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하여 / 츠바이크


  

우리 인류의 모든 활동은 두 개의 발명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 공간에서의 활동은 끝없이 회전하는 수레바퀴를 따라서 움직이고, 정신의 활동은 글씨에 의존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먼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처음으로 수레바퀴를 만든 그 무명의 발명가는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를 극복하는 수단을 가르쳤다. 삽시간에 연락이 가능하게 했다. 화물을 운반하고, 여행을 해서 견문을 넓힐 수가 있게 되었다. 각 나라마다 단독으로 사는 게 아니고, 전세계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수레바퀴는 온갖 형태로 기술적인 발달을 했다. 기관차 밑에서 돌고 있는 바퀴, 자동차를 전진시키는 바퀴, 프로펠러 속에서 진동하는 수레바퀴는 공간의 중력마저도 극복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글씨는 책으로 발달했다. 한 장짜리 문서로부터 두루마리가 되고, 몇백 장씩 앞뒤로 인쇄를 해서 압축된 형태가 나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경험 속에 갇혀 있는 형태가 타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책이 나온 덕택으로, 자기 눈으로만 보는 시야의 한계를 벗어나서 모든 과거와 현재, 인류 전체의 모든 사유와 정감을 전해 받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이 되었기 때문에 여간 특별한 순간이 아니고서는 새삼스럽게 감사의 마음으로 책이라는 물건의 성질을 생각해 보는 일이 없다. 누군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기 옆에 책을 가지고 있다. 책을 손에 만질 때 장갑이나 담배같이 대량 생산된 물건을 대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을 만큼 기계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행동한다. 책이라는 것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마술적인 작용을 생각하면 절로 머리가 수그러질 노릇이지만, 기차를 탈 때마다 수레바퀴의 오랜 역사를 돌이켜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을 만질 때마다 책의 은혜를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 특별한 자극으로 새삼스러운 감명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당시, 나는 26세였다. 이미 몇 권인가 책을 써낸 경험도 있었으므로 책이라는 물건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의 머리에 떠오른 사념이 여러 단계를 거쳐서 책이라는 네모 반듯한 인쇄물로 만들어지는 과정, 몇백 몇천 부씩 헐한 정가를 붙여서 상점에 전시가 되고 있는 사실, 어느 책이나 외모는 다 대동소이하게 생겼지만 그 내용은 천차만별이라는 사실, 그리고 독자가 그것을 열심히 읽을 적에는 감정이 감정으로, 정신이 정신으로, 운명이 운명으로 전달되어 가는 침투의 과정에 대해서도 다소간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책의 마력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은 일은 아직 없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배를 타고, 지중해 바다를 제노바에서 나폴리로, 나폴리에서 튀니스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배는 이탈리아 배였다. 나는 젊은 승무원 한 사람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승무원 중에서도 가장 서열이 낮은 청소부였지만, 눈동자가 까맣고 체격이 튼튼하고 잘 웃고,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쾌활한 이탈리아 말을 지껄이고, 말을 할 때의 몸짓이 재미있고, 거기에다 남의 흉내 내기를 잘하여 배에 탄 모든 독특한 사람들의 동작을 희화화해서 재현하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리파리 섬에서 목동 노릇을 하다가 승무원이 됐다고 하는데, 야성적이라고 할지 매우 건강하고 명랑했다. 그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곧 알아차리고 항해 이틀 만에 우리는 아주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두 사람을 벌려놓고 말았다. 배가 나폴리에 닿은 그날 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하면서 한 통의 편지를 가지고 와 좀 읽어달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프랑스나 독일에서 온 편지를, 아마도 외국 소녀한테서 온 편지를 번역해 달라는 것인 줄로 짐작을 했다. 그런데 봉투를 열고 보니까, 편지는 이탈리아 말이었다. 그럼 그가 원하는 건 무엇인가. 나한테 자랑을 하려는 것인가. 그는 자꾸만 낭독을 해달라고 재촉을 했다. 갑자기 나는 사정을 알았다. 이 상냥스럽고 미남인데다 천성이 우아한 청년은, 이탈리아 사람 중 7내지 8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통계에 나와 있는 문맹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청년은 내가 만난, 글씨를 모르는 최초의 유럽 사람이었다. 물론, 나는 그 편지를 읽어주었다. 모든 나라에서 모든 말로, 젊은 여자가 젊은 남자에게 보내는 그런 편지였다. 내가 낭독하는 동안, 그의 얼굴은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두 번 읽어주었다. 천천히 또렷또렷하게.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하지만 나는 커다란 놀라움을 끝내 금할 수가 없었다. 처음 만난 문맹자, 그게 유럽 사람이고, 더군다나 이 배 안에서 승무원이나 승객을 통틀어서 가장 상냥스러운 사람인줄 믿은 청년이, 나는 갑판에 나아가 밤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글씨에서 차단되어 있는 사람의 머리 상태가 어떤 것인지, 그 머리에는 세계가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기억에 들어있는 역사·지리·감정·지식·상상이 거의 대부분 책에서 얻어진 것이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슈테판 츠바이(1881-1942) 오스트리아 소설가, 시인 발자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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