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 창문 / 조문자 - 2023년 선수필 문학상

 

귀뚜라미조차 숨을 멎은 듯 사위가 고요하다. 인적 드문 산속에선 창문도 친구여서 불 켜진 윗집 창문을 곧잘 올려다보곤 한다.

능선의 가르맛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통나무를 엇긴 흙담집이 나온다. 집에서 오십 미터쯤 떨어진 윗집이다. 그곳엔 삐덩삐덩 마른 몸을 한 영감이 산다. 술기 오른 불그죽죽한 얼굴로 야외용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거나 양파를 다듬거나 나무 밑 해먹에 누워 낮잠을 즐긴다. 솔밭에 서면 오래된 소나무 같고 바위에 앉으면 이끼 낀 바위 같다.

윗집 창문은 바깥으로 돌출됐다. 비바람에 닳고 닳아 주인만큼이나 낡아버린 유리에 금이 갔는지 스카치테이프를 군데군데 붙였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창틀 색은 구닥다리 슬라이드를 떠올린다. 선반에 옛 노래가 꽥꽥 흘러나오는 고물 트랜지스터라디오를 구색으로 놓아두었다. 아직 따지 않은 고등어 통조림이며 녹슨 집게에 물린 빨래와 잡동사니가 올망졸망 섞여 있다. 여럿이 창가에 서서 누구네 집에서 팔순 잔치했다든지 아랫집 노총각이 드디어 베트남 여자에게 장가갔다든지 참기름보다 고소한 동네 이야기로 수다나 떤다면 어울릴 듯싶다.

해가 지기 무섭게 산골은 어두워진다. 낮에는 미미하여서 들리지 않던 소리가 온 산 가득 채운다. 는개와 달님이 몸을 섞어 노랗게 곪는 밤이면 발정 난 야생동물들 울음소리 저렁거린다. 가끔 북 치듯 우는 소쩍새 소리 질펀하다. 목이 찢어지라 울어 젖히는 고라니 구애 소리는 그악스럽다 못해 처절하다. 육덕 좋은 멧돼지 휘뚜루마뚜루 숲을 헤집고 다닌다. 바람이 늑대 소릴 내질 않나 전깃줄을 휘감아 휘파람 소릴 내질 않나 장독대 옆 뽕나무를 살살 꼬여 뱀 기어가는 소리로 안달 친다. 머리채를 잡힌 담쟁이덩굴 윗잎이 사그락사그락, 아랫잎이 파들파들 살비듬을 턴다. 등골이 오싹, 머리칼이 쭈뼛 선다.

들창가로 가서 윗집 창문께를 물끄러미 치어다본다. 푸르딩딩한 불빛이 희미하나마 반짝인다. 이 다사로운 풍경은 왜 이리 고맙고 정겨운가. 왜 이리도 시선을 떨리게 하는가. 여기 사람이 살고 있으니 두려워 말라 속삭인다. 그만 코끝이 찡해진다. 불빛이 주는 느낌이 아니라 내 생각이라 해도 괜찮다. 우중충한 마음 단박에 환해진다. 살아 있음의 외로움, 사는 일의 두려움을 지그시 바라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윗집 창문은 다시 나를 건드려 잊힌 유년과 만나게 한다. 마른버짐이 얼굴에 덕지덕지 핀 나는 어머니의 캄캄한 심연에 버려진 아이였다. 그때도 존재의 깊숙한 곳을 관통해 지나간 것은 창문이었다. 그 감동의 파장이 몇십 년이 흐른 지금에도 신기하게 똑같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할 나라로 떠나간 옛집은 마당이고 방이고 휑뎅그러니 크기만 했다. 막새기와에 백 년 묵은 적막이 고여 있었다. 어머니는 땅거미만 지면 요강을 씻어 머리맡에 갖다 놓고 나를 등지고 누웠다.

마을에 미친 여자가 있었다. 낮에는 가만히 있다가 밤만 되면 이 집 저 집 찾아다녔다. 남의 집 툇마루에 앉아 히득히득 웃음을 날리기도 하고 흐느끼기도 했다. 바람의 넋이었을까. 미친 여자였을까. 누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방문을 열어보면 아무도 없다. 으스스한 열이렛날 공산명월이 장지문 틈으로 방안을 쓱 비추었다. 가슴 밑바닥까지 저리게 하는 고요와 나뿐이었다.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어른이 되어 맞닥뜨리게 될 북풍한설이 그때 이미 주눅 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별이 가득 찬 하늘 밖 무궁한 곳을 헤매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물 글썽이다 잠이 들곤 했다.

담벼락 넘어 교회당이 있었고 보자기만 한 창문이 있었다. 밖으로 방범 창살이 촘촘히 박힌 내 방 창가에 서면 교회 창문이 보였다. 솔숲에서 이내가 아름아름 피어오르는 저물녘 세피아 빛 알전등이 켜지고 사람들이 실루엣으로 아른거렸다. 나의 막다른 처지는 교회 창문에 꽂혔다. 공포에 짓눌려 잠들지 못한 밤에는 교회 창문에서 새벽까지 불빛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버지가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광막한 어둠을 뚫고 지구의 조그마한 점인 딸을 애처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의 꼬리만 좇았다. 그래서인지 휑하던 집에 훈기가 돌았다. 때문에 지금도 나는 어둠이 잉태한 여명을 믿는다. 생生이 내 편일 때 자만하지 않으며 생이 내게 등을 돌려 끔찍하지 않은 무적일 때 참고 기다릴 줄 안다.

윗집 창문이라 해서 항상 불이 켜져 있는 것은 아니다. 고원의 겨울 들머리 귀때기 떨어지라 칼바람이 불어오면 느닷없이 하늘 꽃송이가 난분분 내린다. 영감이 짐을 챙겨 서울 집으로 황급히 가버린다. 날은 하릴없이 저물고 산촌은 허기지도록 쓸쓸하다. 윗집 창문 가부좌 틀어 동안거에 들어간다. 아랫집 산방에 찾아오는 사람 없고 할 일도 없어 태반은 견뎌야 할 시간이다. 날마다 듣는 건 바람 소리요 보는 건 하늘이다. 베개 끌어안고 빈둥거린다. 그것이 나다.

산수유 성긴 가지에 꽃이 돋는다. 사락사락 햇살 그네 타는 소리에 들뜬 마을 지그시 누른다. 뒷다리가 통통해진 개구리가 풀섶에서 뛰어나오는 날 후줄근한 잠바를 걸친 영감이 봄바람을 앞세우고 산마루로 돌아온다. 손에 든 커다란 통 속에 병아리가 담겨 있다. 윗집 창문, 거룩한 소임을 맡은 수행자와 다르지 않다. 다시 불이 켜진다. 살아 있음이 푸르게 물결쳐 온다.

마음에 창문 하나 만들어야겠다. 누군가의 배경이 되는 것보다 거룩한 일이 또 있으랴. 이 외로운 행성 어딘가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이웃의 손길을 기다리는 소녀 가장을 위해 삼십 촉 전등 하나 걸어놔야 하지 않겠는가. 옛날의 로맨티시즘을 회상하는 그대를 위해, 들창문 두드리는 밤비 소리 들으며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위해 이 밤, 창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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