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되는 법 / 김근혜

 

'우리가 되는 법’이란 작품이 눈길을 끈다. 이완이라는 작가의 미술품인데 오브제들을 모아서 저울 위에 올려두고 무게를 똑같이 맞추어 놓았다. 저울의 눈금에 호기심이 인다.

마네킹 몸통과 다리, 생수통, 도자기는 하나같이 성한 데가 없다. 똑같은 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이 많아 보였다. 서로 다른 개체가 함께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잘리고 재결합하면서 다른 사물이 되어 있다. 마네킹의 팔, 다리가 잘려나간 부분에서는 섬뜩하기도 했다. 모난 부분을 버려야 목적에 맞는 무엇이 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희생 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사랑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여러 오브제가 섞여 있는 미술품을 보며 다문화가정의 성현이가 떠오른다. 필리핀 어머니를 둔 성현이는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말투가 어눌하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했다. 성현이 가정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어머니도 아침 일찍 일을 나가 밤늦게 돌아온다. 성현이는 외롭다. 집에 가도 대화할 사람이 없고 학교에서도 같이 놀 친구가 없다.

민재가 주동이 되어 성현이를 따돌리고 때렸다며 아이들이 달려와서 일러준다.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더 막막했다. 그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민재를 불러서 타이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렸다.

생각 끝에 따돌림당하는 아이가 나오는 동화책을 읽어주고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했다. 민재는 구석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그렸다. 그림 속의 아이가 너라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민재의 눈가가 붉어졌다. 성현이와 민재를 불러 손을 맞잡게 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전해지는 마음 온도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손을 잡으니 어떠냐고 또 물어보았다. 따뜻하다고 했다. 민재도 혼자 있을 때보다 친구와 함께하는 것이 더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미술관에서 만나게 되는 무제無題’란 작품이 더러 있다. 그런 작품을 보면 내 머릿속의 수채화 한 폭이 스친다. 고등학교 다닐 때 미술 선생님을 짝사랑한 적이 있다. 풍경화를 그리라고 했는데 장난을 치고 싶었다. 관심을 끌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도화지에 물감을 쏟아 놓고 붓 가는 대로 휘저었다. 신나게 놀았던 것도 잠시 선생님께 혼날 것이 두려워 제목을 붙였다. ‘무제’라고. 그림에 제목을 붙인 사람은 나밖에 없다면서 외려 창의력을 높이 평가하셨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장난쳤다고 고백은 못 하고 두 번 다시 이런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제’란 작품을 대하면 작가도 나처럼 장난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분명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무성의하게 느껴지는 건 내 경험 탓일까. 문외한이어서일까. 영화나, 연극, 미술품을 보면서 가슴에 남는 작품 하나 얻어오기가 쉽지 않다. 그에 비해 이완의 작품은 신선하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세계. ‘우리’가 되기 위한 과정은 결코 넓은 길이 아님을 절단된 오브제를 통해서 보았다. 작가는 ‘우리’라는 개념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저울의 무게를 똑같이 맞춘 건 아닐까. 나만의 색깔을 버리고 다른 색과 섞이는 것. 내가 그어놓은 선 안으로 네가 들어올 수 있도록 경계를 푸는 일. 내 마음과 네 마음이 교집합을 이루는 것.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우리’가 되는 게 아닐까.

작품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국민성은 화합보다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으로 변했다. 더불어 사는 것이 힘들어졌다. 작가는 독식하고 과식하는 이들을 향해 더하고 빼고 나누며 살라고 외친다. 관계 속에서 큰소리만 낸다면 미술품처럼 팔, 다리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예전의 나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었다. 책임진 일은 죽어도 다해야 하는 줄 알았다. 심지어는 호흡곤란이 오는데도 책임을 다하려다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다. 그 정도로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타인에게 미루기보다 내가 앞섰다. 미련하게 짐을 혼자 지다 보니 병이 났다. 사람들은 약삭빠르지 못한 나를 보고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울려서 좋았던 기억보다 힘들었던 적이 많아서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상처를 받으면서 나를 가두고 살았으나 그 방법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부대끼며 살아도 힘든 세상인데 아프기 싫어서 피한 것이 깊은 외로움이 되었다. 이젠 사람들과 어울려 살려고 노력한다. 내가 마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타인도 나를 받아들일 수가 없지 않은가. 서로 개성을 존중하고 조금만 양보하면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이 그리 어려울 일은 아닐 성싶다. 외로움이 나를 키우고 있다.

‘우리’란 말은 어떠한 힘으로도 쉽게 갈라놓을 수 없을 것 같은 결속력이 느껴진다. 참 따뜻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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