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 배형호

    

 

 

그를 아재라 부른다.

남해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고 차는 빠르게 달린다. 차 안에 타고 있는 친구들은 말이 없고, 차는 늘어진 고무줄이 제자리로 돌아가듯 땅 끝으로 끌려간다. 그늘진 산비탈을 따라 올봄에도 진달래가 붉게 타오르고 있다. 참꽃, 고향에서는 진달래를 참꽃이라 불렀다. 참꽃이 피면 생각나는 아재.

며칠 전 아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한 마디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입을 다문 전화기가 나보다도 더 궁금한 듯 뒷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튿날, 내가 전화를 했다. 길게 심호흡을 보냈지만 받지 않았다. 쑥스럽고 민망해서일까. 저녁에 다시 해 보기로 하고 어제 남긴 한 마디를 곱씹어 보지만 헛웃음만 나왔다. 

아재는 친구다.

초등학교를 고향에서 함께 다녔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키가 컸으며, 키가 큰 만큼 어른다웠고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그래서 아재라 불렀다. 그는 산속에서 살았다. 동네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곳이지만 그의 집까지는 한 시간을 더 가야 했다.

봄이면 아재는 꽃 당번이었다.

해마다 봄이면 친구 집으로 가는 길을 따라 참꽃이 푸지게도 피었다. 우리는 뚝뚝 한 아름씩 꺾어온 참꽃을 바위에 앉아서 입술이 새파랗게 멍이 들도록 따 먹곤 했다. 꺾을수록 가지 수가 늘어났다는 참꽃을 친구는 봄이면 교실 화병에 가득 채우곤 했다.

남도로 가는 차창 밖으로 참꽃이 피고 있다. 바람이 분다. 산모퉁이를 따라 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처럼 떠돌던 어재가 나를 부르는 듯 참꽃이 피고 있다.

산속에서 구름을 벗해서인지 초등학교를 마치고 떠나간 친구는 몇 해 전 고향에서 연락을 해 왔었다. 우리는 손을 잡았다. 친구는 웃으며 ‘가재’ 잡으러 왔다고 했다. 그의 집 옆으로 흐르는 도랑에는 가재도 참 많았다. 앞으로 가기보다는 뒤로 가기를 좋아하는 가재, 고향에서 온 친구의 모습에는 키보다 세월이 더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았다.

그때 친구는 더 깊은 산속 강원도에 산다고 했다. 홀로 하는 즐거움을 선문답처럼 남기던 친구가 돌고 돌아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아있었다. 친구의 전화에는 산새 소리가 아닌 갯 내음이 전해져 왔다. 땅 끝에서 파도 소리처럼 온 전화는 “나 장가간다.”였다.

나는 지금 새신랑 들러리가 되어 땅 끝으로 가고 있다. 오십을 다 넘겨서 장가드는 친구를 위해 사위와 며느리까지 본 친구들과 남쪽 바닷가로 가고 있다. 강을 옆으로 두고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늘어선 차들에서 삶의 한 단면을 본다. 승용차와 관광버스, 짐을 가득 실은 화물차, 큰 차와 작은 차, 새 차와 오래된 차가 굽이진 인생길처럼 이어져 있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집에 신랑 신부가 마주 섰다. 드레스대신 한복을 입고 있다. 친지 몇 분과 신랑 친구인 우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진 소박한 결혼식이지만 신랑과 신부는 사뭇 엄숙하다.

축가를 부르듯 길게 뱃고동을 울리며 여객선이 지나간다. 녹의홍상 대신 바닷물 봄빛 치마 저고리를 입은 신부는, 그 넉넉함과 따스함으로 괴팍스러운 아재를 잘 덮어 줄 것 같아 보여 먼 길 온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울 밑에 앉아 있던 노란 민들레가 긴 목을 빼고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다. 자식을 조롱조롱 품고 앉아서 신랑 신부를 지켜보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와서 이곳에 뿌리 내렸을까. 벌써 머리 부푼 자식은 떠나려고 바람을 기다린다. 키워서는 바람 따라 훌훌 떠나보내는 민들레. 그래서 뿌리는 더 enfr고 깊게 내리는 것일까.

아재와 나, 우리 모두의 삶이 민들레다. 바람 따라 땅 끝까지 온 민들레. 땅 끝은 바다의 시작이며 바다의 끝은 땅의 시작이 아닌가. 땅 끝이 아닌 바다 끝에서 깊게 뿌리내리길 바라며, 진달래보다 노란 민들레로 아재를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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