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의 절규 / 구활


 

 

절규는 불만이 불러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불만은 가까운 이웃인 탄식을 불러온다. 탄식은 제 친구인 절망을 데려와 소리치며 울부짖어라로 충동질한다. 그것이 절규다. 절규는 천길 낭떠러지 끝에 깨금발로 서 있는 형상이다. 위로의 말이나 기도가 통하지 않는 처절한 분노이자 공포 그 자체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대영박물관의 영원한 인간전(Human Image)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영국까지 가지 않고 인류의 귀한 문화유산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니 장사치곤 크게 남는 장사일 것 같았다.

회화전, 조각전, 문인화전 등 이름 있는 큰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문이 나면 그게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가보자 가지말자의 두 감정의 패거리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엉덩이를 제 자리에 붙여 놓을 수가 없다. 앉아서 스트레스 받느니 훌쩍 떠나 보리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다녀오고 나면 큰 전시일수록 기억 속에 남는 것이 없을 때가 많다. 포대는 작은데 넣을 것이 많아 그런가 보다.

몇 번 속고 난 후론 전시물의 전체를 망막 속에 남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위에 새긴 선각 부처님처럼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만 안고 돌아오는 것이 훨씬 배짱 편하고 유익하다. 로댕전에서도, 간송미술관의 혜원전에서도, 덕수궁 미술관의 근대미술 백인전에서도 단 하나의 작품만을 기억의 품속에 품고 왔을 뿐이다.

이번의 대영제국의 영원한 인간전에서도 이스라엘 화가 아비그도르 아리카(1929-2010)가 그린 <자화상, 어느 날 아침의 절규(Self, Sbouting Morning)>란 그림을 가슴속에 넣고 문을 나서 버렸다. 먼 길을 달려왔으니 본전 찾을 욕심이 앞서 두 바퀴 반을 돌았지만 기억의 지문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수많은 조각품과 회화 작품들이 수두룩했지만 다른 것들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아리카의 <자화상>은 잘 그려진 그림도, 벽에 걸어 놓고 두고두고 쳐다볼 아름다운 작품은 아니었다. 사양화 8호 크기(46.1cm×38cm)의 검은색 수비잉크로 포로수용소 죄수를 그린 것 같은 상반신 인물상이다. 줄무늬 옷을 입은 인물상은 이마의 길이가 얼굴의 반쯤 차지하고 머리칼은 그야말로 봉두난발이다.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가슴에 드는 구석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오른쪽 눈은 검게 칠하여 눈썹조차 보이지 않고 왼눈은 떴는지 감았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벌리고 있는 입은 작은 동굴처럼 뻥 뚫려 있고 코 옆 여덟 팔자주름이 깊게 파여 불혹(1969년작)의 나이치곤 너무 빨리 쇠잔해진 애늙은이로 변한 모습이다.

어느 날 아침에 느낀 언짢은 분노가 붓을 들고 자화상을 그릴 때까지 풀리지 않았는지 바야흐로 절규의 감정으로 치닫고 있다. 검정색 톤으로 아무렇게나 쓱쓱 문질러 그린 자화상이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볼품도 없고 별 맛이 없는데도 나를 왜 이렇게 질기도록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 걸까. 매력에도 궁합처럼 겉 매력이 있고 속 매력이 따로 있는 것인가.

그건 아마 우리 모두의 울분과 절망을 한 폭의 그림이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으로 빨려들어 자화상의 주인이 바로 나인 듯 순간적인 착각에 빠져 든 것이리라. 그것은 바로 감정이입현상(Empathy)이다. 관조 대상에서 표출된 내용을 보는 이의 눈높이로 이해하고 해석할 땐 곧잘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는 법이다. 그 대상이 분노하면 덩달아 분노하고 이별을 슬퍼하면 자신의 옛 연인을 떠나보낼 때의 감정을 끄집어내 함께 울어 버리는 것과 같다.

아리카는 서른 중반에 그동안 걸어왔던 추상의 길을 버리고 흑백의 초상 드로잉과 동판화 연작에 몰두했다. 그날 이후 아내와 친구 그리고 자신을 주로 그리며 홀로 울면서 절규했다. 그는 고독과 고뇌를 이기지 못하는 현대인의 대변인이었다.

그의 친한 친구로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림을 그린 동기를 25년 동안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4년 친구인 영화평론가 알렉산더 워커에게 “1969년 어느 날 아침 기분이 지극히 나쁜 상태에서 그림이라도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아 그렸을 뿐이라고 털어놨다. 그림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꾸밈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자기가 느낀 감정을 화폭에 그대로 옮겼으며 과감한 터치가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로 단순명쾌하다.

전시장을 돌면서 지킴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카메라를 꺼내 도둑 셔터를 두 번쯤 눌렀다. 안내 아가씨는 CCTV를 들고 다니는지 홀연히 나타나 사진 찍으시면 안 되는데요라고 한마디 한다. 급하게 찍느라 초점이 맞지 않아 자화상 절규를 A4용지에 옮겨 책상머리에 붙여 두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울고 싶을 때 함께 울고, 분노로 치가 떨릴 때 함께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친구로 삼을 작정이다.

이제 절규를 같이 즐길 친구는 나를 포함해서 네 사람으로 늘었다. 뉴욕 소비더에서 1 2천만 달러란 경매사상 최고액을 기록한 <절규(Tbe Scream)>를 그린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 이태리 영화 (La Strada)에서 연인 젤소미나를 저승으로 떠나보내고 절규하는 잠파노 역을 맡았던 앤소니 퀸 그리고 <아침의 절규>를 그린 아리카가 그들이다. 나중 저승에서 만나면 절규시사(絶叫詩社)란 모임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의해 봐야겠다. 운동선수들처럼 스크럼을 짜고 풀쩍풀쩍 뛰면서 함께 울며 고함지르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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