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의 사랑 / 스탕달

 

 

 

나는 감정을 버리고, 한 냉정한 철학자로서 말하려고 한다.

우리 프랑스의 여자들은 명랑하기는 하지만, 허영심과 육체적 욕망밖에 갖고 있지 않은 프랑스 남자들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래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여자들만큼 행동적이지 못하며, 따라서 남자들의 존중을 받지도 못하고,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권위가 없다.

여자의 권위는, 그가 애인에게 어떤 벌을 줄 적에, 남자에게 끼칠 수 있는 불행감의 정도에 달려 있다. 그런데 남자가 허영심밖에 갖지 않는 경우,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없는 경우에 있어서는, 여자들의 존재는 그 자체가 권위를 지니지 못하고, 필요에 따라서 이따금 이용만 당할 뿐이다. 남자들은 다만 여자를 정복해서 허영심을 만족시키려고 할 따름이지, 진심으로 그 사랑을 오래 유지할 생각은 없는 것이다. 프랑스 남자는 언제나 자기 허영심을 애인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

특히, 파리의 젊은 남자는 애인을 자기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예로 생각한다. 만약 여자가 이 부당한 대우에 반항을 하면 그는 태연하게 여자를 버릴 것이며, 그 사건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만족을 느낀다. 그는 친구들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훌륭한 태도, 얼마나 멋있는 방법으로 여자를 버렸는가 하는 것을 자랑한다.

자기 나라 형편을 잘 알고 있는 한 프랑스 사람, 메랑이라는 문학자는 ‘18세기 명사의 초상과 성격이라는 저서에서 프랑스에서는 위대한 정열은 위대한 인물만큼이나 드물다고 말하고 있다.

베네치아나 볼르나 같은 이탈리아 도시에서는 흔히 보는 일이지만, 프랑스의 도시에서는 애인에게 배반을 당해서 절망에 빠진 남자가 거리를 방황하는 꼴을 좀처럼 보기가 어렵다. 파리에서 참으로 소박하고 열렬한 사랑을 보기 위해서는 교육과 허영심에 의해서 타락되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하층사회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중세에는 그렇지 않았다. 남자들이 모두 솔직하고 용감했다. 중세 시대에는 사람들이 모험을 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남자들의 마음을 단련시켰던 것이다. 허영심 같은 것을 희롱할 여유가 없었다. 인간의 독창성이라는 것도, 지금에 와서는 매우 보기 드물 뿐 아니라 간혹 눈에 뜨이는 것도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눈에 거슬려 보이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솔직하고 진지한 것이었다.

지금도 자주 위험이 발생하는 나라, 코르시카나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곳에서는 위대한 인물, 위대한 열정이 나올 수 있다. 파리에서는 안일과 유행이 휩쓴 결과, 인간의 원동력이 위축되어 버린 게 아닌가 염려스럽다.

사랑은 아름다운 꽃이다. 하지만 위험한 낭떠러지에 피어 있는 꽃이므로 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자리까지 가서 따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적에는, 이미 허영심이 작용하고 있거나 용기가 부족한 증거이다. 남들이 비웃는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 하며, 인생의 다른 보배는 모두 공허한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오직 그 사랑에 대해서만 헌신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의 프랑스 젊은이들은 사랑을 두려워하고 있다. 낭떠러지에 피어 있는 꽃을 감히 따러 가지 못한다. 소설을 보면, 사랑하는 남자가 당연히 하는 모험이 있는데, 자기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린다. 정열의 폭풍이라는 것은 바다의 물결을 소란하게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돛에 바람을 휘몰아 그 거친 파도를 넘어가는 힘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현대의 프랑스 젊은이들은 마음이 냉정하고 위축되어, 그 이치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루이 14세 시대의 풍속을 찬미한다. 그 시대 남자들은 사흘마다 살롱과 전장 사이를 왕래했었다. 어머니, 아내, 애인은 언제나 불안 속에서 그의 아들, 그의 남편, 그의 애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세비니에 부인이 쓴 편지를 보라. 위험 속에 뛰어들고 있는 남자와 그 안위(安危)를 염려하는 여자 사이에 주고받은 말은, 오늘날 우리가 따르지 못하는 힘과 솔직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문명의 완성은 19세기의 섬세한 감수성에 보다 더 빈번한 위험을 결부시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의 생활이 자주 위험에 직면함으로써 쾌감을 증대시킬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군사상의 위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면에 걸친 모험성, 중세기 생활의 본직을 이룩 있던 위험을 말한다.

오늘날 문명 생활 속에서 기계적으로 조절되고 분식(扮飾)되는 위험은 우리들의 정열을 강화시켜주는 위험이 못 되고, 가장 허약한 성격으로 능히 견딜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스탕달(1783-1842) 프랑스 소설가 적과 흑’ ‘연애론’ ‘쥘리앙 소렐의 얘기’ ‘파르므의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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