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아래 / 정은아  

 

 

 

그늘 아래에서 아이가 나풀거렸다. 머리 위로 별 무리 단풍잎이 한들한들 흔들리고, 햇빛이 이파리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눈부시게 빛났다. 실눈을 뜨고 가느다란 틈 사이로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르디푸른 하늘에는 뭉게구름 몇 뭉치가 여유롭게 떠다녔다. 그네는 바람을 가르며 왔다 갔다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높이 날아 하늘 품에 안겼다가, 다시 뒤로 밀리며 깊숙한 그늘 아래로 떨어졌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그네를 타고 바람을 따라 흩날렸다.

얼마 전, 아버지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했다.

언제 올 거냐?”

오늘은 못 갈 것 같아요.”

전화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가라앉았고, 말끝을 흐렸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도 별일 없다 했다. 조금 마음이 걸렸지만,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에 묻히고, 쏟아지는 요구사항에 귀 기울이느라 잊어버렸다.

며칠 후,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너희 아버지가 그네를 만드셨어. 그거 만들어 놓고선 너희 언제 오느냐고 전화해보란다.”

그네요? 이번 주말에는 갈게요.”

그네를 만들고 흡족해하며 손녀를 기다리고 있었을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조바심이 나서 전화도 했던 것이다. 제구실을 못 하는 빈 그네를 보며 애간장도 태웠을 것이고, 깜짝 선물에 좋아할 아이 모습을 그리며 주말만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친정에 갔다. 농사철이라 집은 비어있었다. 우리를 반겨준 것은 마당 왼쪽 단풍나무 그늘 아래에 걸려있는 그네였다. 아이는 그네를 보자마자 뛰어가 걸터앉더니 밀어달라고 했다. 그네는 아이를 태우고 신나게 날아올랐다. 노란색 끈과 검은색 끈이 여러 겹으로 꼬인, 튼실한 밧줄이 단풍나무의 세 가지를 휘감아 걸쳐져 있었다. 혹시라도 가지가 부러질까 봐 노파심에 꼼꼼히 감아 둔 것 같았다. 그네 안장 부분은 나무 두 개가 겹쳐져 있었고, 쓰고 남은 장판이 안장 크기에 맞게 깔려있었다. 아이는 한참 동안 진자운동을 반복했다. 여름날 오후의 햇볕은 뜨거웠지만, 단풍나무 그늘 아래는 시원했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다. 다정스러운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줬다. 자식을 5남매나 키웠지만, 농사일이 바빠 자식들의 재롱을 볼 여유가 없었고, 같이 놀아줄 시간도 없었다. 이제는 시간의 여유가 생겼지만, 자식들은 모두 장성해 버렸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표현 못 했던 마음을 손자 손녀들에게 퍼준다. 보면 볼수록 자식들이 낳은 아이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단다. 손자 손녀 중에서도 특히 우리 둘째에게 각별했다. 자신의 품 안에 있던 손녀라 더 그럴까. 둘째가 갓난아이 때, 친정에서 6개월간 머물렀었다. 그때 아버지는 평생 처음으로 아기를 돌보는 경험을 했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품에 안고 우유도 먹여주고, 어르고 달래며 재우기도 했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손녀에게 넓고 깊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손녀와 친구였다. 토요일이면 언제 놀러 오냐며 먼저 전화가 왔다. 아버지 눈에 손녀가 들어오면 금세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다정스럽게 대화하고, 장난을 치며 놀았다. 손녀에게 물고기도 잡아주고, 오토바이도 태워주고, 술래잡기도 했다. 손녀도 외할아버지를 많이 따랐다. 아버지가 책을 보고 있으면 옆에 가서 계속 질문을 하고, 달리기하자고 졸라댔다. 손녀의 애교에 바로 넘어가 하던 것을 덮어두고 아이와 놀아줬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식으로서는 못 보던 모습이었으니까. 아버지의 몸은 낡고 약해지고 있지만, 외손녀에 대한 마음만은 날이 갈수록 새로워지고 강해졌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밭일을 마치고 오셨다. 그네에 앉아 공중 부양 중인 손녀를 보고는 흐뭇해했다. 아버지는 아이가 타는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다가 급하게 보완작업에 들어갔다. 줄을 잡는 아이 손이 살짝 미끄러지는 것을 보고는, 손잡는 위치 아래에 밧줄을 칭칭 감았다. 다시 한 발짝 물러서서 유심히 지켜보다가, 부직포를 가져왔다. 아이가 화단 턱에 부딪힐까 걱정된다며 부직포를 화단 윗부분에 고정했다. 굵은 주름위로 땀방울이 맺혀도,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에 고단함도, 더위도 잊은 채 분주히 움직였다. 그네가 변신하는 와중에도 아이는 그네에서 내려오지 않고 빨리 타고 싶다며 보챘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그네를 탔다.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그려졌다.

다음 날 아침, 한층 더 멋진 그네가 떡하니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그네 안장에 깔아둔 미끈한 장판이 못 미더웠는지, 마찰력 강한 밧줄을 안장 위에 가지런히 감아 놓으셨다.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에 안전까지 생각한 조치였다. 아이는 바로 밖으로 튕겨나갔다. 아직 단풍나무 아래에는 한 자락의 그늘도 없었다. 아이는 계속 그네를 타겠다며 졸랐고, 결국 뜨거운 햇빛 맛을 보고서야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수시로 마당을 내다보며 단풍나무 아래에 든든한 그늘이 만들어지길 기다렸다.

지금 아이에게는 아비의 그늘이 없다. 아이가 아비의 그늘 아래 있었던 건 한 달도 안 된다. 아비는 기나긴 장마의 끝자락에, 찰나의 사고로 사라졌다. 아이에겐 아비의 구름 한 점도 남지 않았고, 저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이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엔 아직 어리다. 어딘가에 아비의 존재가, 아비의 그늘이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다. 나 또한 그랬다. 막막한 현실 앞에 그를 대신할 허상(虛像)이라도 세워두고 위안을 얻으려 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 흔들릴 때면, 나는 아버지의 그늘 아래로 들어갔다. 언제나 아버지는 나와 아이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두고 품어주고, 쉬어갈 수 있게 애썼다.

아버지는 자신의 그늘 아래에 들어온 손녀를 보듬었다. 그늘 아래에서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날개도 선물했다. 아이는 퍼덕이며 하늘에 닿아, 하늘 품에 머물다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더 높고 머나먼 곳에 닿으려 세찬 날갯짓을 하기도 했다. 아이도 언젠가는 세상의 끝에 닿을 것이다. 살면서 한가롭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기도 하고, 때론 빛나는 꿈을 좇기도 하고, 때론 허우적거리며 넘어질 때도 있을 거다. 모든 순간순간에 아이는 떠올릴 것이다. 자신에게 그늘이 되어준 외할아버지를, 그 사랑을.

아이는 오후 내내 그늘 아래에서 그네를 탔다. 아버지는 외손녀의 뒤에서 등을 밀어줬다. 더 높이 더 높이를 외치는 손녀를 하늘에 닿도록 자신의 힘을 보태어 올려줬다. 철부지 외손녀는 마냥 좋다. 그늘 아래에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나도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마음이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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