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 안병욱


 

 

인간은 언제부터 거울을 갖게 되었을까. 거울은 인간의 놀라운 발명이다. 내가 내 모습을 비춰보기 위해서 인간은 거울을 만들었다.

옛날 사람들은 희랍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처럼 맑은 샘물 속에 자기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맑고 고요한 샘물은 우리의 영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내 얼굴의 아름다움에 스스로 자기 도취의 황홀한 기쁨을 느끼는 때도 있고, 내 얼굴의 추악함에 스스로 자기혐오의 끝없는 실망을 느끼는 때도 있다.

인간은 자기의 모습을 늘 보기 위해 거울을 발명했다. 옛날 사람들은 구리거울을 썼고, 우리는 유리거울을 가졌다.

인간에게는 거울이 필요하다. 우리의 눈은 백 리의 먼 곳을 분명히 볼 수 있어도 지척에 있는 자기 얼굴은 볼 수는 없다. 남은 보되 자기를 못 보는 것이 우리의 눈이다.

모든 여성들이 화장대를 갖는다. 화장대에는 으레 거울과 화장품이 놓여 있다. 거울은 여성에게는 잠시도 없을 수 없는 액세서리다. 여성의 핸드백 속에는 반드시 거울이 들어 있다. 우리는 늘 거울 앞에 서야 한다. 내 눈에 눈곱이 앉았는지, 내 입술에 이상한 것이 묻지 않았는지, 내 얼굴에 수심이 끼지 않았는지, 내 안색이 창백하지 않은지를 항상 살피기 위해서 우리는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는 거울을 보고 자기의 모습을 시정한다. 거울의 생명은 시정하는 데 있다.

여성들은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한다. 화장의 목적은 내 얼굴을 아름답게 하자는 것이다. ()는 여성의 간절한 희원(希願)이요, 인생의 다시없는 가치의 하나다.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황홀을 주고 구원을 주고 도취를 준다. 미는 인생의 영원한 기쁨이다. 얼굴을 아름답게 화장하기 위해서 크림을 바르고 마사지를 하고 분을 칠하고 향수를 뿌린다. 대단한 정성과 시간과 노력을 얼굴의 미화 작용에 바친다.

아무리 게으른 여성도 화장은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얼굴에 잔주름 하나를 없애기 위해서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모른다. 피부를 좀더 희고 윤기 있게 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애를 쓴다.

그러나 마음의 잔주름을 펴기 위해서 애쓰고, 마음의 피부를 맑고 곱게 하기 위해서 힘쓰는 여성은 별로 많은 것 같지 않다. 얼굴의 화장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달했지만, 마음의 화장술은 거의 발달한 것 같지 않다.

우리는 또 하나의 거울을 가져야 한다. 내 마음의 거울이다. 내 성격을 비춰보고 내 인품을 비춰보고 내 정신을 비춰보고 내 생활을 비춰보는 마음의 거울이 필요하다.

얼굴을 비춰보는 거울은 물경(物鏡)이라고 한다면, 마음을 비춰보는 거울은 심경(心鏡)이라고 하겠다. 거울에 먼지가 앉으면 우리의 얼굴이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날마다 거울을 맑게 닦아야 하는 동시에 특별히 마음의 거울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

한문에 명경지수(明鏡止水)란 말이 있다. 명경은 한 점의 티도 흐림도 없는 맑은 거울이요, 지수는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물이다. 명경지수는 맑고 고요한 심경을 의미한다. 악한 마음과 허망한 생각이 없는 깨끗한 정신이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에 명경지수를 가져야 한다.

불교에서 업경(業鏡)을 말한다. 업은 우리의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일체의 행동을 의미한다. 업은 곧 행()이다. 우리는 날마다 업을 지으며 살아간다. 좋은 일을 선업(善業)이라고 일컫고 나쁜 일을 악업(惡業)이라고 칭한다. 업을 지으면 거기에 따르는 보()가 있다. 착한 일을 하면 언제나 착한 결과가 따라오고, 악한 일을 하면 반드시 악한 결과가 수반된다. 이것을 선업선보(善業善報), 악업악보(惡業惡報)라고 한다. ()에는 과()가 따르고 업에는 보가 따른다는 것이 인과 업보의 사상이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둔다. 인간은 자기가 뿌리는 것을 가꾼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둔다. 게으름의 씨를 뿌리면 불행의 열매를 거두고, 부지런한 씨를 뿌리면 행복의 열매를 거둔다. 우리는 자기가 지은 업만큼의 보를 받는다. 이것이 인생을 지배하는 업보의 원리다.

불교의 업경이란 무엇이냐. 내가 과거에 한 모든 행동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불교에 따르면, 저승길 입구에 업경이 있다. 그 거울 앞에 서면, 내가 과거에 지은 모든 행동과 일체의 업이 그대로 비친다고 한다. 내 일생의 행동이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이 있는 곳을 명경대(明鏡臺)라고도 한다.

