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 조지훈

 

소년은 남달리 몸이 약했습니다. 일 년 열두 달 치고 학교에 다니는 날보다 문 닫고 누워 앓는 날이 많았고, 머리가 좀 밝은 날이라야 창 열고 앉아 먼 산빛을 보고 가까운 물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다 앞뜰이나 뒷동산에 나오는 때는, 그 푸른 하늘과 솔바람 소리며 흰 구름과 새 노래가 모두 꿈나라에 온 것만 같았습니다. 대추나무가 반짝이는 잎새를 달 무렵에서 꽃이 피고 파란 열매가 붉게 익어가는 서리가을까지는 풀각시 잘 만드는 순이와 놀지만, 낙엽이 창살을 휘몰아치고 눈이 내려 쌓이는 겨울 한철은 노상 머리를 짚어주시는 어머니 무릎을 베고 잠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무르익어가는 봄날이었습니다. 소년은 나물 캐러 가는 순이를 따라 난생 처음으로 깊은 산속에 왔습니다. 자꾸 고요해지기만 하는 골짜기로, 이따금 들리는 나무 찍는 소릴 들으며, 소년은 순이를 따라갑니다. 풀섶에서 놀라 날아가는 장끼의 찬란한 깃털이 햇살에 눈부시게 펼쳐지는 것을 보고 나뭇가지에 앉아 우는 오만 산새 소리, 그중에도 비둘기의 구슬픈 듯하면서 정답고 부드러운 울음을 듣고 소년은 무섭기만 하던 세상이 이상하게도 아름답게 보여져서, 가없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새 한 마리와 함께 산다면 이제라도 정성스런 어머니와 못 보면 그리운 순이가 없어도 기쁘게 살 수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며칠 뒤에 혼자서 나물 뜯으러 갔던 순이가 산비둘기 둥우리를 얻어 그 속에서 털이 엉성한 산비둘기 병아리 두 마리를 잡아가지고 와서 소년에게 주면서 길러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무척 기뻤습니다. 종이 상자로 어린 비둘기의 집을 만들어 방 윗목에 둔 다음 콩을 물에 담갔다가 퉁퉁 불면 손톱으로 잘게 뜯어서 주둥이 속에 넣어주기도 하고, 작은 그릇에 물을 담아두고 때때로 먹이기도 하였습니다. 날마다 털빛에 기름이 돌기 시작하는 비둘기를 기르며 소년은 다른 때 같으면 또 누워서 앓을 때가 되었건만 얼굴에 붉은 웃음을 피고 있는 것이 모두들 이상스러웠습니다. 비둘기는 이제 마른 콩을 그냥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자, 마당에 내려가 모래를 주워 먹고 때로는 날개를 펼치고 고운 발이 땅이 닿을 듯 말 듯 파닥거리며 나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해 나물죽으로 목숨을 이어가느라고 얼굴이 누렇게 부어가는 줄도 소년은 까맣게 모르고 비둘기만 보면서 살았습니다. 잠이 들 때면 두 마리의 비둘기가 주둥이를 마주 대고 나직이 내는 구구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손이를 생각하며…….

어느 늦은 봄날이었습니다. 소년도 순이를 방 속에서 바깥으로 나오지 않은 지 오래더니, 순이 부모는 어린 순이를 이웃 마을 농사꾼집에 민며느리로 주고, 서간도로 이삿짐을 싸가지고 떠나갔다는 것을 순이네 집에 울음소리가 나던 그 이튿날 아침에야 소년은 비로소 알았던 것입니다. 비둘기만 있으면 즐겁게 살 것 같던 소년의 눈에 영문도 모를 눈물이 맺히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소년은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둘기를 기르며 비둘기처럼 귀여워져가는 소년을 보고 조금 마음을 놓으셨던지, 어머니는 늘그막에 늘 몸이 편치 않으시다는 외할머니를 뵈오려 친정에 다녀오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산 오솔길을 어머니 배웅을 가며 소년은 여러 날을 어머니와 떨어져 있을 일도 마음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보다는 집에 두고 온 비둘기가 혹시 고양이에게 잡아먹히지나 않나 하고 걱정되었습니다. 사낭당 돌더미 앞에 왔을 때, 어머니는 좀 쉬자고 하면서 길 옆 바위에 앉으시더니, 백설기를 내어 놓고 잡수시며, 어머니 없는 동안 몸조심하고 잘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백설기도 먹지 않고 길바닥의 조약돌을 발로 차며 말이 없었습니다. 자꾸 돌아보시면서 멀어가는 어머니를 멍하니 한참 서서 바라보던 소년은,

어머니 잘 갔다 오세요.”

