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의 자서전 / 최장순

 

 

 

밥 한술이 건너온다. 한번은 정이 없다고 또 한술, 재빠른 눈치에 형식적인 거절을 할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덤을 즐긴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남는 것을 주는 것은 덤이 아니다. 자신의 것을 에누리해 상대에게 더해주는 기꺼움이 들어있는 덤은, 성과에 따라 지급하는 보너스와는 다르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덤을 받았는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 생각해보면, 내가 누린 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랜 기억을 뒤질 때면 뭉클하게 다가오는 고향. 안정감과 순박함을 덤으로 얹어준 강릉은 백두대간의 줄기인 대관령이 감싸 안고 동해바다가 아우르고 있다. 젖비린내와 그리움을 동시에 물려주던 곳. 내 성정의 8할을 이루어준 매혹의 땅, 강인함을 가르치고 너른 마음을 키워준 그곳에서 무른 뼈는 단단해졌다.

눈을 뜨면 쪽창은 제일 먼저 어둠을 걷어낸 말간 산등성이를 배달해주었다. 바다로 나아갈 만큼 자라지 않았던 그때, '하루'는 산에서 태어나고 산으로 지는 줄 알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먼 곳이 산 너머에 있다고 믿었다. 이때쯤이면 밥보다 술을 더 좋아한 당숙이 방앗간 참새처럼 부엌으로 찾아들곤 했다. 할머니는 의례처럼 소주 한 대접을 따라주었다. 당숙의 들뜬 기분을 맞추는 정미소의 원동기는 종일 지치지도 않고 통통거렸다.

시장으로 물건 팔러 나가는 발걸음과 등굣길의 수런거림으로 마을은 아침을 열었다. 남녀 한반이었던 교실은 경쟁보다는 지혜를 키우던 곳, 누가 일 등을 했는지는 관심이 멀었다. 모자란 일손을 돕기 위해 아이들은 저수지 제방소에 소를 풀어놓곤 했다. 누구는 꼴을 베고 누구는 하모니카를 불고 누구는 책을 읽었다. 해질녘, 풀내에 취한 소를 몰아 집으로 들어가면 시장기를 녹여줄 따뜻한 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흐릿한 호롱불이 지어놓은 내 그림자가 길게 자란 밤은 호젓했다. 요즘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거나 책을 읽은 청춘들의 낭만과는 달랐다. 도란도란들리는 가족들의 음성과 풀벌레 소리를 동무삼은 책읽기며 숙제는 집중이 잘 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린 시절은 흙을 만지며 맘껏 뛰놀 수 있는 시골이 좋다는 말에 나는 적극 찬성한다. 자연과 함께한 체험이 인성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궁핍함이 부끄러움이 되지 않던 시절, 아이들은 잘 놀고 잘 어울리고 잘 자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대관령은 남성적이다. 동해도 그렇다. 그 기질을 이어받아서일까. 강릉사람들은 뚝뚝하다. 마치 함경도의 반골기질과 경상도의 뚝심이 비벼진 듯한, 직선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말투만 그럴 뿐, 심성은 부드럽고 온화하다. 그 부드러움을 일러준 것은 경포호수다. 경포대에 오르면 누구나 시인이 되어 하늘의 달과 바다의 달과 호수의 달과 술잔의 달, 그리고 임의 눈동자에 뜬 달을 노래한다. 산림과 바다가 상부상조하여 삶을 이어온 터전인 강릉은 초당의 순두부와 포구의 수산물이 산촌으로 올라오고, 곡식과 나물과 뗄감이 어촌으로 내려갔다. 바다의 안녕이 육지의 안녕을, 육지의 평온이 바다의 평온을 주었다. 손수 몸으로 읽어낸 고향은 때 묻지 않은 향수를 덤으로 남겨주었다.

"군 생활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인생의 디딤돌로 생각하세요."

개그맨 출신인 어느 일병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2년의 군 생활은 손해 보는 시간이 아닌 자신을 단련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30년 동안 군인으로 살았다. 두 해도 지겹다는데, 그 시간이 혹여 답답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군인으로서 자부심은 대단했다. 물론 시행착오와 실수도 있었따. 그러나 그것에서 얻은 깨달음이나 뉘우침도 이제와 보니 모두 덤이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6.25 전쟁의 포성을 들었던 나는 태생적으로 군인이 숙명이었다. 그 길이 만만치는 않았다. 자랑스럽고 뿌듯한 기억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대원들과 부둥켜안고 흘렸던 눈물은 의기투합이라는 덤으로 돌아왔다. 전우애는 어려움에 이를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부하들을 통솔하는 지도력, 상사를 모시며 배운 포용력, 긴박한 상황에 대처하는 임기응변, 상하복종만이 능사가 아닌 합리적인 사고의 전환 같은 것들, 청년기는 물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과거를 되살리되 종속되지 아니하고 현재에 충실하되 정체되지 않는 합리성을 말할 때마다 심장은 뜨거워진다.

지금 나는 총 대신 펜을 들었다. '우리'라는 집단성에서 ''라는 개별성으로 돌아온 시간, 문인의 이름값에는 어림없지만, 글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절실함이 장년의 나를 버티게 한다. 직선으로만 달려가던 걸음이 간경화라는 장애물과 만나면서 나침반을 상실한 배처럼 뿌리 채 흔들렸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대적 사실 앞에 절망했던 시간들. 그러나 포기한다는 것은 비겁하다는 의미였다. 고향이 그렇게 가르쳤고 오랜 군 생활이 용납하지 않았다.

가족의 사랑을 이식해 다시 살아난 지금, 연장된 생의 시간이 내겐 특별하다. 계량할 수 없는 눈물겨운 덤, 글쓰기는 생명을 잉태하듯 내가 만난 경험들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내가 쓴 글이라 해서 온전히 내게서 나온 것은 아니다. 창작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하는 것. 체험으로 얻어진 것들과 지적 호기심과 통찰로 얻어진 것을 통해서 나를 세상에 쏟아놓는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쌀 한 톨만큼의 위로가 된다면, 아니,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동안 누린 덤은 언제나 적정치를 넘는 것이었다. 그것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뜻하지 않게 만나고 입고 즐겼다. 당연한 듯 잊고 지난 것들이 기껍게 다가오는 것은 나이듦이 전해주는 깨달음. 이제라도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 겸손함과 너그러움은 묵은 시간이 주는 덤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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