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수상 / 조지 R. 기싱(George R. Gissing)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런 환경에 갑자기 내가 놓여 진다면 숨어 있던 나의 양심이 나를 책하려고 하였을 그러한 시절이 나의 생애에는 있었다. 이건 무슨 의미인가. 노동 계급이라면 3, 4 세대를 부양하기에도 족한 수입에다가- 집 한 채를 혼자서 점유하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름다운 물건뿐- 그러면서도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니 내 자신을 변명하기에 나는 무척 애를 썼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 지내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고투하고 있는가를 수시로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극히 적은 물건으로도 족하다.”고 하는 말을 나만큼 철저히 아는 사람은 없다. 나는 굶주려서 거리를 방황하던 일이 있었다. 더없이 누추한 잠자리에서 자보기도 했다. 소위 특권 계급에 대한 분노와 선망으로 타는 가슴이 어떠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 그러나 그때에도 나는 역시 특권 계급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조금도 자책의 느낌 없이 지금 특권 계급의 사람들 가운데서 인정 받는 위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나의 넓은 동정심이 무디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어떤 장소를 찾아가서 어느 광경에 접하게 된다면 즉시 나는 이 생활에서 이루어진 모든 마음의 평정을 아주 송두리째 파괴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그런 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고의로 그쪽에 눈을 피하는 것은, 한 사람이 문명인에 어울리는 생활을 함으로써 그만큼 세상이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지지는 않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의 사악한 꼴을 공격하겠다고 진심으로 충동을 느끼는 사람은 용서 없이 사악을 규탄하도록 하라. 그런 천직을 타고난 사람은 나가서 싸우는 것이 좋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그것이 천성이 가리키는 바에 어긋나는 길이 될 것이다.

나는 아는 것은 없지만, 내 성질이 평화롭고 명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이루어졌다는 것만은 안다. 오직 그러한 생활을 통해서만이 내가 지니고 있는 특질이 활동의 영역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반세기가 넘는 생활 경험에서 이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대부분의 부정과 우행(愚行)이 자기 마음의 평정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루어지고 인류를 파멸로부터 구원해 주는 대부분의 선행은 조용한 사색의 생활에서 나온다는 것을 배웠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점점 소란해지고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만은 그 심해지는 세상의 소란 속에 섞이지 않을 작정이다. 그것이 비록 나의 침묵에 의한 것일지라도 나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다만 연금을 주는 것만으로, 국민의 5분지 1이 지금의 나와 같은 생활을 하도록 그들을 유도할 수만 있다면 국가의 세입이 얼마나 잘 쓰이는 것일까.

6년 이상이나 한 번도 대지 위를 디뎌보지 못하고, 나는 포도 위만을 걸었다. 공원이라는 것도 실은 무성한 풀로 변장한 포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에 내 인생의 비참한 고비도 넘겼다.

비참한 고비라고? 아니다. 그보다도 더 참혹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굶주림과 싸우는 일도 젊고 기운이 있을 때에는 즐거운 일면이 있는 법이다.

하여튼 나는 내 힘으로 생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번에 반년 간의 의식에 대한 보증은 얻고 있었다. 건강만 하다면 나는 몇 해 동안이라도 충분한 급료를 얻을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마음대로의 시간과 장소에서 나 혼자의 힘으로 하는 일에 대한 보수였다. 고용주에게 굽실거리면서 사무실에서 보내는 생활을 생각하면 그만 몸서리가 쳐진다. 붓으로 생활하는 사람의 영광은 그 자유와 품위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물론 나는 하나의 상전을 섬기는 대신에 수많은 상전을 섬겼던 것이다. 독립이고 무어고 없었다. 만일, 내가 쓴 글이 편집자나 출판업자나 일반 독자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나의 매일의 식량을 어디서 얻었을 것인가. 내가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하면 할수록 그만큼 상전의 수는 늘어갔다. 나는 군중의 노예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이 막연한 군중을 대표하는 어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말하자면 나 자신을 그들의 이익의 원천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었다. 그래 한동안 그들이 나에게 친절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내가 획득한 이 지반을 유지해 갈 수 있다는 신념은 무엇으로 보증할 수 있었을까.

어느 노동자의 입장이 내 입장만큼 위태로울 수 있었을까. 그것을 지금 생각하면 마치 심연의 가장자리를 함부로 걸어가는 사람을 쳐다볼 때처럼 몸이 떨린다. 20년 이상이나 이 펜과 종이 조각이 나와 나의 집안을 입히고 먹이고, 물질적인 안락을 주었고, 바른손 하나밖에는 의지할 곳 없는 한 인간을 상대로 쳐들어온 이 세상의 모든 절대 세력을 막아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한 느낌이 든다.

