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수술 / 박목월


 

 

아내의 수술날이다. 일찍 어린것들을 깨워 아침을 먹이기로 했다. 어린것들도 몹시 긴장한 얼굴이다. 어린것들 아침이나 먹여 놓고 나는 병원에 갈 예정이었다.

엄마, 오늘 수술하지?”

국민학교 2학년 꼬마와 중·고등학교 큰것들도 이상스럽게 행동이 정숙하고 옆방에 어머니가 누운 것처럼 말소리가 조용하다.

7시 벨이 울렸다. 병원에서 아내가 건 전화다. 고등학교 다니던 맏딸이 받았다.

동생들 잘 간수하라.” 는 부탁이다. 그리고는 남규, 문규, 신규 한 사람씩 전화 앞에 불러내어 그들 하나하나에 당부를 한다. 가슴이 선뜩하다. 수술하기 전에 자기로서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아이들의 음성을 들으려는 뜻이다.

당신예요? 곧 와요. 벌써 몽혼 주사를 놨어요. 여덟시 반에 수술실로 들어간대요.”

비장한 목소리가 전화통으로 새어나온다. 당황하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길에는 이른 아침을 짙은 안개, 찬 이슬비 같은 가을 특유의 안개가 온 천지를 싸고 있다. 이 어두컴컴한 세계에 자동차와 사람이 몽롱하게 합승 창 너머로 나타났다가는 안개 속에 사라진다. 가슴이 저리는 불안감과 고독감.

여덟시, 병원 도착했다. 아내는 자기 손으로 수술 받을 흰 가운을 갈아입고 마취제를 맞은 것이다. 흰 수건으로 싸묵은 얼굴이 너무나 여위어 있었다. 몽롱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내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눈에 고인 눈물…….

여보, 기도드립시다.”

나의 떨리는 음성에 아내는 의식이 드는 모양.

, 기도드려야지.”

침대에서 일어나 앙상한 손을 마주 잡고,

주여, 목월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고, 우리 어린것들 앞길을 축복하여 주소서. 아멘.”

아내의 기도다. 그리고 몸을 돌려,

여보, 아무 여한도 없습니다.”

내게 말했다.

이것이 의식이 까무러져가는 아내의 기도요, 그의 말이다. 끝내 자기의 병이나 생명보다 남편이나 자식을 생각하는 그의 크고 고된 인종의 부덕, 8 10. 아내는 수술실로 옮겨졌다. ‘어린것들 앞길 축복하여 달라는 그의 기도에 가슴이 막힐 것 같았다.

여덟시 반에 시작한 수술이 열한 시가 되어도, 오후 한 시가 되고 두 시가 되어도 소식이 없다. 이런 급한 처지에 이르러, 비로소 아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가슴에 온다. 그의 평생 살아온 인생의 결산일 것이다. 또한 남편으로서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 가만히 있을 수 없도록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든다.

실로 나는 말로만 발라온 인생이요, 남편이었던 것이다.

복도 이편에서 저편까지 아흔여덟 자국을 아흔 번도 넘게 내왕했다. 기별이 없다. 참다못하여 당직 간호원에게 부탁하여 수술실에 연락해 보도록 했다.

전화기를 들고, 수술실과 통화를 하는 간호원의 표정을 무섭게 살피고 있었다.

간호원이 나를 돌아보며,

허 박사님이 수술실 앞에서 뵙자고 합니다.”

고 전해주었다. 허 박사가 만나자? 나는 불길한 예감에 목덜미가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왜 만나잘까? 그것을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수술실 앞에 이르니, 허 박사가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아내의 목에서 잘라낸 갑상선- 자그마한 달걀 같은 두 개의 살덩이를 거즈에 싸들고 와서 펼쳐 보인다. 가슴이 설레며 수술 결과가 좋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허 박사가 안내하는 대로 회복실에 들어갔다. 산소 호흡기를 물고 있는 아내- 완전히 의식이라곤 한 가닥도 없다. 심장이 뛸 뿐, 그 늘어진 말라붙은 육체에 나는 뜨거운 것이 가슴에 치솟는 것을 참지 못했다.

오후 여섯 시가 거의 되어, 아내는 병실로 나왔다. 수술실 수레에 실려 오는, 의식이 몽롱한 그의 야윈 얼굴- 그것은 생활에 쪼들리고 자기를 다 바친 한 여인이 너무나 가슴 아픈 모습이었다.

여보.‘

내 소리를 알아들은 것일까? 희미하게 뜨는 저 눈, 엄숙한 눈이다. 나의 일생을 심판하는 신의 눈- 그런 두려움이 가슴에 왔다.

아홉 시경, 겨우 의식이 돌아오는 모양이다. 자기 부모를 찾는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 10여 년 된 자기 부모를 찾으며 통곡하였다.

열 시경, 집에서 전화. 어머니가 상경했다는 것을 알리며, 수술 결과를 딸이 묻는다. 그 옆에 이마를 마주 대고 어린것들이 둘러앉아 있다 한다.

아내의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밤을 밝혔다. 링거 주사의 노란 액체가 밤새 아내 혈관으로 흘러드는 그 정확한 간격- 나는 생명이 돌아오는 시간의 흐름을 지켜본 것이다. 아내는 아프다는 소리 한 마디 없이 깊은 몽혼의 세계에 잠들어 있었다. 한 시가 지나자, 병실의 불이 갑자기 휘황해졌다. 이내 소등.

가을철 든 후 처음 보는 우레와 번개, 번쩍이는 푸른 광망(光芒)이 병실을 비껴간다. 그리고 창이 덜덜거리는 우레, 번개, 우레, 창이 확 밝아지자, 푸른 광망이 번쩍하고 아내의 창백한 얼굴을 선명하게 그려내고는 이내 꺼진다. 동시에 으르릉 꽝, 우레.

네 시경에 멎었다.

죽음의 선 위에서 다시 삶으로 켜져오는 한 줄기 불빛- 볼에 핏기가 비친다. 진실로 허허로운 새벽의 적막. 깊은, 깊은 적막.

여섯 시.

아내는 눈을 떴다. 생기가 날아난 눈!

여보, 살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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