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 조경희 

 

 

나보다 으레 늦게, 통행금지 시간 임박해서 들어오는 H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진달래를 한아름 안고 들어왔다. 늘 꽃타령을 하던 나였지만 진달래꽃을 힐끗 쳐다보고는 졸려서 눈을 감아 버렸다. 임종(臨終)하는 자리에 보고 싶은 사람이 와도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성화를 하던 진달래꽃을 보고도 잠을 깨지 못하였다. 잠은 들었으나 밤새 진달래 꿈을 꾸었다. 진달래가 밤하늘에 총총한 별처럼 만발하게 피어 있는 꿈이었다. 밤새도록 진달래 꽃잎에 파묻혀서 놀던 꿈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H가 한아름 안고 들어온 진달래를 생각하고 그 꽃을 가져오라 하였다. 아이가 진달래가 담긴 양동이째 들고 들어왔다. 진달래는 양동이 그 큰 그릇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진달래를 산에 가서 꺾어도 보고, 가게에서 사 보기도 했지만 양동이에 손가락 하나 안들어갈만큼 큰 다발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진달래는 내 방에 가득하였다. 방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진달래를 한송이라고 부르면 어울리지가 않는다. 한 가지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진달래 한 가지는 애처롭고 볼품도 없다. 그저 산이나 동산에 무성한 나무들처럼 만발해야 아름다움을 더하는 꽃이다. 진달래를 볼 때는 꼭 화장기 없는 소녀들의 떼가 몰려올 때 느낄 수 있는 순진하고 싱싱한 맛을 느끼게 한다. 아예 한 떨기의 꽃으로 행세하는 꽃은 아니다. 한송이보다도 무더기에 꽃맛이 더하다. 얼마 전에 독감에 몸살이 더쳐서 사흘인가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때 나는 H보고 들어오다가 꽃 한송이만 사 가지고 오기를 간청하였다. H는 붉은 카네이션 두 송이와 아스파라거스 두 가지를 사 가지고 들어왔다. 병도 꽃을 보고 물러났는지 나는 곧 기운을 차리고 일어났다.  

 

이렇게 꽃 한송이를 사가지고 오라고 해야만 사 들고 들어오는 답답한 사람이 진달래를 한 묶음도 아닌 한아름 안고 들어왔다는 것으로 열 가지를 잘못한 사람인데도 진달래 바람에 사람도 좋아 보였다. 나는 빈 병마다 물을 담고 진달래를 꽂기 시작하였다. 책상머리나 그밖의 빈자리에도 놓았다.

 

꽂다가 남은 것을 한아름 안고 신문사에 나가서 한 서너 방에 나누어 꽂아 놓았다. 가장 화려한 듯한 곳이면서 가장 무미건조한 신문사 안에 꽃은 화젯거리였다. 진달래 바람에 나까지 덩달아 화제에 올라서 꽃잔치 웃음잔치가 번져 갔다.  

 

이래서 나는 한동안 집에 있으나 신문사에 나오나 진달래와 지내게 되었다. 진달래가 꽃병에 꽂혀 있는 동안은 마음이 안정된다. 꽃병에 꽃이 떨어지고 병 주둥이가 입만 딱 벌리고 있는 모양이란 보기에도 흉하고 마음까지 허전해져서 견딜 수가 없어진다. 늘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진 것처럼 마음이 허전해진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꽃병에 꽃이 꽂혀 있는 것처럼 존재하기를 바라고 있다. 내 마음의 안식이 있기를 바라서일 게다.

 

꽃은 아름답고 희망을 준다. 나는 끝내 희망을 놓치기 싫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절망 속에서 산다는 것보다 얼마나 쉬운 일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희망 속에서는 10년을 살 수 있어도 절망 속에서는 하루도 살기 힘들다.

   

봄이 되면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아무 이유 없이 즐겁다. 어렸을 때도 나는 봄이 되면 좋기만 했다. 할머니에게 꾸중을 들으면서도 밭으로 산으로 뛰어다녔다. 산과 산에 꽃이라곤 할아버지 수염같이 묵은 잔디밭에 할미꽃과 진달래뿐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봄의 산은 꽃구름이 뭉쳐 있는 듯도 하고 영랑(永郞)의 시구(詩句)처럼 산허리에 어린 보랏빛 안개마다 꽃연기가 서려 있었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 오듯 꽃불이 타는 듯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산빛은 아침과 낮, 저녁으로 달라져 갔다.  

 

진달래가 만발한 산아래 마을에서 나는 컸다. 쳐다볼 것이란 산밖에 없는 마을에서 꽃 없는 겨울산은 지루하기만 했다. 어서 봄이 오고 진달래가 피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동산에는 다른 나라와는 아주 다르게 소나무가 많고 진달래가 흔하다.

   

진달래는 나무보다도 뿌리가 크다. 뿌리는 문어발처럼 땅을 움켜쥐고 힘차게 뻗어 있다. 뿌리가 세고 깊어서 쉽게 캐낼 수 없는 나무다. 장미뿌리로 만든 남자들의 파이프가 좋다는 것처럼 진달래 나무 뿌리도 무엇인가 특산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애들 때는 진달래 꽃잎을 곧잘 따먹는다. 달착지근해서 꽃떡을 부치는 데 무늬용으로도 쓴다. 진달래는 그만큼 친근감을 주는 꽃이다.  

 

꽃 냄새는 풀 냄새같이 향긋하다. 그것도 산에서 갓 꺾어온 진달래에서는 향긋한 냄새와 야들야들한 꽃잎의 윤기를 볼 수 있지만 가게에서 사 온 진달래에서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종이꽃 그것이다. 냄새도, 색깔도, 빛도 없다. 겨울부터 산에서 베어다가 구공탄 불에 억지로 피게 한 꽃이라니 가엾기도 하다. 희뿌연 종이로 만든 꽃봉오리는 억지로 지게 하는 인생들처럼 생명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간혹 꽃집에 들렀다가 새끼줄에 묶여 있는 진달래 뭉치를 보고 환멸을 느끼곤 하였다. 헤어진 옛날 애인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거리감 같은 것이 그러리라. 내가 어렸을 때 본 연분홍빛 진달래는 아니었다.  

 

꽃잎이 고깔처럼 달려 있고 고깔이 아물어지고 시들면 꽃술만이 늘어지는 진달래는 아니었다. 진달래는 꽃이 떨어진 뒤에 파란 잎사귀가 터져 나온다. 다른 꽃나무들은 격을 차린다는 듯이 잎사귀가 돋고 꽃망울이 지지만 진달래는 꽃망울이 먼저 생긴다. 그래서 꽃이 진 뒤에는 잎이 한창이다. 잎이 무성해져 꽃 못지 않게 푸른빛을 즐길 수 있다.  

 

내가 진달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봄이면 찬바람에 제일 먼저 앞장서서 핀다. 어느 누가 심지도 가꾸지도 않지만 제풀에 자라서 봄이면 산이 불타듯 피는 소박(素朴)하고, 정열이 돌고, 용기가 있는 애처로운 꽃, 이 진달래꽃이 없는 금수강산은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리랑'이 국가(國歌)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즐겨 부르는 노래인 것처럼 진달래는 한국을 상징하고도 남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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