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 박갑순

 

 

노부부가 걸어간다. 남편의 팔을 꼭 붙들고 오른쪽 다리를 절룩이며 걷는 부인의 뒤를 간들바람이 따라간다.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며 걷는 모습이 애잔하면서 다정하다. 물기 마른 노거수가 줄지어 선 아파트 단지 모퉁이에 내려앉은 봄도 걷는다. 부축해주는 할아버지의 걸음이 부축받는 할머니보다 더 느리게 걷는 모습을 보자니 방안에 줄을 묶어 놓고 걸음 연습하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오십 중반에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젊은 날 남의집살이로 가계를 꾸리다 겨우 소작농으로 가장의 책임을 다할 무렵이었다. 큰 바위가 초가를 덮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암울한 날의 시작이었다. 신혼 시절부터 병약한 어머니의 지팡이였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부러진 지팡이가 된 아버지.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과 병원 치료를 받고 차츰 다리 근육에 힘이 생겼다. 부축을 받으면 걸을 수 있을 만큼 좋아졌다. 당신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살아온 아버지에게 주어진 간절한 휴식이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아버지는 너무 젊었다. 처음에는 한사코 지팡이 들기를 거부했지만, 잠깐의 외출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기에 지팡이는 점차 아버지의 일부가 되었다.

지팡이와 한몸이 될 무렵 지팡이를 버리고도 활동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하였다. 그러자 다시 농사일을 시작하였고, 몇 년 뒤 재차 쓰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당신 몸의 두 배 이상 되는 아버지의 지팡이가 되었다. 식사 수발부터 대소변 가리는 일까지 가느다란 지팡이 허리가 휘도록 최선을 다했다.

눈물도 밭아버린 눈으로 당신 손을 놓고 한쪽에 서 있는 지팡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절망을 이해하기에 나의 인생 경험은 너무 짧았다. 지팡이에 의지할 수도 없게 무너진 아버지는 때때로 쓸모를 잃은 지팡이를 쓰다듬으며 수건으로 닦곤 하였다. 그것마저 아버지의 외로움을 달래주지 못할 때는 지팡이를 들어 방바닥을 세차게 내리치기도 하였다. 장판이 찢어지고 지팡이도 끝이 잘려나가자 어머니는 지팡이를 마루 밑으로 치워버렸다. 몇 번 신지 않은 장화와 지팡이가 마루 밑에서 마냥 낡아갔다.

그해도 우리 집 좁은 골목에 봄이 들어서는 날이었을 것이다. 외로움이 극에 달한 아버지의 몸부림이었을까.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도 버거웠던 아버지가 외출을 단행했다. 빈집을 혼자 지키다가 방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토방으로 굴러떨어진 것이다. 성큼성큼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극에 달해 마지막으로 힘을 써본 것이리라. 그렇게 허망하게 아버지가 이승을 떠나면서 함께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 그 지팡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반질반질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지팡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하는 물건이 되었다. 내 삶이 흔들리고, 반듯하게 걸을 수 없을 때 나를 붙잡아 다독이며 함께 걸어주었던 지팡이는 아버지였다. 그 흔한 나무 막대기처럼, 위엄을 부리지 않고 마음 편하게 등을 내준 아버지.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고명딸이라며 무조건적 사랑만 주었다. 살갑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고 가끔씩 하는 무뚝뚝한 말씀에서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무조건적 사랑은 굴곡 많은 내 삶의 길을 이끌어준 지팡이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지팡이다. 오른손에 형식적으로 든 지팡이가 있으나 온전히 안전을 담보하고 마음까지 지지해줄 할아버지에 비할까.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고 했다. 생명을 얻는 순간부터 잃어가는 순간까지도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이제 나에게 청려장은 남편이다. 비가 와서 질척이는 길을 갈 때도, 빙판길을 갈 때도 지팡이는 내 걸음보다 한 발 앞서간다. 당신이 먼저 안전을 확인한 후 걸음을 안내하는 것이다. 남편을 의지해서 쉰 후반 고개를 안전하게 넘고 있다. 무슨 일이건 내가 하는 일에 전폭적으로 도와주고 힘을 실어주는 든든한 남편을 아버지는 나의 지팡이로 넘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의지하며 노부부가 걸어간 길을 젊은 아빠와 어린아이가 걷는다. 키보다 훨씬 큰 지팡이를 올려다보며 노란 가방을 맨 여자아이가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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