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증후군 /김응숙

 

창안은 환하다. 샹들리에 불빛 아래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인다. 벽난로에서도 불빛이 쏟아진다. 식탁을 둘러싸고 앉아있는 가족들 사이로 가벼운 웃음소리와 식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섞여든다.

창밖은 까맣다. 달도 보이지 않는 밤이다. 희끗희끗 날리는 눈의 잔광은 창문에 닿자마자 빛을 잃는다. 눈이 흩날리며 밤하늘이 더욱 어두워진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극명하게 나뉘는 빛과 어둠. 그 경계의 바깥, 창문 아래에 성냥팔이 소녀가 웅크리고 있다. 소녀의 손에 들려 있는 마지막 성냥 한 개비. 나는 그림책을 탁 덮는다.

애초에 그림책을 펼친 것이 잘못이다. 물론 이 이야기의 끝은 알고 있다. 왕비의 계략에 빠졌던 백설 공주도, 계모의 지독한 괴롭힘에 시달렸던 신데렐라도 끝에는 행복을 찾았다. 비록 왕자라는 변수가 작용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성냥팔이 소녀의 서사는 왜 이런가. 그녀가 처해 있는 혹독한 현실과 가혹한 결말이 명치끝을 묵직하게 누른다.

나는 이야기의 슬픈 결말을 직시하지 못한다. 장애 아닌 장애다. 소설을 읽다가 갖은 고난을 겪은 주인공이 쓰러질 즈음이 되면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다. 영화를 보다가도 삶의 벼랑 끝으로 다가서는 주인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황급히 채널을 돌린다. 그럴 때면 지레 이야기의 결말을 예단하고 포기해 버린다. 스스로 진단한 ‘성냥팔이 증후군’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주인공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뒤따른다. 마치 내가 그들을 버리고 도망이라도 친 것 같다. 아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외면한 것은 그들의 절망이다. 지난한 고통 끝에 맞닥뜨리는 절망, 나는 그것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소녀의 유일한 대사다. 찬 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그냥 소녀를 지나친다. 그들은 성냥이 필요하지 않거나 추운 날씨에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바람소리 때문에 가냘픈 그 소리를 못 들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소녀의 서사는 거부로 점철된다.

나는 십 대 시절에 세상으로부터의 거부를 경험했다. 중학교 중퇴가 그것이다. 집안 형편이라는, 나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었다. 거리를 배회하고 골목을 전전했다.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지나가는 내 그림자를 보고 개가 컹컹 짖었다. 하릴없이 뜬 낮달처럼 그렇게 낯선 동네의 모든 집을 지나쳤다.

노을이 졌다. 몇몇 소나무가 어스름한 하늘 갈피에 가지를 묻는 시간, 자그마한 바위에 앉아 나는 한 집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처럼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사위가 어두워질수록 창문은 밝아졌다. 선명해진 커튼의 꽃무늬 사이로 내 짝꿍이었던 아이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순간 그 불빛 속으로 결코 다가갈 수 없는 것이 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어두운 골목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며 다시 거부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나는 타인의 문 앞에서 늘 먼저 등을 돌리곤 했다. 행여 다시 거부당할까 두려워서 선택한 고독한 시간이었다. 절망이란 거듭된 거부가 쌓여 감당할 수 없을 무게로 가슴을 짓누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 모녀가 숨진 채 집안에서 발견되었다. 생활고 때문이라고 했다. 유명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악성 댓글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했다. 어린 아들과 딸을 동반한 채 젊은 부부가 차를 몰고 바다로 돌진했다. 가장의 사업 실패 때문이었다. TV에 나온 심리학자는 그들이 그런 선택을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어떤 사인을 남긴다고 말했다.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신호인 셈이다.

우편함에 쌓인 고지서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집 앞에 놓여있는 자전거, 뜬금없이 안부를 전하는 떨리는 목소리, 한강 다리에 서 있는 누군가의 긴 그림자.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 절망이라는 벽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문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온 힘을 다하는 마지막 몸짓이다. ‘성냥팔이 증후군’을 가까스로 이겨내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아니 어떻게든 우리가 들어야만 하는 희미한 소리다.

그림책을 다시 펼친다. 눈발은 그칠 기미가 없어 보인다. 눈은 소녀의 헝클어진 머리와 야윈 어깨 위에 계속 쌓이고 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마지막 성냥개비가 쥐어져 있다. 나는 속으로 외친다. ‘애야, 마지막 성냥을 켜기 전에 제발 저 문을 두드려 보렴. 누군가가 반드시 그 소리를 들을 거야.’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새로 쓰기로 한다. 소녀가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간다. “똑 똑 똑”

문을 두드린다.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웃음소리가 그치고 집안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들린다. 내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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