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假面) 세상

 

삼계 김 학

 

 

날마다 가면무도회(假面舞蹈會)라도 열리는 것 같은 세상이다. 민낯으로 살아가기가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두렵고 무서워서 그러는 것일까? 산책길에서 만나던 가면 쓴 여인들이 요즘엔 시내 길거리에서도 자주 눈에 띈다. 산에서 살아야 할 멧돼지들이 도심지로 내려오는 것처럼….

험한 세상이 되다보니 가급적 자신의 얼굴을 남들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위장술인지도 모른다. 메르스 같은 괴질을 예방하려고 가면을 쓴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때는 정부가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라고 권유를 했으니까. 또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여 여인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려고 가면을 쓰는 여성들도 있겠지만, 보는 이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것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지난봄부터 MBC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일요일 오후 4시 50분에 <복면가왕(覆面假王)>이란 미스터리 음악 쇼가 방송되면서 가면은 더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게 되었다. 노래실력을 겨루는 음악 프로그램인데 출연 가수들이 저마다 기기묘묘한 복면을 쓰고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부른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그 출연자가 누구인지 정체를 알 수 없기에 더 흥미를 느낀다. 시청자들은 궁금증을 갖고 손에 땀을 쥐며 노래를 감상하고, 판정단의 채점이 끝난 뒤에야 출연 가수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 진짜 얼굴을 보여 줄 때 관객들은 놀라서 탄성을 지른다. 연예인판정단이나 일반인판정단도 노래가 끝난 뒤 가수가 복면을 벗어야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으니 노래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복면가왕은 흥미 만점의 음악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프로그램 역시 가면을 쓰고 산책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프로그램을 창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산책길에서 만난 가면과는 달리 텔레비전에서 보는 복면은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 주어서 좋다.

사실 요즘에만 가면이나 복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도 탈이란 가면이 있었다. 봉산탈춤과 하회탈춤, 고성 오광대, 양주 별산대놀이, 송파 산대놀이, 동래 야유(野遊) 같은 게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탈놀이였다.

탈이나 가면 또 복면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도구들이다. 그것을 얼굴에 쓰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양반 상놈 등 신분이 엄격히 구분되던 조선시대에도 탈을 쓰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탈을 쓴 상놈은 백중날 놀이마당에서 마음껏 양반을 희롱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양반들도 그날만큼은 상놈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 누구나 탈을 쓰면 풍자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놀이마당에 모인 관객들을 즐겁고 통쾌하게 해주는 유희라고나 할까?

탈은 여러 가지로 유용하게 활용되기도 한다. 얼마 전 KBS-2TV에서 <각시탈>이란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송된 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간악한 일본경찰을 골탕 먹이는 각시탈이 종횡무진으로 일본 경찰을 골탕 먹이며 활약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을 통쾌하게 해주어 인기를 끌었다.

서양에서도 옛날부터 가면무도회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가면을 쓰고 가면무도회에 참석하여 술을 마시고 춤도 추며 즐겁게 노는 축제였다. 얼굴을 가리고 참석하니 누구나 신나게 놀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그 무도장에서 만난 파트너가 마음에 들면 손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가 탈을 쓴 채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즐거운 파티라고 한다.

지금은 가면을 쓰지 않고도 부끄러움을 모른 채 뻣뻣이 고개를 들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은 어디로 갔을까? 양심을 저버리고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이들이 많아서 경찰이나 법조인들이 더 바빠진 것 같다.

누구나 부끄러움을 알고 살아간다면 세상이 이렇게까지 어지럽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다간 모든 사람들이 다 가면이나 탈을 쓰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얼굴은 뽀얗겠지만 마음은 더 까매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