어느 날, 나는 수목이 울창한 따뜻한 산골짜기를 거닐었다. 꽃이 만발한 과수원 근처로 해서 집집마다 더욱 아름다워지는 농가에서 농가로 울창한 상록수에 싸인 마을에서 마을로 헤매고 다녔다.

다음날은 소나무 무성한 언덕 위에 올라가서, 지난 가울 히스가 시들어 갈색으로 된 황야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흰 파도 이는 영국해협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얼굴에 쐬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둘러싸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나 자신조차 잊어버렸다. 나는 과거의 회상도 미래의 예상도 없이 그저 즐거웠다. 원래가 이기주의적인 나였지만, 나 지신의 감정을 음미해 보는 것도 잊었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비교하여 나의 행복에 불평을 가져보는 일도 잊었었다. 그것은 건강에 좋은 계절이어서 내 수명을 연장시켜주었고(내가 배울 수 있는 한), 그 수명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를 내게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나는 나이에 비해 훨씬 더 늙은 것 같다. 나이 쉰셋쯤의 인간이 사라진 자기 청춘에 대해 언제까지나 연연해하고 있을 것이 아니다. 다른 생각 없이 봄이라는 이유만으로 향락해야 할 요즘의 봄날들이 나를 다만 부질없는 과거의 회상 속에 몰아넣어 나의 추억은 사라져버린 봄으로 차 있다. 언제고 나는 런던에 가서 심한 빈곤 속에서 시달리던 시절의 그 집들을 모두 다시 한번 찾아보려고 한다. 이럭저럭 25년 동안이나 찾아보지 못한 장소들이다.

얼마 전만 해도 누가 나더러 그 과거의 기억들에 대한 감상이 어떠냐고 물었더라면, 나는 몇몇 거리의 이름이나, 런던의 그 이름없는 곳들의 영상이 눈앞에 떠오를 때마다 비참한 느낌이 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쓰라리고 지저분한 일들을 돌이켜 생각하고, 슬픈 생각을 참을 수 없었던 것도 이젠 옛날 일이다.

그 당시의 생활이 이상적 생활에 비교하면 물론 모두가 비참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제 와서 그 시절의 생활을 회고해 보면 그것은 재미있고 유쾌했던 생활 같다- 아무런 부족도 없는 생활에 먹을 것도 넉넉하던 그 후에 온 세월보다는 훨씬 그러했다.

나는 민중의 편은 아니다. 시대의 진로를 좌우하는 세력으로 볼 때, 그들은 나에게 불신과 공포의 염()을 일으켜주고, 눈에 보이는 군중으로서의 그들은 나로 하여금 그들을 피하게 만들거나 때로 혐오의 정을 갖게 할 때가 있다.

생애의 대부분을 통해서 민중이라고 하면 나에게는 런던의 군중을 의미했다.

그러한 군중으로서의 민중에 대한 내 감상을 도저히 온건한 의미의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나는 시골 사람들로서의 민중은 별로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내가 그들을 보아온 바로서는 그들을 보다 친근하게 사귀어보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의 인간적 본능은 전부가 반민주주의적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민중이 아무나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지배권을 잡게 되는 날, 우리 영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면 그만 두려워진다.

옳고 그르고 간에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말한다 하여서 나라는 인간을 자기보다 낮은 사회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모두 배척하는 인간이라고 말한다면 큰 잘못이다.

개인과 계급은 크게 다르다는 생각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뿌리박힌 생각이다. 인간을 개별적으로 보면 인간은 대개 어느 정도의 이성도 있고 착한 성품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 사회의 조직 속에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합쳐놓고 보면, 열에서 아홉까지는 자기 자신의 생각은 없고, 주위의 영향이 그들 충동하는 데 따라 어떤 악행이라도 서슴지 않고 할 만한 소란한 인간이 되고 만다.

인류의 진보가 이처럼 더딘 것은 국민이라는 집단이 어리석어지고 천해지려는 경향을 가진 탓이며, 그래도 인류가 조금씩이나마 진보하는 것은 개인들에게 보다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까닭이다.

나는 젊었을 때 이 사람 저 사람을 관찰하고서 인류의 발전이 너무 미비한 데에 놀랐다. 지금은 오히려 군중에 섞인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여기까지 발전해온 것을 기이하게 생각한다.

어리석게도 나는 거만했던 탓으로 인간의 가치를 그의 지력과 학식으로 판단하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논리가 없는 곳에서 선을 찾을 수 없었고, 지식이 없는 곳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나는 지력에도 두 가지 형태가 있음을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곧 두뇌의 지력과 심장의 지력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후자를 훨씬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 지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어리석은 자는 언제나 따분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유해하기도 하니까.

 

 

조지 R. 기싱(George R. Gissing) -(1857-1903) 영국 소설가 헨리 라이크프트의 수기(手記)’ ‘신상류 문인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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