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씨지탄(魚氏之嘆) / 어효선

 

 

 

내가 성씨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 성이 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학 시절에 유학자 소석 선생님의 서재엘 드나들 때 받은 감화가 나로 하여금 현대 청년답지 않은 노청년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결혼할 적에도 상대편 성의 본관을 캐묻고, 반상(班常)까지 따져서 주위 사람들의 핀잔을 무수히 받았다.

내 성이 희성 중에도 고기 어() 자라, 옛날 보통 학교 적부터 '사까니', '물고기'니 하는 별명을 들어왔다. 광복 후 동창회 명부를 뒤적이다가 문득 성씨를 수집해 볼 생각이 들어, 직원록 같은 것을 유심히 보고 일일이 가나다순으로 기록을 했었다. 막상 모아 보니 이, , , , , 박의 6성이 순 조선 성이라는데, 이 밖에는 웬게 그리 많은지 한 200종 가깝게 되었다.

어느 날 고서점엘 들렀다가 조선성씨고라는 4.6배판의 두툼한 책을 발견하여, 얼른 뽑아 훑어보니 그야말로 만성이라, 글자마다 성인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일자 일씨에 뼈 골자 골씨까지 있음에야! 그런데 이씨나. 김씨는 흔하다 하여 귀히 여기지 않을 양이면, 이런 희성은 적어도 천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거늘, 사공(司空)씨는 '뱃사공', ()씨는 '짱꼴래'란 별명을 들으니 딱한 노릇이다.

예전에 상인은 성도 없었다는데, 요즘 다방이나 주석에서 자기 명함을 마치 광고지 돌리듯 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으레 명함을 교환하고 통성명을 하는 게 첫인사요 예의임에 틀림없으나, 나는 고기 어자인 내 성을 대기가 싫어 영 친구를 사귀려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일이다. 논어에 "익자삼우 손자삼우(益者三友 損者三友)"라고 했지만 사람은 사람을 많이 아는 게 큰 재산임을 여러모로 느끼곤 한다. 1.4 후퇴 전까지는 입에도 못 대던 술을 좋아 마시게 되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고 대견하여 나도 남처럼 통성명을 하게 되었으니 피난의 소득이요, 전쟁이 준 선물이다.

"난 이 아무게입니다."

", 어효선이올시다."

"앞으로 많이"

"네 저 역시."

"그런데 참 희성이시군요?"

", 좀 드문 성입니다."

여기 까지 좋은데, 여러 차례 만나고 혹 술잔이라도 나누게 되면, 으레 '물고기' '금붕어'니 하고 농담을 꺼낸다. 그나 그 뿐인가, 술안주로 생선이 상에 오르고 보면, 몇 촌간이나 되느냐고 촌수를 따지려들고 나중에는 '동족간의 상잔비극이 벌어졌노라'고들 가가대소를 한다. 여기까지는 또 괜찮다. 안주가 떨어지고 취흥이 겨워지면, 그냥 뜯어먹자고 들이 덤비는 것을 어찌하랴, 나는 할 수 없이 옷을 벗는 체하고 도마와 칼을 가져오라고 응수한다. 좌중은 다시 폭소를 터뜨리고 나도 따라 웃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술자리에서는 내 성이 화제가 되니 영광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리 숙친하지 않은 분이 내게 편지를 보내오는 날이면 으레 노씨로 변성을 해 놓는 데는 딱 질색이다. 만나면 분명히 어씨라고 부르면서 편지엔 왜 노씨라고 쓰는지 도무지 그 심사를 모르겠다. 나는 편지 봉투를 든 채 고소를 금치 못하다가 나중엔 은근히 불쾌하기까지 하여진다. 그러나 한문투에 어로지오(魚魯之誤)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어자를 노자로 잘못 쓰는 일은 예사인 성 싶어 자위하고 만다. 편지 얘기가 났으니 말이지 막역한 사이에는 어자를 쓰는 대신 숫제 물고기 한 마리를 그려 놓으니, 사람을 이렇게 놀릴 수가 있단 말인가? 참 말 못할 노릇이다.

언젠가 어느 주석에서 유머를 잘하는 Y선생님이 별안간 깔깔 웃으시며

"어유! 어유!"하고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왜 그러시냐고 재우쳐 물으니 "네 옆에 유 선생이 계시지 않느냐"고 하여 워낙 웃기 잘하는 유 선생님도 나도 한바탕 웃었다. 이렇게 어자는 뜻도 그러려니와 음도 말썽이라 '어물어물한다'느니 '어처구니없다'느니 '어수선하다'느니 하여 종시 웃음거리가 된다.

Y 선생님은 희성이 빚어낸 난센스 하나를 소개하셨다. 어느 주석에 5,6 인 동지가 빙 둘러 앉았는데 좌석 배치가 공교롭게 되어 조(), (), (), (), ()씨의 차례로 자리를 잡은지라, 좌중 1인이 이들을 둘러보며, "조지로구나(曺池魯具羅)"하여 웃겼다는 이야기다. 우리도 허리를 못 펴고 웃다가 나는 사레까지 들려서 쩔쩔맸다.

뜻과 음이 말썽인 내 성은 또 글자까지 고약하다. 광복 직후 모 신문에다 이름을 한글로 써서 투고를 했더니, 덜컥 "이효선"이로 발표가 되었다. 이러고 보니 나는 노씨로, 또 이씨로, 두 번 변성을 한 셈이 아닌가. 한참 들여다보다가 홧김에 점하나를 모조리 떼고 보니 '이호신'이 되었다. 마침 좋은 펜네임을 얻었다고 그냥 쓰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글 간소화를 미리 단행한 셈이니 이것도 선견지명이랄까? 어쨌든 다행한 일이다. Y 선생님은 내 서재를 '어항'이라고 명명하셨다. 딴은 물고기가 기거하는 방이니 그럴듯한 이름이기도 하여 즐겨 당호를 쓰고 있다.

그러나 속담에 세상모르고 사는 이를 '우물 안 개구리'라고 이르듯이, 나는 제 자신이 어항 속 물고기처럼 생각되는 때가 많다. 자칭 동요를 쓴단 지가 여러 해포 되었어도, 어린이들이 즐겨 부를 노래 한 편 못 써낸 채 올해도 저물어 가니, 어찌 희성을 탄하고만 있을까 보냐!

돌아보면, 반생을 중일 전쟁이니, 태평양 전쟁이니, 동란이니, 후퇴니 하는 실로 어수선한 세상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어리벙벙하게 지내면서, 어물어물 나이만 먹었으니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어허! 이 어찌 어리석은 자, 갑오년을 보내는 어씨 나만의 탄식일까 한다.

 

 

어효선1925-2004 서울 출생 아동문학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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