우리는 화장대에 맑은 거울을 갖고 나의 모습을 날마다 비춰보고 동시에 저마다 가슴속에 맑은 정신의 거울을 갖고 나의 마음과 생활을 항상 비춰보아야 한다.

우리는 물건의 거울, 마음의 거울, 행동의 거울 외에 역사의 거울을 갖는다. 역사 자체가 하나의 거울이다. 역사는 나라의 흥망성쇠의 기록인 동시에, 인물의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발자취다.

흥하는 나라와 인물은 어떻게 해서 흥하며, 망하는 나라와 인물은 어떻게 해서 망하는가, 일어나는 자가 일어나게 되는 원리가 무엇이며, 거꾸러지는 자가 거꾸러질 수밖에 없는 원리가 무엇인가. 역사는 그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하나의 커다란 거울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역사를 거울이라고 하였다. 슬기로운 국민은 역사의 거울에서 인생 사회의 진리를 배운다.

우리는 늘 거울 앞에 서야 한다. 화장대의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과 모습을 아름답게 하고, 마음의 거울 앞에 서서 재 정신과 생활을 바로잡고, 역사의 거울 앞에 서서 우리의 사회와 민족을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우리는 마음속의 거울을 가져야 한다. 얼굴과 몸매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마음과 성격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세상에 가장 빛나면서 가장 약한 것이 둘 있다. 하나는 여자의 얼굴이요, 하나는 질그릇이다.”

영국의 소설가 스위프트의 말이다. 질그릇은 빛나지만 깨어지기 쉽다. 여자의 얼굴은 빛나지만 그 생명이 짧다.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이다.”라고 영국 작가 E.G 리턴은 말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우리가 남에게 추천하는 데 좋다. 그러나 미모가 반드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이요, 착한 성격이다. 그것은 인생의 신용장과 같다.

가슴속에 맑은 마음의 거울을 갖는다는 것은 밝은 이성과 성실한 양심을 갖고 나 자신을 늘 살펴보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진실하게 자신을 검토하는 일이다. 내가 내 마음을 늘 보고 바로잡는 것이다. 거짓이라는 마음의 때가 끼지 않았는지 허영이라는 마음의 눈곱이 끼지 않았는지, 교만이라는 마음의 부스러기가 나지는 않았는지, 게으름이라는 마음의 거친 피부가 생기지 않았는지 스스로 살펴보는 것이다.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무엇을 입었는지가 큰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큰 문제다. 아름다워 보이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말 아름다우냐가 중요한 문제다.

남에게 지나친 간섭과 관심을 갖지 말고, 나 자신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겉만 보지 말고 속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바깥을 나무 꾸미지 말고 나의 내부를 충실히 하자. 얼굴의 주름살에만 신경을 쓰지 말고 내 마음의 주름살에 신경을 써야 한다.

얼굴의 피부를 아름답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마음을 곱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몸에 향수만 뿌리지 말고 내 마음에서 향기가 나도록 해야 한다. 내 옷의 아름다움 이상으로 성격의 아름다움이 더 소중함을 알자. 입술을 붉게 하기 전에 마음을 붉게 해야 한다. 머리카락만 손질하지 말고 머릿속을 좀더 손질하자.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현대인은 두 가지의 병에 걸렸다고 하였다. 첫째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 병이요, 둘째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도 깨닫지 못하는 병이다.

온 세계를 다 얻더라도 네 생명을 손상시키면 무슨 소용 있겠느냐.”고 예수는 간파했다. 실존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이 말을 뒤집어 이렇게 말했다.

온 세계를 다 잃어버리더라도 네 생명을 얻는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우리는 저마다 생명을 갖는다.

우리는 저마다 저다운 생명, 목숨, 저다운 인격과 혼을 갖는다. 이것은 소중하기 한량없다. 우리의 생명은 한 번밖에 없다. 천상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다. 그것은 남이 대신할 수도, 매매할 수도 대용할 수도 없다.

온 세계를 다 얻더라도 네 생명을 손상시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갈파한 예수의 말은 인간의 생명 가치, 우리의 목숨과 인격의 값어치를 가장 높이 드러낸 말이다.

우리들 하나하나의 생명 가치가 온 세계보다도 무겁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은 혼을 갖기 때문이요, 이성과 양심과 인격과 개성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우리들 하나하나의 개인의 인격이요, 생명이다. 한 쪽에 전 세계를 놓고 또 한 쪽에는 우리의 생명 가치를 놓고 그 무게를 다룰 때, 우리의 생명 가치가 온 세계보다도 무겁고 존귀하다.

키르케고르의 말고 같이 온 세계를 다 잃어버리더라도 내 생명, 내 주체, 내 혼을 분명히 지닌다면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나의 주체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나의 인격, 나의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의 목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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