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담그다 / 조헌

 

  

아침나절부터 아내가 포기김치를 담갔다.

커다란 배추 두 포기와 작은 무 세 개, 그리고 각종 양념을 준비했다. 이 정도 재료라면 그럭저럭 흡족한 듯 움직이는 손끝이 바쁘다. 적당히 다듬은 배추를 반으로 갈라 소금에 절인다. 생것의 빳빳함을 잡기 위해 숨을 죽인다. 얼마 후면 노글노글 다루기 쉽게 누그러질 것이다.

무는 체를 썬 후, 양념과 버무려 속을 만든다. 파와 마늘과 생각은 삼삼한 향기가 되고 매콤한 고춧가루는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만든다. 어찌 들판의 것으로만 맛이 나겠는가. 곰삭은 새우젓과 멸치액젓도 갯내를 풍기며 감칠맛으로 환생할 것이다. 거기에 찹쌀풀을 쑤어 붓는다. 겉돌던 재료들이 서로 엉긴다. 이젠 찬찬히 앉아 절은 배추에 속을 넣으면 된다. 켜켜이 뭉치지 않게 골고루 펴서 넣는다. 붉게 물든 아내의 손안에서 포기김치가 완성된다. 모양 갖춘 김치를 통속에 차곡차곡 쟁인다. 향기와 빛깔과 감칠맛이 스며든 배추는 서서히 국물을 만들면서 익어갈 것이다. 찡한 맛과 아삭한 식감을 그대로 간직한 채 품격 있는 접시에 담겨 식탁에 오를 날을 꿈꾸면서 말이다.

나도 오늘 책상에 앉아 수필을 담근다.

주제 한 포기와 소재 몇 개, 그리고 여러가지 양념을 마련했다. 이 정도라면 얼추 꾸밀 수 있을 듯싶어 컴퓨터를 켠다.

적당히 다듬은 주제를 내 깜냥의 간으로 절인다. 날것의 풋내를 잡기 위해서다. 곧 숨이 죽어 낙낙하니 쓰기 좋게 될 것이다. 소재는 교술과 형상화를 뒤섞어 다른 재료와 버무려 속을 만든다. 심상과 운율과 문체는 독특한 향기가 되고, 묘사와 서사와 설명은 각기 다른 풍미로 맛깔스런 빛깔을 만든다. 어찌 이것만으로 맛이 나겠는가. 독창과 개성이란 젓갈이 간간하면서도 뭉근한 맛을 낼 것이다. 거기에 구성이란 풀을 쑤어 섞으면 겉돌던 재료들이 일관된 통일성으로 훨씬 차질 것이다. ! 이젠 관조와 성찰의 자세로 속을 채우면 된다. 그리고 숙성을 위해 수없이 읽고 무수히 고치면서 서둘지 않고 익을 때를 기다린다. 헤프거나 메마르지 않은 잔잔한 감동을 지닌 채 근사한 제목의 그릇에 담겨 발표지면의 식탁에 올려질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매사 쉬운 일이 어디 있던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번번이 맛있는 김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배추가 질겨 망칠 때도 있고 짜거나 싱거워서 버릴 때도 있다. 파와 마늘과 생강도 가끔은 제 몫을 못하고, 멀쩡한 고춧가루도 그저 색깔만 낼 뿐 밍밍할 때가 있다. 맛을 더 내려고 넣은 젓갈이 돌연 군내를 풍겨 코를 쥐게 만들 때도 있지 않던가. 열 번 담그면 열 번 다 다르듯이 담글 때마다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수필도 매 한가지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매양 흡족한 글이 나오진 않는다. 주제가 진부해 망칠 때도 있고 구성이 너무 배거나 성겨 버릴 때도 있다. 심상과 운율과 문체가 부리는 까탈도 만만치 않다. 심상의 신선도가 떨어져 감각적 인상을 불러 오지 못한다거나, 느슨한 운율로 문장이 탄력을 잃어 '말맛'이 사라진다거나, 문제가 톡특함을 놓쳐 밋밋한 어조로 일관한다면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맹탕이 되고 만다. 더욱이 묘사가 따로 놀고 서사가 허접하며 설명이 빗나가면 더더욱 할 말이 없다. 거기에 독창과 개성마저 흐릿하면 그 글은 영락없이 물 탄 술이 되고 만다. 애써 다듬고 매만져도 모자라고 치우치며 끊기고 거칠 뿐이다. 허술하면서도 옹이와 흡집투성이가 된다. 생각할수록 어렵고 힘든 일이다.

수필을 써온 지 십수 년, 내놓은 글이 벌써 백여 편을 웃돈다. 이제 길이 날만도 하건만 턱없이 부족한 재주 탓에 언제나 뻑뻑하고 버겁다. 날이 갈수록 책상 앞에 앉기가 막막하다. 머릿속에 큰 탑을 세웠다가도 막상 컴퓨터 자판에 손을 얹으면 일제히 날아가는 새떼처럼 떨구고 간 깃털 몇 개가 고작이다. 그나마 생각만 간절할 뿐 끝내 내 목소리로 영글지 못해 늘 시고 떫다.

고민도 버릇이 되면 절박하지 않다 했던가. 설렁설렁 빚어놓고도 뉘우침은 언제나 뒷전이다. 좀 더 새로운 것을 다짐해 봐도 노상 거기서 거기다. 내 아둔함이 밉지만 짐짓 눈을 감고 모른 척한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은 그저 꿈일 뿐, 흉내만 내다 끝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오늘도 줄 짧은 두레박을 들고 안타깝게 서성거린다. 어렵고 깊은 언어의 우물 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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