그런데 창문에 앉아 있던 녀석은 놀랍게도 내게 멋진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쩍 쩍'하며 입맛을 다시더니 날개를 조금쯤 엉거주춤하게 든 상태를 유지하면서, 기막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쩍 쩍'은 본 연주를 위한 조율이었나 보다.

 

 베짱이의 연주는 엿장수의 경쾌한 가위질 소리이며 치렁치렁한 머리를 사정없이 싹뚝싹뚝 잘라버리는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다. 그 소리는 너무도 경쾌하고 청아하고 시원하다.

 

 그렇게 울던 베짱이는 관람석에 앉아 있는 내가 너무 유심히 보고 있어서 멋쩍어진 탓인지 푸르르 날아서 전등 줄에 동동 매달렸다. 형광등과 백열등과 발갛고 작은 등을 필요에 따라 조종하는 가는 줄에 매달려서 이번에는 그네를 탔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베짱이는 방 안에 없었다. 목장 풀밭에 내린 이슬이 차가웠다. 나는 그녀석이 숨을 만한 곳은 모두 찾아봤지만 어디에서도 색동저고리의 행방은 묘연했다.

 

 사마귀에 잡혀 먹힌 것일까.

 

 내 집 뜰에는 커다란 사마귀가 한 마리 있다. 지난 번 아주 무덥던 어느 날 그의 등에는 자기보다 훨씬 날씬하고 작은 사마귀가 업혀 있었다. 수놈이 올라타고 사랑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방에 있다가 얼마 뒤에 나와 보니 너무도 어이없는 광경에서 기가 막혔다. 암놈이 조금 전까지 사랑하던 자기 '남편'을 머리부터 목덜미까지 다 먹어 치우고 이번에는 '등심'을 뜯어 먹을 차례였다.

 

 이런 잔인성 야만성과 왕성한 식욕이면 우리 색동저고리도 벌써 그의 아침 식사거리가 돼 버렸던 것 아닐까?

 

 나는 남편 잡아먹은 죄인을 당장 우리 집 낙원에서 추방해 버렸다. 뱀 잡는 땅꾼처럼 그의 목덜미를 잽싸게 틀어쥔 다음 담 밖으로 힘껏 던져 버렸다. 그런데 그 후 그는 다시 우리 풀밭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다시 그의 목덜미를 잡고 담 밖으로 내던지는데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 후 그는 또 스며들었을까? 확실히 알 수가 없었지만 장발장을 쫓던 경감처럼 그는 결코 먹이를 두고 단념할 녀석이 아니었다.

 

 그런데 알록달록 색동옷 스타복에 멋진 가위질 연주를 해준 베짱이는 결국 그것을 마지막으로 하고 사마귀에게 잡혀간 것일까?

 

 남편 잡아먹은 사마귀를 내가 의심하는 이유는 그 녀석 말고는 아무도 혐의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날 밤 풀밭 어디엔가 잠복해서 삼각형 대가리를 치켜들고 베짱이의 명연주를 다 듣고 있다가 그가 밖으로 나오자 소리 없이 다가가서 잽싸게 덮치고 사라졌을 것이다.

 

 사마귀는 발자국 소리가 없다. 색깔도 풀빛과 꼭 같은 위장색이다. 그의 접근은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리고 은밀히 먹이에게 접근하는 그는 긴 목을 뒤로 빳빳하게 제키고 상대를 노리다가 기습적으로 달려드는 것이었다.

 

내게 접근했던 보안사 사람들도 그랬었다. 그들은 소리 없이 교내에 스며들어서 내게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명강의(?)를 다 듣고 있다가 내가 잠깐 목을 축이려고 옆방 휴게실에 들어서자 잽싸게 양쪽에서 달려들어 팔을 꽉 끼고 계단을 내려가 검은 지프차에 밀어 넣었다. 사마귀와 꼭 같았다. 그래서 학생은 물론이고 교내의 아무도 내가 그렇게 사라진 것을 몰랐기 때문에 아내는 울면서 며칠 동안 나를 찾아 헤맨 것이다.

 

 나는 그들이 언제부터 내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는지 잘 모른다. 어쨌든 그 당시의 기관원이라는 사람들은 어디엔가 몸을 숨기고 있다가 특별한 먹이가 나타나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접근했다.

 

 특별한 먹이는 다름이 아니다. 베짱이처럼 분명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독재 정권 체제에 방해되는 자는 그들의 먹이다.

 

 그들은 남들을 똥개처럼 길들이려 하고 순종을 강요했다. 다만 아파트에서 성대수술을 받고 쉰 목소리만 내는 강아지처럼 조용하고 주인을 잘 따르면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날의 베짱이처럼 감히 밝은 조명까지 받아가며 대담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자는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끌려갔다가 돌아오면 그렇게 짖지 못하는 개가 되기 쉬웠다. 그렇지만 우리 집 베짱이의 그날 연주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삼각형 대가리들이 도처에서 노리고 있는데 밝은 불빛의 무대에까지 나서서 제 목소리를 내는 당당함, 그리고 여름도 다 지나서 생을 마감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렇게 최고의 명연주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가려고 한 치열한 예술정신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런 멋진 연주 때문에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