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본능 / 임덕기

 

 

 

골목길에서 안노인 한 분이 마주보며 걸어온다. 다리가 둥글게 휘어 걸음걸이가 뒤뚱거린다. 어려서부터 무릎이 붙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중년이나 노년에 무릎이나 척추가 부실해지면 다리가 벌어지곤 한다. 자식들을 힘들게 키우며 살아온 모습이 역력하다. 여리 여리하고 곱던 얼굴은 사라지고 주름이 자글거리고 고집 센 모습만 남아 있다. 연어가 알을 낳은 뒤에 아가미가 억센 형태로 변한 채 물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영상이 노인의 모습에 겹쳐진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개울에 찾아가서 알을 낳는 회귀하는 물고기이다. 중학교 때 살았던 강릉에서 남대천에 연어가 몰라온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수량이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그 당시에는 큰 관심거리가 되지 않았다. 요즘에는 연어 알을 인위적으로 모아 인공 부화시켜 그곳에 풀어놓는다. 연어의 회귀성을 이용한 대대적인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새끼 연어들은 어미가 낳아준 개울에서 일 년 정도 자라다가 제 어미가 했듯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깊은 바다를 향해 헤엄쳐 간다.

얼마 동안 바다에서 살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다시 자신이 태어난 개울을 향해 험난한 여정을 펼친다. 어릴 때 태어난 개울물 냄새를 기억하여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장애물인 폭포를 만나면 떨어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죽을힘을 다해 뛰어오른다. 기억 속에 저장된 물 냄새를 쫓아 헤엄쳐 간다. 마침내 어미가 자신을 낳아준 개울에서 알을 낳은 뒤, 지난한 고통으로 몸의 형태가 일그러진 채 일생을 마감한다. 연어의 삶은 회귀로 끝난다.

바다거북도 태어난 곳을 기억하고 찾아와서 알을 낳는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뱀장어도 자신이 태어난 개울에 찾아가 알을 낳는다. 철새들은 별자리와 머릿속에 든 자기장으로 떠나온 곳을 정확히 기억해 다시 찾아간다. 여우도 죽을 때는 머리를 제가 태어난 곳을 향해 죽는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오래전에 보아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알래스카에서 얼음집에 살던 에스키모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북극곰을 잡아서 살아가는데 곰 사냥이 잘되지 않아 가족들이 굶주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고려장처럼, 자손을 살리기 위해 노인은 우는 자식과 손자들에게 다시 돌아올 테니 울지 말라고 달래며, 곰의 먹이가 되려고 눈밭에 제 발로 걸어 나간다. 아들이 그 곰을 잡아 식구들이 먹으면 노인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으로, 찬바람 몰아치는 곳에 서서 곰을 기다린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노인의 슬픈 믿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곰에게 노인이 잡아먹히면 가족들이 그 곰을 사냥해서 먹고, 그러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영원히 산다는 회귀성을 노인은 신앙처럼 믿고 있었다. 강렬하게 마음을 흔든 마지막 장면이 지금도 또렷이 떠오른다.

인체에도 회귀성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허리가 아프거나 무릎이 아파도 별 치료 없이 저절로 멀쩡해지기도 한다. 건강이 부실해져도 인체는 건강할 때로 원상회복 시키려고 애쓴다. 약을 먹지 않아도 감기에는 얼큰한 콩나물 국밥을 먹고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있으면 저절로 낫기도 하지 않는가. 건강했을 때로 되돌아가려는 자연치유력이 인체에 작동한 때문이지 싶다. ‘사람의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다. 어느 정도 바뀐 것 같아도 한순간에 다시 그 사람의 본래 성격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만큼 인간에게도 회귀성은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다이어트를 할 때도 조금만 방심하면 원해 체중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오히려 체중이 더 늘어나기도 한다. 밥을 굶으면 나중에는 폭식이 뒤따른다. 살이 빠지면 인체의 사령부인 뇌에서 곧바로 비상사태를 가동해 더 많은 지방을 몸에 저장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식욕은 본래 체중으로 되돌아가자고 은근히 부추기며 회유한다. 눈앞에는 먹고 싶은 음식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인체의 끈질긴 회귀성으로 다이어트가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모든 것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인지 젊은 시절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옛 것이 더 좋다. 아날로그적인 삶의 형태가 그립다. 그런 생각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은지 텔레비전 프로도 소박한 자연 속에서의 삶을 자주 보여준다. 나이가 들수록 몸의 기능이 약해지면서 마음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요즘 고향이나 시골로 귀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복잡한 도시생활과 미세먼지에 염증을 느껴서 떠나려 하는 것일까. 나도 한때 서울을 떠나 어릴 적 살았던 강원도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었다. 너른 바다를 품에 안고, 해풍에 실어오는 짭짤한 갯내를 맡으며 펄떡이는 생선들이 보고 싶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서 생활이 편리해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도, 언젠가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에 바다 대신 강가에 있는 아파트로 둥지를 옮겼다. 아침마다 베란다 창문을 열면서 불어오는 강바람에 연어처럼 코를 벌름대며 강물냄새를 맡는다. 내 안에 내재된 회귀본능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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