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에서 얻은 촛불

 

                                                                                           -정목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이 몰락과 궁핍에 빠지게 되었다. 고교 2학년이 될 무렵이었다. 느닷없이 4남매 장남으로 어머니를 모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청운의 꿈을 가졌던 그 시절, 하늘을 보고 낙망했다. 운명의 신으로부터 왕자의 자리에서 쫓겨나 땅바닥에 처박힌 꼴이었다. 친구들은 일류 대학에의 꿈을 키워가며 공부에 열중할 때, 나는 인생에 대한 회의와 절망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럴 때, 친구 네 명이 진주에 일류 관상쟁이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이 일어 같이 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한 명씩 관상쟁이의 미래에 대한 예측과 운명의 말을 반신반의半信半疑 하면서 들었다. 친구들의 표정은 예사로운 게 아니었다. 자신의 장래와 미래는 누구보다 밝고 성대할 것이라는 신념과 확신의 표정을 보였다. 관상자의 말을 통해 은근히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시키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관상쟁이는 무덤덤하게 보편적이고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인생 처세훈을 들려주는 것으로 예언을 끝냈다. 기대했던 친구들의 얼굴에서 실망의 빛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초년고생初年苦生이나,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나에게는 약간 달콤한 위안의 말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실부모, 초년고생’을 들먹거림으로써 기가 죽어 있던 나에게 어깨 힘이 더 빠지게 만들었다. 초라하고 궁색함을 느끼게 했다. ‘대기만성’은 사탕 같은 말이긴 했다. 당장 내일이 급했던 나에게는 그런 말이 까마득한 안개 같기만 했다.
 과연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란 게 있는 것일까. 일생 중 자의식이 뚜렷해지는 고교 시절에 벌써 궁핍해져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가슴이 움추려 들었다.
문학의 길로 가기로 결심한 후, 소박한 내 꿈은 방 하나를 갖는 일이었다. 내 책상이 있고, 책꽂이가 있었으면 했다. 소박한 꿈이었으나 이룰 수 없는 너무 사치스런 욕망이었다. 어머니와 4남매가 한 방에서 지내야만 했다. 나는 ‘방’이 절실하였고 은밀한 공간을 설정함으로써 자유와 독립과 창조를 꿈꾸었다. 방 한복판에 책상을 놓고 그 위에 촛불을 켜고 앉은 장면을 연상했다. 간섭받지 않은 오로지 나만의 공간 속에 책상을 놓는다는 것과 촛불을 켠다는 것은 우주의 중심점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삶의 궁색을 떨쳐버리고 나다운 모습을 보여주려면 적어도 혼자 꿈꾸고 잠자는 방 하나만은 소유하고 싶었다.
 식구 다섯 명이 공유해야 하는 방은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흔쾌히 그들을 맞이할 수도 없어 궁색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자존심의 뿌리까지 심하게 상처를 받곤 하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특히 친구들끼리 놀러가서 무엇을 사 먹고 놀 때에 용돈이 없었던 나는 그저 얻어먹고 베풀 수 없음에 기막히고 속이 끓어올랐다. 내색만은 하지 않았다.
 경남 고성 삼산면 바다가 보이는 작은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던 여교사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신혼생활을 할 때였다. 시골 마을에 방 하나를 얻어서 제일 안쪽에 어머니, 아기, 아내가 차례대로 눕고 제일 바깥쪽이 내 자리였다. 식구들이 잠든 밤에 배를 방바닥에 붙이고 책을 보거나 글을 썼다. 우리 식구 중 누구도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는 원하는 손자를 보게 되어 더없이 흐뭇했으며, 아내와 나 또한 학교에 무탈하게 다닐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밤이면 한지 방문에 날벌레가 날아와 부딪치고, 벽에는 지네나 노린재 같은 발이 수십 개 달린 벌레들이 잽싸게 기어가곤 했다. 아기를 생각해서 신문지로 몰래 벌레를 싸서 문을 열고 마당으로 던지곤 했다. 그럴 땐 추녀 끝에 제비집이 보였다. 아기 제비를 다섯이나 낳은 엄마 제비는 아기를 품고 있었지만, 둥지가 좁아서 아빠 제비는 좀 떨어진 전깃줄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한 추녀 밑에서 똑같이 세들어 사는 우리 집과 제비 집 식구들은 아기를 키우는 이웃으로써 관심을 갖고 인사를 나누고 아기가 잘 자라길 기원했다.
 아기가 자라면 방이 생겨나리라. 궁핍을 느끼기는커녕 어머니를 모시고 아기를 키우는 방이 있음이 눈물 나게 고맙고 행복하게만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우리 아기가 “엄마 아빠” 말을 배울 무렵에, 제비집에서도 “지지배배-” 제비가 말을 배우며 제법 날갯짓을 해대고 있었다.
 방 하나를 소망했던 시절, 글 읽고 쓸 수 있는 책상 하나를 갈구했던 때가 있었다. 갑년을 넘기고 생각해 보니, 일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궁핍하기만 했던 그 때가 아니었던가 싶다. 제비 아빠는 둥지가 좁아  밤을 보내지 못했지만, 나는 문간 자리에서나마 잠을 청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제비 아빠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서른이 돼서야 문단에 데뷔 과정을 거쳤으며 등단작품이 <방>이었다. 궁핍을 면해 보려는 생각의 뿌리가 이 작품 속에 녹아있다. 지금도 변변한 방과 서재를 갖지 못했지만 조금도 궁핍하게 여기지 않는다. 마음 고요 속에 내 생명의 촛불이 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