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 류영택

 

 

 

동네 어귀를 지날 무렵, 나무 그늘에 쉬고 있던 동네 형들과 마주쳤다.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나루터에 엄마 마중 간다고 하자. 형들은 "네 엄마, 너와 두 동생을 버리고 도망갔다."고했다. 아무리 어린 나이지만 그 말을 믿을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웃기는 소리 하지마라고 하자. “너는 나이가 어려서 몰라 그러는데,  너하고 동생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 이번에는 옆에 앉았던 아저씨가 거들고 나섰다.

그 동안 한두 번 들었던 소리도 아니고, 막내 태어나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며 대들었다.

자신들의 말이 씨가 먹히지 않자. 이번에는 옆에 앉은 또 다른 형이 나섰다. “내가 이런 말 안 할라 했는데하며 뜸을 들이더니 옆을 살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싶어 잔뜩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 형은 누가 들으면 안 된다는 듯 나를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이 알면 큰일 난다고 했다. “막내는 네 엄마가 낳았고, 너하고 바로 밑에 동생은 네 할머니가 절에서 데리고 왔다. 울고 있는 게 하도 불쌍해서 꿈에도 생각지 않은 일이라 그 말에 놀랐지만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 형은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며 이번에는 우리 가족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다. “생각해봐라 유독 네 머리에만 부스럼 나는 것도 그렇고, 아무 하고도 닮지 않은 것만 봐도 모르겠냐며 의혹을 부풀렸다.

내가 조금 수긍하는 눈치를 보이자. 쇄기를 박듯 식구들한테는 자신이 가르쳐 줬다고 말 하면 안 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참말이냐고 몇 번을 물었지만 대답은 한결 같았다. 형은 나만 보면 불쌍해서 눈물이 다 난다며 얼굴을 다리사이에 묻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게 아닌데! 몇 번을 중얼거리다 복받쳐 오는 서러움에 그만 대성통곡을 했다. 내가 울자 영문도 모르는 두 동생도 따라 울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누나와 형들, 평소 농담처럼 했던 말들이 그냥 했던 말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부엌에서 부리나케 뛰어나와 형과 누나를 꾸짖던 어머니의 그 모습도 사실이 들통 날까봐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자 당황한 형들은 도망을 가고, 너무 울어 지쳐버린 나는 나루터 쪽을 바라보며 어께를 들썩였다.

육성회비를 내려고 돈 봉투를 찾았다. 국어, 산수, 책을 모두 꺼내 책장을 넘겼지만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가져오지 않았나? 어제 저녁 분명 돈을 받아 봉투에 넣었었는데 그 다음이 기억에 없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창피스럽게 앞에 불러나가 언제까지 가져오겠다고 머리를 조아려야 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해져 왔다.

선생님께서 육성회비를 안 가져 온 아이들을 호명했다. 아이들은 마룻바닥에 눈을 꽂고 다리를 질질 끌며 앞으로 나갔다.

내 이름이 불러질 쯤, 복도 창가 쪽에 앉은 친구가 밖에 누가 왔다는 말을 했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한쪽으로 쏠렸다. 하얀 도화지를 발라 놓은 유리 틈새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교실 문이 열리자 어머니가 서 계셨다. 그 모습을 보니 반갑고 부끄럽고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얼굴을 붉히며 책상만 바라보고 있는 내게 친구들은 ", 네 엄마 진짜 잘 생겼다!"며 말을 걸어왔다. 거기까지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와 나를 번갈아보던 친구들이 ", 네 엄마하고는 어째 하나도 안 닮았노" 속을 확 뒤집어 놓았다. 그것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내 마음을 어찌 친구들이 알까.

옛날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줄곧 우리엄마 아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엄마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았다. 혹시나 말썽을 피우면 귀찮다고 다시 절로 보내 버릴까봐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처럼 바로 밑에 동생이 투정을 부리거나 막내와 싸우면 얼른 말렸다. 형이 입던 옷과 책을 대물림해서 줘도 군소리 한번 않았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다 그랬었지만, 주면 주는 대로 있는 듯 없는 듯 말썽 한번 피우지 않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자, 거꾸로 진짜 친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러온 자식이라면 어딘가 모르게 수월한 부분이 있을 텐데, 맛있는 음식이나 과자가 있으면 내 몫으로 따로 챙겨 두었다내 놓는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설 때 가게 앞에 서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한쪽 팔을 빙빙 돌리며 뛰었다.

신작로를 걸으며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와 나한테 잘해주노?"

"그게 무슨 말이고?"

"진짜 내 엄마 아닌 거 다 안다. 밑에 동생하고 절에서 데리고 왔다는 것도."

깜짝 놀라 자리에 멈춰 선 어머니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했다.

"야가, 시방 무슨 소리 하노!"

"구장 집 머슴이 그랬다. 초등학교에도 안 넣어주고 꼴머슴 시킨다고"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어머니는 나를 왈칵 끌어안으셨다.

"그것도 모르고 엄마는 네가 패기가 없어서 어쩌나 걱정 했는데. 내가 진짜 네 엄마다. 어디 가서 기죽지 말고, 집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형처럼 고집도 피우고 그래라."

"그래도 되나?"

"되고말고."

나는 다짐을 받듯 "엄마 진짜 우리엄마 맞제?"

"그래, 진짜 엄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놓고 신작로를 달렸다. 윙윙 귓가에 바람소리가 나도록 뛰고 또 뛰었다.

"~, 넘어진다. 천천히 가거라." 어머니의 걱정스런 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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