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가 구른다 / 김희숙

 꽃이 핀다. 손가락을 슬쩍 비트니 오므린 몽우리가 보시시 벌어진다. 흙 한 줌에서 생명력이 살아난다. 허공을 메울 잔가지나 바람에 하늘거릴 이파리 하나 돋지 못한 줄기지만 꼿꼿하게 버티고 섰다. 앞으로도 꽃송이 서너 개쯤은 거뜬히 피워낼 수 있으리라. 코끝을 간질거리는 향기와 눈길을 사로잡는 빛깔은 없어도 투박한 질감이 마음을 당긴다.

 

그릇은 오롯이 인간의 도구다. 사발에 김 오른 밥을 담고 종지의 짠기를 더해 밥심을 돋운다. 너나없는 콘크리트 삶 속에 작은 토분이나마 식물을 심어 자연을 벗한다. 연잎 화반에 꽃불을 켜 주위를 밝히고 달항아리를 들여 희로애락을 품는다. 때때로 사람은 스스로를 그릇에 담는다. 제멋대로 크기까지 정하여 정신을 가두는 오류도 범한다. 땅에서 생명이 올라온 형상을 문자로 토土라 했다. 자신의 한계를 깨고 나오는 자라야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도공마다 흙과의 연緣이 다르다. 바탕흙에 따라 도자기 빛이 달라지기에 도예가는 여러 가지 점토를 섞어가며 자신만의 흙색을 찾으려 애쓴다. 인연은 바람처럼 느닷없이 마주한다. 논밭이 농약과 비료를 마셔가며 바삐 곡식을 키워낼 적에, 풀뿌리 돌보며 산자락 지켜냈을 흙이다. 질척한 황토는 앞산에서 캐어 오고 희고 고운 돌가루는 먼 고장에서 실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정든 땅을 떠나 낯선 곳에 부려질 때에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으리라. 자칫 쓸모없이 버려지지나 않을지 염려도 하였겠지. 하얀 가루와 붉은 흙이 물과 뒤섞이며 혼돈으로 빠져든다. 뿌연 흙탕물에서 부딪치던 이질감은 걸러내고 겉돌던 습성을 가라앉힌 후에야 고운 앙금으로 어우러진다. 서로를 끌어안아서인지 찰지고 끈끈하다.

 

제아무리 순수한 흙이라도 태생 그대로는 쓰일 수 없다. 잡은 것이 많을수록 몸뚱이는 억세고 숨결이 꼬인다. 변하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도공이 발꿈치로 자근자근 눌러댈 때마다 간직해 둔 새소리와 풀벌레 자국과 뒹굴던 이파리의 추억을 쏟아낸다. 깊숙이 남아있던 인연 한 올과 그리움 한 모숨까지 모조리 뱉는다. 굳어진 관습은 버리고 끊임없이 안쪽을 들여다보아야 의식이 무르녹지 않을까. 기억마저 흩어버린 ‘공’의 상태라야 새로운 삶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터이다.

 

흙덩이를 내리꽂는다. 철퍼덕, 단단하던 덩이가 절규하는 뭉크의 얼굴처럼 일그러진다. 뭉개진 틈새로 속내가 내비친다. 새움 틔우던 햇살과 푸른 하늘 품은 소낙비와 수시로 드나들었을 갈바람과 메마른 솔잎 적시던 풋눈이 설핏 스친다. 안의 것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재빨리 감싸 안는다. 만물을 낳고 자라게 하던 흙이다. 자연이 깃든 흙이라야 생명을 살리는 그릇으로 안성맞춤일 게다.

 

가장자리 흙살을 손바닥으로 토닥이며 물레와 안면 트기에 들어간다. 처음엔 가벼운 고갯짓이 오가다가 눈길이 머물며 서로의 삶을 얹는다. 하나둘 겹쳐지면 연줄이 두터워지고 시간 들여 공글리다 보면 서서히 둥글어진다. 닿는 면이 늘어날수록 마음 문은 열리기 쉽다. 마을을 에워싸는 산봉우리보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낮은 언덕이 더 살갑다. 때로는 성급하게 다가섰다가 상대가 한 발 뒤로 물러설 때도 있으니 긴 기다림도 필요하리라.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물레가 흙을 쏟아버리면 미련 없이 버려도 되지 않을까. 살다 보면 어긋나는 인연도 있을 테니까.

 

뿌리는 내렸다 하나 여전히 흔들리는 촛대다. 한 단계 올랐다며 어깨를 거들먹거리거나 고개를 뻣뻣이 치켜든 벼는 거센 바람에 빈 쭉정이가 되기 십상이다. 헛가지는 잘라줘야 튼실한 열매가 맺힌다. 팔꿈치를 최대한 배꼽 쪽으로 붙여 손아귀에 체중을 싣는다. 전신의 기운을 흙에게 전해주며 바닥으로 누른다. 솟구치려는 힘과 내리누르는 압력이 거세게 맞선다. 빈틈투성이 삶이 비틀거리며 주저앉는다. 기껏 올라섰다 여기던 자리도 무너져 내린다. 기세 좋게 뻗치던 자만도 꺾이고 어지럽게 휘젓는 날개도 부러진다. 그러나 땅을 향해 머리 숙이고 온몸을 바짝 엎드린다고 서러워할 이유는 없겠지. 진정한 삶은 자기부정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비워야 쓰이고 채워진 그릇은 더 이상 담아내지 못한다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새긴다. 아집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습관을 부단히 고쳐야 어떤 음식도 담아내는 진정한 그릇으로 탈바꿈될 터이다.

 

질그릇은 인연으로 빚는다. 무에서 유의 창조가 아니라 받아들여 변화한다. 중심에서 잡아주는 끈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고정되어야 원하는 모양을 완성할 수 있다. 다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돌탑 쌓는 정성으로 밀어 올린다. 힘껏 밀면 밀수록 상체는 앞으로 쏠리고 근육은 팽팽해져 온다. 말씬말씬한 흙이라고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두 손으로 버티는 힘이 없다면 흙기둥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다녀 흙에게 지게 된다. 겉으로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속속들이 뭉치지 않도록 소통해야 한다. 허술한 구멍이라도 남긴다면 불가마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해 쪼개지거나 밖으로 나오더라도 망치에게 깨어지는 수모를 겪는다.

 

물레와 속도를 맞춘다. 길쭉하게 올랐다가 뭉툭하게 이지러지기를 반복한다. 무수히 넘어지고 또다시 일으키는 가운데 세워지는 삶. 바로 선 중심에는 수두룩한 쓰러짐의 이력이 쓰였을 게다. 여러 번의 춤 높이는 과정을 겪어내고서야 숨 가쁘게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도 장승처럼 꿋꿋하게 일어선다. 중심 잡힌 기둥은 아무리 눌러도 얇게 펼쳐도 쓰러지지 않는다.

 

물기 품은 손가락이 흙살을 파고든다. 그 자리에 멈춘 듯 고요하던 중심이 출렁이며 안으로부터 온기가 번져간다. 볼록한 둘레를 중지와 엄지로 잡아 올리니 눈서리 품은 목련나무에 꽃망울 맺히듯 흙송이가 매달린다. 검지를 살포시 당기자 송아리가 활짝 열린다. 꽃부리 사이로 움푹 파인 바닥이 슬그미 웃는다. 물레가 구른다. 민낯의 접시 하나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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