소리를 입안으로 삼키며 불현듯 집으로 달음질쳐오는 것이었습니다. 눈에는 역시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집으로 달려온 소년이 헐떡거리며 방문을 열자마자 두 마리 비둘기는 반가워하고 푸드득 날아와 소년의 어깨에, 손등에 내려앉았습니다. 소년은 넋을 잃고 비둘기 등을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웬일입니까? 손등에 앉았던 비둘기가 땅에 뚝 하고 떨어지더니 푸덕푸덕 날개를 떨며 목을 비틀고 하더니, 그만 목을 날개 밑에 처박고는 뻣뻣해지지 않겠습니까? 소년이 급히 비둘기를 안았을 때 비둘기는 벌써 눈꺼풀을 차갑고 싸느랗게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부엌으로 뛰어가서 물을 퍼가지고 와서는 죽은 비둘기의 입을 적시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만 남은 비둘기가 그 많은 물을 쉬지 않고 다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눈물을 쏟으며 죽은 비둘기 옆에 쓰러져 우는 소년을 이웃집 할머니와 아이들은 도리어 놀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이 겨우 눈물을 거두고 났을 때는 저녁놀이 붉게 물들 무렵이었습니다. 운동화를 넣었던 마분지통에다 보드라운 종이로 비둘기를 싸서 넣은 다음, 호미를 들고 뒷동산 대추나무 밑으로 갔습니다. 땅을 파는 호미 끝에 눈물이 자꾸 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소년이 비둘기를 그 나무 아래에 묻고 돌아온 밤, 자지 못하고 호롱불 아래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비둘기가 걸어오는 발짝 소리가 들렸습니다. 죽은 비둘기가 창 밖에 와서 구구구 우는 듯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발짝 소리는 죽은 비둘기의 발짝 소리가 아니라, 방 위옷 장 속에 넣어둔 산비둘기였습니다. 목을 길게 늘이고 방 네 수석을 기웃거리며 자박자박 걸어 다니는 것을 조심스레 잡아 장 속에 넣어두고 한참 있으면 또 나와서는 그렇게 찾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밤새도록 비둘기도 소년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날이 새고 아침 햇살이 눈부신 툇마루에 비둘기를 손에 앉히고 쓰다듬으며 콩을 한 개 두 개 주고 있었습니다.

콩을 다 먹은 비둘기는 마당에 내려가 모래를 먹고 이내 소년의 손으로 돌아왔습니다. 고개를 요리조리 갸웃거리다가 포르르 날아서 뜰 앞 대추나무 가지에 앉아 하늘을 보더니 다시 소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 다시 날개를 치며 소년의 손을 떠난 비둘기는 이번에는 멀리 소년이 바라보는 남쪽 하늘로 산을 넘어가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그 비둘기가 죽은 비둘기를 찾아간 것만 같고, 또 언제나 두 마리가 함께 소년을 다시 찾아올 갓만 같아 잘 때도 비둘기장을 툇마루에 내놓고 아침이면 나와서 비둘기장을 들여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외가에 갔던 어머니는 벌써 오셨건만, 하루 가도 이틀 가도 닷새 열흘이 지나도 기다리는 비둘기는 영영 소식이 없었습니다.

오래 앓지 않았던 소년은 또 시름시름 앓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뒷동산 대추나무 밑 비둘기 부덤 위에는 벌써 민들레나 오랑캐꽃 같은 풀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던 보릿가을은 누렇게 무르익어 왔는데, 아침저녁 샘가에 물 길러 나오던 각시 순이는 서간도로 떠난 뒤 소식 없는 어머니를 부르며 애처롭게 죽어갔습니다. 나물 캐러 다니던 들녘, 공동묘지에 비둘기 무덤 같은 순이의 작은 무덤이 생긴 것을 소년은 까맣게 모르고 어머니 무릎에 안겨 있었습니다. 뻐꾸기 울음만이 애잔하게 들려왔습니다.

 

 

조지훈(1920-1968) 수필집 창에 기대어’ ‘시와 인생 시집 풀잎단장’ ‘역사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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