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무늬 / 김미옥  

 

 

 

  기와가 웃는다. 입 꼬리는 둥글려진 광대뼈 아랫부분과 맞닿아 있고 눈꺼풀은 자연스러운 반달 모양새다. 얼굴무늬수막새는 입술 양끝이 위를 향하는 넉넉한 미소로 나에게 웃음 짓고 있다.천 년의 시간이 무색하리만치 그녀의 미소는 아름답다. 어느새 주름과 기미로 삶의 흔적을 담은 무표정한 내 얼굴과는 사뭇 다르다.

지천명을 바라보며 무미건조해진 일상의 고민이 깊어질 때 즈음, 신문에서 얼굴무늬수막새를 접하고 곧바로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았다. 10대 이후 다시 만난 그녀의 얼굴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67세기경 손으로 빚었다고 전해지는 여인의 얼굴에는 여전히 사람의 온기가 남아 감돈다. 위아래 입술은 또렷하게 뺨과 경계를 이루며 인중 아래로 도톰하게 자리 잡았다.

  마치 피부와 점막이 차올라 윤곽을 도드라지게 한 것 같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는 우리나라 전역에 웃음을 전파할 기세다. 금방이라도 내게 말을 건넬 것 같은 표정에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온 역사적 공감대가 묻어 있다. 그저 반달 모양의 눈매나 웃는 입 모양만으로 천 년의 미소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한옥을 감싸며 가족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표정이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지붕에는 암키와와 수키와가 나란히 포개져 있고, 기와의 끝은 원형으로 막는 수막새와 평면형으로 마감하는 암막새로 이뤄져 있다. 지붕의 처마마다 얼굴무늬수막새로 장식한 것은 분명 삶의 평온을 염원하고 싶었을 터이다. 세상 역경을 이기고 견디려면 더 크고 힘센 기운의 문양을 새겼을 것 같은데, 천년고도의 경주에서는 여인의 미소를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소리 없이 빙긋이 웃고만 있다. 긴 세월 지붕의 기왓골 끝자락을 마감하던 수막새의 임무에서 웃을 일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 여전히 미소 짓는 그녀의 마음이 궁금하다. 어쩌면 집 한 바퀴를 돌아가며 장식했을 미소로 가족의 행복을 지켰는지 모른다. 그녀의 얼굴무늬에 담긴 사연을 상상하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나는 열 살이 되기 전까지 한옥에서 살았다. 본채를 중심으로 마당 한가운데 우물을 낀 전통 가옥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언니, 오빠와 함께 지냈다. 오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비가 오면 기와 처마 끝에 맺히는 빗물을 바라보다가 맑은 날이면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매만지며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의 눈꺼풀은 아래로 쳐지고 짙은 주름으로 감싸여 좀처럼 표정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세월만큼 깊어진 주름이 할머니의 얼굴에 무늬를 그려 감정을 덮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마당을 뛰어다니며 웃을 때면 가지런한 민무늬 기와 아래에 앉은 할머니의 미소는 빛났다. 할머니는 종일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늘 같은 자리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안방 앞마루 중간에서 기왓골 끝의 그림자가 비치는 곳이 할머니 자리였다. 이른 아침 일을 나갈 때나 저녁 귀가시간이 되면 그곳에서 말없이 아버지를 맞이했다.

  아버지가 얼큰하게 한잔을 걸치고 퇴근하는 날이면 그의 언성은 지붕을 뚫을 기세로 쩌렁쩌렁 집안에 울려 퍼졌다. 어떤 날은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다는 유행가를 목청껏 불렀고, 또 어떤 날은 세상에 대한 불만을 거친 말투로 토해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민무늬 기와를 올려다보며 절절한 심정을 기와에 새겼으리라. 밤하늘 아래아버지의 성난 얼굴무늬를 풀어줄 그 어떤 방법도 없다고 느낄 때면 살며시 자리를 피했다.

  할머니가 비켜간 자리에 엄마는 아버지와 같은 얼굴무늬가 되어 부딪쳤다. 나는 집안 전체가 흡사 기와가 깨져서 소란하게 흩어지는 것과 같은 모습을 바라보며 밤새 흐느꼈다. 울음 속에 지쳐 잠이 들어 아침을 맞으면 모든 것은 평화로웠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와 끝자락은 아침 이슬에 맑게 빛나기까지 했다. 간밤에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기와의 얼굴무늬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수많은 밤을 함께 보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버지는 엎드려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세대를 이어갔다.

  그 사이, 밭을 갈아 현대식 양옥으로 집을 지어 동네에서 제일 높은 이층집으로 이사를 했다. 거처를 옮긴 후,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하고 오빠가 하던 일이 어려워지자 기와집을 팔았다. 팔린 기와집의 기와가 깨지고 떨어져 나가는 것에 마음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식 키우느라 모든 것을 내던진 아버지의 삶에 호화로움은 없었다.

  그러던 아버지는 막내인 내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속세의 인연을 놓았다. 세상에 온 것이 다음 세대를 이어주기 위한 것처럼 그렇게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던 날, 오빠는 차가워진 아버지 육신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핏기 없는 얼굴을 비비고 또 비비며 지나온 시간을 울음으로 쏟아냈다. 사라진 민무늬 기와에 추억만 남기고 세월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또 다음 세대로 넘어왔다.

  햇살 좋은 날,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소리 없는 웃음이 빛난다. 환한 미소는 박물관을 찾는 모든 이에게 온기를 전한다. 얼굴무늬수막새의 표정을 바라보면 할머니와 엄마의 주름진 얼굴이 겹치는가 싶다가, 우뚝 솟은 코끝의 당당함을 보면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생각의 깊이에 따라 오빠와 언니의 모습이 스치기도 한다.

  그녀의 얼굴무늬에 담긴 여운을 따라 과거를 지나 현재의 나와 마주하면, 마치 순회하는 삶을 한 바퀴 돌아 지금 이 자리에 선 기분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봤을까. 그녀의 미소 곁에 모진 풍파가 스쳐 지나간 흔적을 발견한다. 천 년을 거슬러 온 험난한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턱과 이마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이 눈에 띈다. 어쩌면 가족이 지나온 시간 동안 느꼈던 아픔이 그녀의 흉터에 고스란히 담긴 듯하다. 온전하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서 이토록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는 건 역사를 거스를 수 없는 위대한 미소의 힘이 아닐까.

  세상을 향해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빛난다. 얼굴무늬수막새는 나쁜 기운을 멀리하고 행운을 불러오는 천년의 미소라고 했던가. 어느새 그녀의 미소를 따라 내가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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