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봄비

                                                                         鄭 木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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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엔 봄비가 되고 싶어.

얼어붙었던 나뭇가지에 내려서 말하고 싶어. 손잡고 싶어. 눈맞춤하고 싶어. 귀엣말로 부드럽게 속살거리며 …….

 

훅훅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하고 싶은 걸. 온 몸으로 뼈 속에 스민 한기를 녹여 줄게. 살갗이 터지는 고통과 외로움을 벗겨 줄게. 빗방울 하나씩으로 가지에 꽃눈이 되고 잎눈이 되고 싶어. 그리운 말로, 설레는 말로 네 굳은 가지와 마음속으로 수액이 되어 흐르고 싶은 걸.

 

사납게 울부짖던 바람에도 꿈쩍도 않던 나무에게 생명의 음표들을 달아 주고 싶어. 딱딱하고 차가운 마음을 풀어 주고 목과 겨드랑이에 스며들어 간지럼을 주고 싶어. 툭툭 깨어나 잎눈이 되는 생명의 말……. 새롭게 피어나는 말, 감동으로 젖어 버리는 말……. 생명의 향유를 가져와 언 몸에 뿌리고 쓰다듬어 줘야지.

 

방울방울 가지에 맺혀 꽃눈이 되고 잎눈이 되어 산과 들판을 물들이고 싶어.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찾아가고 싶은 걸. 봄비가 내린 후의 산 빛을 보아. 얼굴을 씻고 난 숲을, 갓 태어난 부드러운 빛깔들이 꿈틀거리며 펼치는 향연. 막 몸을 푼 산모의 표정 속에 깃든 평화로움을…….

 

산과 들에는 어머니의 젖내가 풍겨. 잠을 깬 흙들이 가슴을 펴 심호흡을 하고 있어. 바람은 어느새 아기의 머릿결처럼 부드럽게 닿아 와. 봄비가 내린 후면 눈 맞춤할 게 많지. 물기 머금은 거무죽죽한 땅의 틈새로 불쑥불쑥 솟아난 새싹들…. 아기의 잇몸을 뚫고 돋아난 새하얀 치아 같은…. 구멍에서 나와 행렬을 지어 햇빛 속으로 기어가는 개미떼들….날렵한 허리, 더듬이, 다리들을 좀 보아. 아직도 겨울잠이 덜 깬 듯, 눈부신 햇빛에 취한 듯한…. 어린 풀숲에 벗어 놓은 뱀의 허물…. 논 속으로 뒷다리가 생길락 말락 한 올챙이들을 보렴. 나뭇가지를 물어 와 둥우리를 새로 고치는 까치부부…. 나뭇가지에 가느다란 줄을 매달고 대롱거리며 꿈꾸는 곤충의 번데기들을 ……. 마른 잎을 돌돌 말아 알을 숨겨 놓은 걸 보아. 모래알 같은 알들에서 들려오는 노래…….

날개가 푸드득거리고 있어. 말을 건네고 싶어 못 견디겠어. 세상이 새로움으로 눈뜨고 있어. 얼굴엔 맑은 미소가 피어올라. 몇 만 년이고 봄이면 해마다 되풀이하는 대지가 깨어나는 숨소리…….

 

3월엔 봄비가 되고 싶어.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봄비가 되었으면…… . 방울방울 움들이 피어나게… . 그 움들이 초록 세상이 되게…. 마른 가슴을 적셔 꽃눈과 잎눈이 되고 싶어. 한 번이라도 봄비가 되었으면 해. 따스한 입김,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네 언 손과 굳은 몸을 녹여 주고 싶어. 어떻게 고통의 신음을 지워 주는 기도가 될 수 있을까.. 설움을 풀어 주는 노래가 될까.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순 없을까.

 

나는 슬픔을 주는 비였을 뿐이야. 몸을 떨게 한 빗방울이었을 뿐이야. 이젠 봄비였으면 해. 한 방울의 훈훈한 봄비. 외로운 이웃에게 푸른 손을 내밀고 싶어. 땅 속 깊은 곳에 묻힌 씨앗들에게 말하고 싶어. 아, 나도 초록으로 떠오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